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다만 잠시나마 기름기 없는 논밭을 가는 촌부의 겸허한 눈빛으로 돌아가 대자연의 소리를 들은 거였다. 노을이 발하는 빛은 가려져 보이진 않으나 만물의 원동력인 듯 충일하다. 온 누리에 전이되는 들리지 않는 외침인 터다.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라는. 타인이 자아를 재단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아가 타인을 분별하는 슬기와 그런 용기가 요긴한 시공이므로. 끝없이 펼쳐진 미리내의 함성을 듣고 또 듣더라도.

  위쪽을 바라보노라니 들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저녁놀.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랑, 내 거처하는 토담집이랑, 약한 나를 아끼는 지기들이랑, 그 밖의 많은 생명들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 붉으나 붉은 빛. 신께서 태초의 색으로 택하셨음 직한 고귀한 빛깔. 온갖 것들이 어느새 발갛게 물들었나니 나 또한 새빨간 옥빛으로 물들어 있으리. 때문에 서산 자락을 휘감고 도는 노을을 한 아름 으스러져라 껴안을 수만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깜박거리는 생명을 얻은 바였다. 그러나 불가지(不可知)도 아닌 불가해(不可解)의 것, 연상에 연연한 뒷모습일 뿐이다. 노을이란 다정에 목마른 여울목이자 가련히 자리한 동경이요 그리움이니까. 뒤섞인 체험이 크나큰 어둠을 잉태한 나머지 나타난 빛의 알인 동시에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등대였던 터다. 저녁놀이 비치는 곳에는 늘 참사랑의 불빛이 꺼지지 않기에. 너와 나를 녹일 만한 햇무리가 만연한 달무리 뒤에서 해맑게 피어나는 것처럼.

  단상(斷想) - 미묘한 일치, 그리고 이어진 단상. 이제는 마음속에 도사리던 언감생심의 그림자를 투기하고 토로하고 싶었다. 그렇게 노을을 닮고자 부르짖던 나의 피맺힌 갈구가 말살된 직후 가늘게나마 얻어낸 질서였다. 그걸 떠올리면 제아무리 가벼운 안정이라도 되찾기를 앙망했으되 나의 편견을 미화하고 상념을 승화한 푸념이 날아다니는 통념처럼 여의치는 않았더랬다. 자꾸만 들추고 뒤집었을망정 더 이상 건질 거라곤 없었으니까.

  이른바 관조의 경지에 몰입하거늘 영험의 세계와 만날 결기가 내 안에 도사린 터였다. 석양의 해끼를 뒤로하고 눈동자를 가득 메운 빛의 함성을 들었기에. 엉겨 붙은 희미한 기억으로 설익은 해님의 나래 짓을 환송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붉은 빛 뿌리를 흘끔 훔쳐봤던 참이다. 영탄하건대 뻗어 오르는 장엄한 광경. ‘햐아, 저건 천국의 길목에서 바라본 파멸이 재생하는 내 오장 육부의 찌끼를 사르는 화염의 성난 연파(軟派)’였던 셈이다.

  다시 별빛이 드리워질 즈음 하오의 태양에서 내뿜는 석양의 긴긴 그림자를 보았다. 존재, 필연, 해후, 덩어리, 응어리, 이 모두는 나의 침침한 양심을 투영한 노을의 반사경에 지나지 않았다. 노을은 감춰진 비밀의 거울이었다.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러서라도 정복할 머나먼 요새. 나는 과연 그 비밀을 접하여 참다운 생명의 진수와 놀라운 삶의 철리(哲理)를 맞이했던가. 실로 위대하고 위애(爲愛)한 사유를.

  개안의 숨 가쁜 찰나. 돌아보노라면 세상이란 거대한 대리석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의 정물화요, 진한 비애로 점철된 요지경속이어서 스스로 움직여 부딪쳐야 겨우겨우 살아졌거늘 가냘픈 순간을 간신히 들이마시다가 숨 막히도록 번번이 신음했던 참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죄다 시끌시끌한 심호흡을 애써 가다듬고 있었다. 그러니 저마다 파놓은 함정에 뛰어들어 어렵사리 번민의 괴성을 질러댈 밖에. 번득이는 위기는 한갓 죄악이었으므로.

  환상(幻想) - 아뿔싸, 송두리째 잃어버린 삭막한 환상. 현실에서 우리는 감각적 가감을 통해 참다운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빈약하고 허약한 의지나마 박박 긁어모아 보다 인간답게 살려는 의식의 고지를 여봐란듯이 밟아보고 싶어서 말이다. 마땅히 회복해야할 고토. 지친 이방인이기에 유숙할 수 없고 표류하는 조각배이기에 지레 포기할망정 이같이 외로운 낱말들을 탐하는 한 노을색의 고귀함을 포기해서는 안 됐다.

  노을은 대자연의 모태. 그 기다란 광맥을 예의 예의주시하노라면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았던 삶의 방향성을 되찾은 듯하다. 때문에 커다란 욕망에 부풀린 오만을 떠나보내고서야 각자의 몸뚱어리에 감긴 통속의 쇠사슬을 과감히 끊어버릴 수 있으리라. 고공을 벗 삼아 늘어뜨린 자태야말로 고고한 고향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인간 본원의 안식처를 송두리째 잊고 살았던 게다. 그간 무엇이 정녕 그들을 그토록 옭아매고 저주했을까.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90호)에는 '노을 수상록 <3회>'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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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노을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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