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7(화)
 

토론회 통해 음악문화·학습·예술 활동 살펴보며 선양사업 구체화 토대 마련

 

지영희사업회 토론회.JPG

 

지영희기념사업회는 12월 27일 평택시남부문화예술회관 3층 세미나실에서 ‘2021 지영희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해방 후 지영희 선생의 음악문화 활동과 업적’, ‘지영희 선생의 학습활동과 예술활동에 관한 고찰’ 등 두 가지 주제를 다뤘으며, 기조발제 후 발제자와 토론자가 질의·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고희자 지영희기념사업회장은 개회사에서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연구하고 국악사의 학문적 기틀로 삼는 것은 후대가 해야 할 핵심 사업”이라며 “토론회를 계기로 선생의 국악 학습 활동을 시대별로 체계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편집자 말>


◆ 좌장(김기수 지영희기념사업회 부회장)


오늘 학술토론회는 지영희 선생 41주기를 맞아 열리는 일곱 번째 토론회다. 심도 있는 토론과 고민으로 선생의 업적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생을 선양하는 사업을 구체화하는 하나의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지영희 선양사업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 제1주제 ‘해방 후 지영희 선생의 음악문화 활동과 업적’


“해방 후 조선음악건설본부 건설... 순수한 조성음악 전승·계승 힘 써”


◆ 기조발제1(김태균 전통예술교육문화협회 대표)


지영희 선생을 만나면 한국음악의 본심이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국음악의 과거와 미래를 밝힐 수 있다. 1913년 일제는 조선왕실의 음악을 관장했던 장악원을 격하해 이왕직아악부이라 부르고 학생들을 아악생으로 모집해 이습회를 꾸렸으며 이들로 하여금 우리 전통음악인 아악(雅樂)의 서양 악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게 했다. 결국 아악은 동양음악의 청아한 깊은 맛과 고상한 음감이 사라진 채 보존됐다. 이 때문에 선생은 평생 전통음악의 악보화 문제를 잡고 있어야 했다. 악보화 문제에서 아악부를 다니는 비갭이(非甲, 야반 또는 중인 출신 광대) 아마추어와 세습 전문악사 간의 대립을 읽게 된다. 


해방 후 선생은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해 우리 음악의 체계적인 이론을 수립하고 민간 중심의 음악문화를 계승하며 봉건·일본 음악을 배격하여 순수한 조선음악을 전승·계승하는 데 힘썼다. 


1960년대 국립국악원은 ‘정악은 곧 아악이고 궁중음악’이라는 분류법을 만들면서 정악과 민속악의 대립국조가 고착화된다.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민속악 교육기관 ‘국악예술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실기 위주의 교육체계를 통해 근대음약양식들이 재정비되고 무형문화재로 발전해 나갈 기반이 됐다.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됐고 선생은 초대 지휘자로 활약했다. 1972년 여러 문제로 국악예술학교의 교사직을 사임했고 이듬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보유자에 오른다. 그러나 연구원에 대한 오해와 모함을 받으며 이사직에서 제명당하고 인간문화재 지위조차 박탈당했다.


선생의 꿈은 줄풍류보존회를 통해, 중앙국악관현악단을 통해 그리고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지영희 선생의 인간론, 미학론, 교육론, 그가 정리한 시나위·줄풍류·국악관현악곡을 체계적인 정리할 필요가 있다. 


◆ 토론1(송상혁 국립부산국악원 학예연구관)


전통전승과 현대화라는 관점에서 지영희 선생이 추구했던 음악적 방향성 혹은 음악적 정체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선생이 악보화를 하게 된 동기와 이왕직아악부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이왕직아악부의 악사와 세습 악사가 대립했다는 시각도 있겠으나 서로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던 관계의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2023년은 지영희 선생이 국가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된 지 반 세기가 되는 해다. 이에 시나위의 보존·전승 차원에서 문화재 재지정에 관한 재고와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해야 한다. 김태균 토론자의 지적은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재 재지정은 복잡한 문제다. 선생의 업적을 기념할 방법을 문화적 측면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제2주제 ‘지영희 선생의 학습활동과 예술활동에 관한 고찰’


 “시나위·무용·악기 명인들에게 사사... 체계적 전통음악교육으로 후학양성”


◆ 기조발제2(송선원 지영희기념사업회 수석부회장)


한국음악사에 있어 근대라면 현행 전통음악이 성립되는 시기다. 이 시기를 관통한 지영희 선생은 한국음악사의 산증인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대한 문헌 자료는 <지영희민속연구자료집>과 음반 등이 남아 있다. 이에 선생의 연보를 중심에 놓고 이를 통해 그의 역사와 업적을 정리해보겠다. 


가족관계를 보면 1908년 8월 14일 포승면 내기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부친 지용득과 모친 김기덕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제관계로 추정되는 지용구는 선생에게 해금을 가르쳤다. 동생 지광희와 누이동생도 국악을 했다. 18세 때 정경순과 처음 혼인한 후 가야금 명인 성금연과 재혼하여 슬하에 2남7녀를 두었다. 이 중 딸들은 모두 국악을 했다.


10세가 되던 해인 1918년부터 2년간 이석은에게 승무·검무·굿거리 등 전통무용을 배웠으며 20대 초 서울로 상경해 전통무용, 경기도 시나위 도살풀이 가락과 풍류, 해금과 피리, 대금, 거문고 등을 두루 익혔다. 선생의 예술활동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피리 양경원, 호적(號笛) 조항련, 민속대금 방용현, 경·서도 민요 박춘재, 조선무용 한성준, 풍류 대금 김계선, 창작무용 최승희, 국악예술학교 초대교장 박헌봉, 국악예술학교 설립자 박귀희를 들 수 있다. 그의 유업을 이어받은 제자로는 전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최경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영재, 전 중앙대 총장 박범훈 등 많은 이가 있다. 


선생의 국악활동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문은 1960년 국악예술학교가 설립되어 교사로 근무한 것이다. 민속음악 전반을 오선보로 채보한 학습교재를 편찬하여 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국악관현악단 학생 50여 명에게 장학금을 받게 했고 국악관현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그 후 학생국악관현악단이 1965년 서울특별시로 이관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됐으며 선생이 제1악장으로 취임했으며 1966년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다.


선생이 국악계 최초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한 것은 국악예술학교를 졸업한 2세대들에게 사회로 진출할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지영희 선생이 우리 국악계에 미친 영향과 업적을 더 깊이 연구하여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 토론2(채치성 전 국악방송 사장)


지영희 선생의 학습활동·예술활동은 물론 영향을 끼친 인물과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겠다. 제시한 자료를 보면 선생의 출생년도가 1908년이나 당시 혼란한 상황이어서 출생 신고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선생은 현재 수십 개인 국악관현악단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해금산조, 피리산조에 더불어 시나위나 무용음악 등 선생의 훌륭한 전통음악이 오래 보존될 수 있게 후학들이 힘을 써야 한다. 송선원 출생년도는 공문서를 보고 알게 됐다. 하와이에 세워진 비석에도 1908년으로 새겨져 있다. 지영희 선생의 전통음악 보존과 관련해 경기 시나위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재지정 되길 바란다. 국립국악원은 선생의 줄풍류에 관해 세밀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연구와 논의의 폭을 넓혀 선생의 다른 전통음악에 관해 알아가야 한다. 


◆ 종합토론1(오중근 지영희기념사업회 전 회장)


지영희 선생의 훌륭한 업적들을 학술적으로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지영희사업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지난해 평택에 문을 연 한국근현대음악관이 평택시의 자랑이고 지영희 선생님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이 왜 하와이로 갔는지 등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면 한다. 


◆ 종합토론2(임봄 지영희기념사업회 총무이사)


서양음악을 중시하고 민족음악을 반대하는 것과 서민의 애환과 정서를 대변하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맥이 통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기에 국극 창극과 지영희 선생에 대한 관계에 대해 궁금하다. 악성추모제는 1962년 10월에 개최한 것이라 한다. 민속예술제전에서 이미 개선된 국악기로 50여명이 넘는 합주, 국악의 합창단 편성, 여기에 입체적인 대군무를 안배했고, 이것은 전통적인 민속예술을 바탕으로 구성은 다분히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는 기사가 있다. 그렇다면 국악관현학단을 조직한 것은 ‘민속예술제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 종합토론3(김보경 지영희기념사업회 이사)


지용구에 대한 내용에서 해금시나위로 불리는 해금산조를 창조하고 그의 해금산조는 지영희 선생에게 전승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영희민속음악연구자료집>에 기록되어 있는 ‘해금산조’ 해설과는 내용이 달라 명확한 이뤄졌으면 한다. ‘새가락별곡’, ‘터벌림’, ‘올림채’ 등으로 춤에 구성된 장단을 통해 한영숙류 태평무를 언급했는데 그 중 ‘새가락별곡’은 장단 이름이 아니고 성금연이 작곡인 창작곡 명칭이다. 


◆ 종합토론4(송선원 지영희기념사업회 수석부회장)


지영희 선생의 인물관계에 관해 연구할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된다. 주변인물과의 관계, 이 인물들과 어떤 음악과 활동을 했는지를 살펴보며 선생의 예술활동 방향들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선생을 기념하는 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전문가에게 맡겨 운영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근현대음악관에 학예연구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을 위해 공연도 필요하고 더 많은 관련 자료도 필요하다. 

 

정리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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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희기념사업회 “지영희 선생에 대한 추가 연구와 체계적 정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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