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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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우리는 지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새해라는 시점이 그렇고 오미크론의 공습이 그렇다. 2년여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국민은 매일 뉴스의 첫 기사를 보며 두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시원한 대안은 없는가? 3차 접종률에 대한 기대와 젊은 층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접종 참여에 목이 탄다. 오미크론이 곧 코로나의 대세로 교체되면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이럴 때 정부는 솔직하게 국민에게 위기를 극복할 길을 왜 묻지 않는가? 아니면 뚜렷하고 신뢰가 갈만한 위기 극복 대책을 내어놓지 않는가? 지칠 대로 지친 소상인들의 절규를 헤아리고 있는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만한 대안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


인구절벽 상황은 코로나와 겹쳐 젊은이들이 7포를 넘어 완전포기에 이르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고 다음 세대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져야 국가적 미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라는 거대공동체 운명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인다. 


한 국가를 운영해보겠다는 자들의 면모는 실망을 넘어 걱정을 더 많이 갖게 한다. 우리 국민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위기에 대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앞날이 더 캄캄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 문제를 직시하고 길을 제시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국가위기상황 대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면 어떨까? 국가적 원로들의 조언도 있어야 한다. 지식의 상아탑을 지키는 교수들의 국가의 미래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 일어나는 각양 문제들과 고민들을 함께 풀어가며 목회했던 은퇴자로서 국민에게 고하고 싶은 소원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져야 할 의식의 전환을 위한 고언이다. 


“무엇보다 먼저 쇼윈도를 깨뜨리라!” 최근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쇼윈도, 여왕의 집’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자기가 사는 최고급 저택에서 자기 기업의 상징적 고가품들을 골프채로 깨부수는 장면을 보았다. 인생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로 생각하며 물질적 부요와 자기만족만 추구해왔던 것을 후회하며 그 허상을 스스로 깨뜨리는 걸 보았다. 


코로나 이전의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던 삶의 형태를 버려야 한다.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이웃과 마을공동체와 국가가 하나인 것을 인식하고 화합의 자리로 나가자.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살아내라! 우리 민족은 5천년 역사 속에 숱한 고난을 헤쳐 나왔다. 고난의 가시밭도 걸어 보았다. 전쟁과 가난을 뼈저리게 겪어 보았다. 전염병의 희생도 치러 보았다.


지금의 위기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체내에 흐르는 위기극복의 DNA가 있다. 이를 악물고 참아 이겨내자. 혈관에 흐르는 끈기의 효소를 최대한 끌어내 보자. 이순신이 순조에게 올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라는 결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희망을 붙잡는 강한 수단인 종교성(영성)을 회복하자! 지식과 경험, 교육이나 문화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기후와 자연과 지구를 지켜내는 일은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영혼의 소리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보아 허위허식과 이기심과 우연에 기대어 왔던 나를 벗어 버리자. 이제 조용히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진실했는가? 성실했는가? 배려했는가? 화합했는가? 위의 것을 바라보았는가?


일본 드라마 ‘일본 침몰’에서 경고를 받는 것은 대자연의 공습이 아니라 위기 앞에 생명 구조에 목숨을 건 인간애였다. 영적 존재인 인간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없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우리의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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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두려움을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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