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복음을 언약한 예표와 실현. 그 맥락은 실로 감미로운 돌출이었다. 저만치 은폐한 이따금은 단비였지만 뚜렷한 역설이었다. 간절한 결과물을 고대 흐트러뜨린 건 꼬집고 할퀴고 찌르고 파헤친 뒤 주워 담은 치료제. 아니 일견 포승이나 족쇄에 버금가는 질주였지만 진주의 모호를 단박에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복기하니 어엿한 초장에 도도한 흐름을 놓쳐버린 연고. 감질난 관습이었기에 가납할 만한 터전이었다. 좀 순화하자면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견한 횡재랄까. 그러나 거저 얻어진 상속분이거나 그물에 걸려든 덤은 더욱 아니었다. 전지하신 전능자와 인격 대 인격으로 마주치고서야 극적으로 껴안은 징표이자 신표이므로. 족히 독생자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맞닥뜨린 비밀이므로. 사단에 사로잡힌 사각지대를 뛰쳐나온 뒤라야 설익은 심장일지언정 성령이 내주하시므로.

  갈급한 갈구(渴求)의 갈무리. 앞서 자질구레한 토설(吐說) 끝에 망실한 실과를 두고 얼룩진 이면사를 얼마큼은 들여다봤다. 다름 아닌 우리 존재는 각자에게 피안과 위무여야 한다는 당위를 사뭇 동경하면서도 저마다 황무해진 능선을 내보이며 짐짓 미움을 품고 흥청망청 흥정하려들지 않았던가? 따라서 시방 모두에게 요긴한 건 떨리는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고 적실 청량제. 누구든 태고 적 양심의 심연에서 울부짖는 진솔한 푸념을 듣고 싶고 진부한 외침으로만 그치지 않을 일갈에 유난히 맞장구치고픈 마당이 간절하다. 헤어져 푸진 멍석을 깔고 너울너울 춤추는 기개에 다들 기갈이 들렸으므로. 때문에 목청껏 그리움을 부르짖노라. 기울어진 지축에 매달려 지평선을 품을 그대를! 타조처럼 타원을 그리며 둥그런 수평선을 껴안을 청춘을! 하지만 펼쳐질 노정이 그리 여의치는 않노라. 기대로 감격에 겨운 행각이로되 어느덧 비틀대는 심성에 수혈할 깡마른 영(靈)이여, 혼(魂)이여, 육(肉)이여!

  뒤돌아보매 설핏 저물도록 무력하고 아둔하던 시절의 순진함이란 온통 어둑서니였다. 헐떡이는 숨결조차 조촐한 여기(餘氣)쯤으로 여길 만치. 문득 꼭두새벽 손수 손수레를 끌던 생부의 뒤꽁무니가 떠오른다. 돌이켜보매 고이 잠든 책력 가운데 때 묻은 얼룩이었다. 이제 바라기는 고답적 역정(逆情)을 운운할 계제가 아니로다. 눈떠보니 배냇짓하던 양수에서 꼼지락거리던 유희였기에. 내심 아득한 속악(俗惡)에 허덕이던 흑암이었기에. 하긴 하찮은 언어에 떠밀려 현란한 말놀음에 그쳤기에 멋모르고 날뛰었던 터. 결국 제 풀에 꺾인 자연인의 행보였노라 거푸 곱씹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묵직한 객기에 묶여 치기 어린 사족을 남발하였으니 원치 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건 불 보듯 빤했고 벼랑 끝 사지(思地)에서 질러대는 비명일 밖에. 불원간 방랑하는 탕아(蕩兒)에게 불어 닥칠 불 심판에 불가불 불시착할작시면 말이다.

  떠올릴수록 수치스러운 분초들. 더불어 각성하기를 맛깔스런 어휘의 걸쭉함도 토속적인 문구의 질박함도 흐물흐물하려니 했고, 응당 설익은 농축에 풀어진 응집을 발효할 시공일랑 아예 없었다. 언감생심 그 옛날 단사(簞食)와 표음(瓢飮)을 가멸차게 추격하기란 도무지 불가능했으므로. 하여 여태껏 주저리주저리 뇌까린 농담 반 진담 반의 수상(隨想)들을 전격 철회한다한들 망가진 자아를 쾌히 복원하고 용납할 근거는 하등 마뜩치 않다. 단지 천상의 저편에서 허기진 형태소를 형상화하려 부득불 집필했거니와 기름기 없는 음운을 간추려 음률과 운율을 엮어보려 애써 여과했을 뿐이로다. 다만 부력과 여력을 다해 침착한 침잠을 거듭한들 그냥 역부족이어서 허허로운 심령을 얼큰히 달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내키지 않은 사고체계를 초개같이 파기한다손 쳐도 손을 놀 만치 태부족이었으니까. 뒤집어보니 남달리 치욕스런 자화상을 나름 추슬렀고 영화로운 미래상을 얼마간은 흡착하고 천착했던 참이다.

  “영혼 없는 육신!” 신구약 성경은 이를 가리켜 ‘실향민’이라 했던가? 암수 사물의 시원(始原)에서 잃어버린 영생. 그 염원을 냉큼 되찾기만 한다면 수만 번째 회심인들 어디 미룰 수 있으랴마는 미적지근한 은근에 들척지근한 끈기밖에는 지닌 게 없기에 지지고 볶고 버무릴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렇지만 맛깔스레 삶으려다 그만 물러터지도록 데쳐버린 원한마저 갓 무쳐낸 정한으로 마무리하기는 심히 난삽했다. 주제넘은 원천을 따지고 들자면 한 맺힌 씨족의 일원까지 이토록 질척한 박토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속절없이 죽어간 게 근인(根因)이었다. 오오, 생령이 태동한 본향을 잃고 자아를 잊고 드디어 신마저 부인했던 나의 믿음, 그대의 소망, 우리의 사랑이여! 줄기차게 이어진 줄기와 뿌리 깊은 뿌리를 캐물은 순간 절절히 통회하는 간구로 심화한 자유를 앙망하며 염통 옆 속살을 헤치고 후비고 그렇게 파고들리라. 고고한 학처럼 부디 구원받은 백성의 복락을 맘껏 구가하며…….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88호)에는 '노을 수상록 <1회>'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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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나락(奈落)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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