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거부당한 까닭이 아무래도 석연찮아 내가 불쑥 나섰다. 그렇다면 애당초 예약은 왜 받았으며, 도대체 몇 시에 이곳을 방문하느냐고 반문하니 무척 귀찮다는 얼굴로 그 이상은 밝힐 수 없노라고 얼버무렸다. 짐짓 대꾸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투여서 퍽 언짢았으나 한 발 더 나갔다가는 수많은 제자들 앞에서 자칫 비교육적 언사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항의성 힐문을 가까스로 삼키고 말았다. 후줄근한 일기에 일그러진 일정. 어처구니없게도 애써 찾은 지인(知人)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꼴이었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건 교육자의 무시당한 자존감.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밀려나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에버랜드>로 돌렸다. 값비싼 시간을 들여가며 대단히 유익하리라 기대했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하여.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건 한껏 눅눅한 나대지(?).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꼴이었다. 궂은비 내리는 그곳은 흡사 황량한 들판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고 아무리 둘러본들 이용할 만한 놀이시설 하나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 우리는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차가운 빗줄기를 피해 차안에서 점심을 때우려니 몹시 심란했다. 하지만 어쩌랴. ‘미술관 견학 불가’로 생긴 문화적 허기를 영양가 없는 아프리카 토인들의 민속춤으로 요기할 수밖에. 이후 여기저기 기웃거렸으나 시간이 남아도는 처지. 억지춘양 격으로 줄지어 회전목마에 올라본들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 죽이기에 불과할 뿐 형편없이 구겨진 소풍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예정을 앞당긴 오후 3시 반. 불만에 찬 아이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버스는 또다시 가녀린 빗속을 헤치며 서둘러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다가 행여 지체 높은 양반들의 기다란 차량 행렬을 맞닥뜨리기라도 할라치면 그대로 정지된 거리에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당할 시련과 비애가 끔찍해서였다.

  우리는 언제나 이른바 남이든 북이든 높은 분과 낮은 이들이 어우러져 비범한 전시물을 범상하게 구경할 수 있을까? 그 언제쯤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인간적인 궁금증을 자연스레 나눌 수 있을까? 언제까지 우리는 푸르뎅뎅한 차림의 요원들이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군사문화의 굴레에 꽁꽁 묶여 살아가야 할까? 인간만사가 다 그러려니 포기하고 체념하려니 그야말로 속이 터질 지경이다. 엄숙히 기약한 교육적 일정을 강탈당한 울분. 다분히 비교육적인 핑계로 거절당한 속내를 제자들에게 무어라 설명한담? 어른들의 떳떳치 못한 민낯을 송두리째 보여줘야만 하다니 부끄러웠다. 크고 작은 사념의 파편들이 나의 산란한 골수를 파고드는 가운데 나는 무거운 두개골을 간신히 추슬러야 했다. 정치 후진국의 후진 자화상. 나는 그렇게 날치기에게 빼앗긴 내 봇짐을 포기한 채 남몰래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악에 받친 듯 불러대는 노랫소리. 나는 그 소음에 파묻혀 걔네들의 막바지 여흥에 하릴없이 동조하고 있었다. 수순은 나를 향한 강압적 요청. 순순히 마이크를 잡았다. 첫 곡은 다소 유장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걸 그 옛날 기분을 되살려 흡사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채워 드릴 것’처럼 불렀더니 딴엔 감정 처리가 괜찮았던지 귀가 따갑도록 “앵콜! 앙코르!”를 질러댔다. 열화와 같은 성화에 못 이겨 화답한 곡목은 ‘비목’이란 가곡. 그 역시 ‘궁노루 산울림이 달빛을 타고 적막한 그리움에 정말 울어 지친 것’처럼 끝까지 불렀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때늦었지만 기실 난 그때 문득 흘러간 팝송 ‘Don't forget to remember’가 떠올랐더랬다. 그래서 진짜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어쭙잖은 영어 발음을 내보고 싶었더랬다. 그러나 아뿔싸, 그 결정적인 순간에 예의 병적인 소심증이 느닷없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토로하건대 두고두고 아깝고 아쉬운 장면이었다.

  돌아오는 길. 앞차에 펑크가 나는 바람에 약간 늦어지기는 했으나 열 한 대의 버스는 무사히 귀환했다. 몸보다는 맘이 더 곤고한 하루. 현관에 들어서자 여느 때처럼 상냥한 아내와 두 아이가 가장을 반긴다. 나는 아빠에게 매달려 지절대는 아들딸의 질문도 받는 둥 마는 둥 TV수상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때마침 앵커는 상기된 목소리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각출한 커다란 성과에 한창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흘러나온 뉴스는 이러했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 일행의 호암미술관 방문이 비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지축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완전 어이없고 우스꽝스런 장난! 답답한 나머지 발코니로 나가 창문을 열어 제쳤다. 샛노란 하늘빛. 어둑발이 내린 하늘은 진짜 노랬다. 온종일 울어 지친 매정한 날씨처럼. 그것도 우리가 거기서 의미 없이 돌아선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된 시각에, 그 엄청난 결정이 내려졌다는 해설을 곁들여…….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85호)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나락(奈落)의 저편' 첫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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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소풍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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