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어머니의 작은 집 대문을 열어 본다
찰방거리며 닿은 바가지 소리
놀란 靑무가 박꽃으로 뒤척인다
한나절 발가벗기어진 만근의 신음이
얼마를 더 가야 할지 모르는 미명으로
축축하게 떠돌아다닌다
변태를 꿈꾸는 누에고치처럼 나는,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는 하늘을 잡으려고 한다
어둡고 간기가 흐르는 옹정
인고의 세월이 몸 바깥에서부터
차츰 중심부로 살갑게 물들어 가면
비로소 바닥에 하얗게 닻을 내린다
질박한 어머니의 손길이
고요한 수면을 휘휘 젓고 들어와
내 몸을 한 번씩 만져 보고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시린 손 끝에 핀 박꽃에게 젖을 물린다
어머니의 꿈이 익어가는 작은 집
어린 손자가 항아리 속에서
뽀얗게 잠을 자고 있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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