•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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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이를 극복해 볼 양으로 일탈을 시도하기도 한다.


평범하게 직장에 출퇴근하는 일상, 혹은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집안일에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의 일상, 경쟁사회의 탈락자가 되지 않으려고 학교나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생이나 취준생의 일상, 어쩌면 판에 박힌 일상이 지겨울 때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신종 바이러스 오미크론으로 변종되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하루 5만명 대를 점을 찍고 계속 상승할 기세다. 이런 시점에 서서 다시 무너진 일상으로의 회복을 생각해 본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다시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각계 전문가들은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은 이제 잊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수록 일상으로의 회복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우리가 제대로 된 일상을 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래 정상을 이탈한 일상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일상을 살지 않았기에 불현듯 찾아온 재앙을 만난 것은 아닐까?


진정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원한다면 돌아갈 일상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돌려 보자. 가령 우리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육현장이 제대로 그 기능을 회복해서 전인적 인간 교육을 한다면 어떨까? 기업들이 이윤만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도덕적 기업운영을 한다면 어떨까?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 지도자로 선택받고 싶다면 애초부터 일신상의 청렴과 결백을 쌓고, 정책을 개발하면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 훈련을 한다면 어떨까?


이미 비뚤어진 일상을 살고 있었던 우리였다면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이제 우리가 회복하기를 바라는 일상은 제대로 된 정상적인 일상이어야 한다.


서로 존중하는 인간관계, 이웃과 소통하고 배려하고 화합하는 마을 공동체, 정직한 기업이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회구조,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비전을 일구어 가는 환경 등 이 모든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니라면 우린 일상의 회복을 꿈꾸지 않아야 한다.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면 말이다.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입원하여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 일상에서 퇴출을 받았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디스크 신경이 눌려서 전신마비가 왔거나 급성 척수경색이 와서 하반신 마비가 왔거나 태어나면서 원인불명의 요인으로 제대로 걷지를 못하거나 한다면 그들은 그야말로 돌아가고 싶은 일상은 분명하다.


정상적으로 다시 걷는 것이다. 기구나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걷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는다.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장기적인 회복 과정을 밟아야 한다. 처음에는 서는 훈련, 다음에는 기구를 잡고 걷는 훈련, 꾸준한 운동치료와 개인 작업치료를 받으며 걷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걷다가 드디어 정상적으로 걷게 된다.


일상으로의 회복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이 정상적인 상태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마치 돌 직전의 아이가 드디어 자기 발로 아장아장 걷게 되듯이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린 지금 일상으로의 회복을 소망한다. 그렇다면 먼저 회복의 과정에 대한 각계의 담론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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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일상으로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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