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이제 당신은 노을빛으로 도배한 희망의 동산에 올라 크나큰 은총의 성수에 멱 감을 때. 그리하면 천상 최대의 지상을 맛보게 될 터다. 값진 생애를 향한 더없는 애착과 가없는 정수를 더해. 나아가 대지 위에 피어나는 빨간 빛 봉오리의 술렁임에 휩싸여. 그건 가슴 뛰노는 경탄의 아우성이거나 퇴락한 별똥별이 굽어져 내리는 하늘 계곡의 무지개였음에 틀림없다. 노을은 아마 태초에 잇달았던 천지간의 입맞춤이었을 게다.

  정녕 헤아릴지니 생의 공백을 메워줄 기쁨을 매만지려거든. 아득한 허공을 가르는 사자(使者)가 누구인지. 그리고 천사보다 뜨거운 피조물이 바로 자신임을 인식할지어이. 만용과 나태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 막 두꺼운 알을 깨고 나온 모습으로 신선한 태동을 지각할지어이. 그로부터 탈피하라고, 아니 탈환하라고. 이윽고 저녁놀을 향한 붓대롱의 집념이 나를 부추긴다. 숱한 모멸과 멸시로 얼룩진 막바지 불꽃이 숨죽이고 있으므로.

  가냘픈 한 석수장이의 집요한 업고(業苦)에서 진실의 뿌리를 보았던 터. 네 인식의 공간에 묻은 한 움큼의 위작이 손가락에 끼어들었기에. 하여 훌훌 털어버릴 건 한 줌의 재. 눈비에 씻겨나간 초월의 언사를 정성스레 되새겼다면 더욱. 하물며 맑디맑은 수정에 오염된 세파라면 더더욱. 어둠의 적막에 놀라 종말의 항아리를 산통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면 말이다. 텅 빈 가슴을 부여안고 울다 지쳐 끝내 쓰러져버린 탕자처럼. 물론 되돌아왔지만.

  드디어 해뜩 발긋한 저녁놀에 대한 나의 감흥은 극미한 상상의 첨탑. 공허에 찌들어 희끄무레 세어버린 초라한 차림새의 자아가 살아있기에. 하루에 하루를 보탠 영혼이 천국의 틈바구니에 서서 진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으므로 끝까지. 곧장 응시하라, 그토록 허름하고 누추한 몰골의 껍질뿐인 나라도 있거들랑 이내 사랑하라. 그렇게 끊임없이 대차게 위무하노라면 미세한 회복의 기미를 누릴 수도 있을 테니까.

  영상(影想) - 짙은 해거름이 기다랗게 드리워진 저녁 한때, 해낭을 걸머지고 떠나는 행려(行旅)의 해낙낙한 얼굴에서 이름 모를 인간의 허덕이는 정한을 엿본다. 해질녘 고운 황혼은 나의 영상이기에. 날마다 이맘때가 되면 굳이 휘영청 떠오를 둥근 달의 예비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한번은 스산하고 소슬한 대기에 듬뿍 젖어 무심코 흘려버렸던 주변의 세월과 덧없이 망각한 채 외면했던 정서에 불현듯 두 눈을 부릅뜨게 되리라.

  서쪽 하늘 산등성이를 비껴가는 아름다운 자태. 이윽고 뜰 앞의 정경은 스러지고 급기야 삶을 인정하는 마음의 종소리가 들린다. 어리둥절한 상념. 옳거니, 그건 땀에 절어 짠 내 풍기는 생명력. 간밤에 노을을 통한 그대의 시편이 구차한 나의 살결에 끈적끈적 엉겨 붙은 줄은 미처 몰랐다. 우거진 빛의 행렬과 응시의 시간. 그러나 내겐 제 빛이 없었다. 저마다 정체를 뿜어낼 수 있다면 한데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부대껴 서로를 느낄 수도 있으련만.

  문득 저녁놀에 이는 바람. 옆구리 삶의 불안이 누군가를 엄습해 오고 있었다. 이것이 이제껏 내가 감지한 내 존재의 뿌리임을 알아챘을 때는 난 도무지 움직일 수조차 없는 설렘으로 야릇한 공포의 전율에 떨어야 했다. 미상불, 난 나의 뿌리를 얻고픈 충동에 몸서리치는 지푸라기를 부여잡고 있었으므로. 혼탁해진 육신과 혼몽해진 정신, 왜 수많은 이들은 자기 자신에게마저 왕창 따돌림을 당하고 떠도는가. 도무지 가혹하리만큼 .

  회상(回想) - 지난날을 회고하려다 언뜻 지나친 억측을 배운 탓일까. 요즈음 내가 토해낸 유독향의 토사물은 노을의 나루터에 정착한 나이 어린 회상의 소산물이다. 후후, 애정의 결정체라니, 이보다 축축한 억설이 또 있을까. 좌우간 어떠한 형상으로든 저녁녘 놀빛이 대자연의 자연적 조락(凋落)을 담보한다면 그건 되레 원초적 원형으로 연결된 웅장한 복귀일 터다. 무한정 태초를 상기할 만한 유한한 존재의 정체를 찾아 끌어안고 싶었으므로.

  신새벽마다 움트는 노을. 그곳 서편 하늘가에 낮과 밤을 가르는 은은한 향이 있다. 어둠이 묻은 나를 투시한 낙조. 온갖 허구를 비추는 목 떨리게 신묘한 거울. 나와 대립한 또 하나의 다른 나. 노을은 내게 있어 비상이고 지혜이고 나락에 던져진 나를 향한 메아리였다. 이를테면 도로(徒勞)의 타성에서 구출하려는 시도. 혹여 노을의 숨 가쁜 연가는 지적 설계자의 중력이었을지도 모른다. 휴우, 닳고 닳은 내 마음의 발산.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91호)에는 '노을 수상록 <4회>'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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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노을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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