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적잖이 부끄럽고 회한 어린 고백의 여로. 그 토로의 한 자락을 미적미적, 그러나 차근차근 추적하련다. 되짚어보건대 어느 고적한 골목에서 홀로 서성이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나의 뇌리엔 켜켜이 꿈틀대는 사념(思念)의 편린들이 줄지어 맴돌곤 했다. 잃고 잊고 살아온 세월의 지층에 부패한 증오와 질퍽한 불신들이 흥건히 괴었음을 흘끔 훔쳐본 터였다. 혼란한 사유(思惟)의 흐름은 어느 날 멸망이란 괴물의 거대한 담벼락에 막혀 자꾸만 멈칫거렸다. 정처 없는 과장으로 은유했다면 웃기는 관념이었을 게고, 과녁을 겨냥해 재간 없이 쏴대는 상징이었다면 딴엔 솔깃한 요설이었을 게다. 불가해의 한계를 덕지덕지 떠안고 치달았던 지난날의 과오들. 그 자잘한 자백의 소치가 은은한 사려(思慮)의 소산이라면 좋았으련만, 그게 아니었다. 한껏 소담스러워 팽팽히 부푼 사상(思想)과는 더욱 거리가 멀었으므로. 자못 채이고 시달린 사고(思考)의 근원에서 포말처럼 부서지는 삶의 메아리를 슬그머니 엿들었을 뿐이다. 어렴풋이 어리바리 또는 우물쭈물 어영부영, 그러니까 흡사 어릿광대처럼 어설프게 말이다.

  앗 뜨거운 사랑, 난 그 눈먼 빛깔을 마냥 사모(思慕)했다. 그러나 그건 가없는 위선일 뿐 일종의 일치는 아니었다. 돌아보건대 다함께 누리는 화평마저 노기를 내뿜는 눈빛으로 연신 흘겨봤으니까. 파삭 으스러지기 직전의 언덕배기에 이름 모를 바보가 우두커니 서있었으니까. 그는 온갖 사물에 대해 자주 비아냥거리기를 비겁할 만큼 즐겼으니까. 한사코 상처 입은 혼신을 내던져 고작 부유(浮游)하기만을 탐닉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한동안 자신만의 성곽에 갇혀 나날이 철부지가 되어갔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 산산이 부서지는 안광의 파편들이 흩날렸다. 애처로이 그 조각에 빗맞아 갈수록 새빨개진 생채기는 혈관을 짓무르고 있었다. 후줄근한 동네의 후미진 구석에서 갈팡질팡 널브러진 채. 돌이켜보니 황량한 벌판에 번지는 불길처럼 간이정류소조차 지나쳐 치닫던 한때였다. 그즈음 이른바 영혼을 신음하는 영혼으로 불렸던 건 그래서였다. 다행인 건 아무도 나를 쉬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 짐짓 집적거리듯 무서운 눈매는커녕 수더분한 눈총이며 매서운 눈치마저 미처 갖추지 못했으므로. 보시다시피 나의 지론이 여태껏 사족인 바는 불의한 첫사랑을 수수방관한 원죄를 못내 떨쳐내질 못해서였다.

  미성숙한 눈망울에 잠긴 세상사. 그 일거수일투족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일탈이었다. 말하자면 가녀린 사랑(思浪)의 역류에 속수무책 휩쓸렸거니와 그저 표표히 표류하는 몰골에 지나지 않았다. 언필칭 시경(詩經)에 적힌 사무사(思無邪)를 시종 갈구한 나머지 정작 사랑의 망태기를 송두리째 뒤엎어버린 뒤였다. 사랑하시며 끝까지 인고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극구 뿌리치던 사춘기. 나는 영락없는 영생의 궤도를 벗어나 질풍노도 곤두박질치는 영육의 연약지반에 시나브로 빠져들고 있었다. 때마침 부어주신 크나큰 은혜가 아니었다면 결단코 아찔한 파멸의 구렁텅이로 치달았을 형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돌고 도는 지구촌의 신비는 고사하고 한 치 오차조차 불허하시는 섭리조차 새까맣게 몰랐으니까. 하긴 자전과 공전을 한꺼번에 껴안은 존재감마저 흐릿한 유소년이었으니까. 가증스런 이신론(理神論)에 뒤섞여 모순적 불가지론을 보태고도 끝내는 마치 무신론을 역설하는 무뇌아처럼. 그토록 무한한 무지에 무작정 함몰돼 무진장 고함만 쳐대며 지냈던 때였다. 되바라진 그 뇌파에서 정신 줄을 놓았던 오대양 육대주. 그때 그 천지사방에 낭자한 보혈의 공로를 대뜸 거두셨다면 끝 간 데 없이 떨어지는 무저갱의 울안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할 뻔했다.
 
  이를테면 수더분한 세류에 목매인 방백이랄까? 더딘 발걸음과 무딘 하소연에 흐느끼던 벙어리였기에 줄곧 여려터진 새가슴이었다. 애최 곤핍한 나의 외침은 구만리장공을 가르며 치솟는 절규이자 기원이었다. 급선회한 사랑의 질곡. 그건 가슴 아리는 수줍음이고 인기척 없는 옹달샘이었다. 호젓하면서 조요(照耀)하고 한편으론 고동치는 맥박이었다. 아울러 얼룩진 그리움에 옷깃을 여민 설렘이었다. 나아가 금세 밝아올 동해의 순정이었거니와 갑갑한 운무가 걷히고 나면 어차피 드러날 나신에 불과했다. 흡사 앙상한 무도회의 말미에서 심호흡하던 왕세자인 양. 곧 길손을 위한 이정표. 덕분에 눈자위 시리도록 청정한 호수를 건졌다. 거기는 티 없이 해맑은 텃밭이었건만 내내 스멀스멀한 운치에 파묻혀 신음했다. 그처럼 고매한 사랑은 순백의 뜻이었기에 태초에 드렸던 아벨의 제사인 양 그윽이 정제된 정성이어서 비밀스런 기쁨에 목메는 제단. 그간 행간을 빌려 기웃거린 푸념들만 박박 긁어모아도 사랑은 본시 둔탁한 감성의 원형질이었을 터다. 굳이 선명한 주석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진실의 생리에 보다 가까워질 순 없을까? <홈페이지
http://johs.wo.to/>

※ 이번호부터 '나락(奈落)의 저편'이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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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나락(奈落)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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