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꽤나 오래 전 겪은 이야기 한 토막. 남북 사이에 제법 이런 저런 만남이 이뤄지던 때였다. 거친 빗소리에 놀라 지레 잠에서 깨어나니 꼭두새벽. 그날따라 빗줄기는 여태껏 못 보던 기세여서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이런 날 무슨 소풍을 가겠나싶어 어두컴컴한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뒤늦은 아침도 뜨는 둥 마는 둥 한 다발 걱정을 앞세운 채 출근한 교정. 그렇지만 장대비를 뚫고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목적지는 호암미술관과 에버랜드. 전에도 현장체험학습을 떠나는 날이면 이따금 빗방울이 짓궂게 굴기는 했으되 이처럼 지독한 억수는 처음이었다. 연일 빡빡한 학교생활에 지친 학생들을 이끌고 스트레스를 풀러가는 마당에 요게 뭐람? 인원 점검을 끝내고 기도를 드린 뒤 차창을 보니 궂은비는 여전했다. 우는 유리창을 하염없이 두드리는 봄비. 그 무심한 빗줄기와 더불어 우리는 출발했다. 버스회사와의 계약 날짜를 지킨다는 숭고한(?) 이유로.

  자못 내키지 않은 행보. 그러나 나는 흘끔 아이들의 낯을 훔쳐보고는 나름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소녀들은 일말의 시름은커녕 연신 특유의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았거니와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오늘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부득이하게 소풍이 순연되기라도 한다면 결국 피곤한 쪽은 우리 교사들이기는 했다. 그랬다. 예전에는 이리 장대비가 퍼붓는 날이면 으레 일정을 취소하는 게 상례였고, 그 뒤치다꺼리는 고스란히 담임들의 몫이었다. 다행히 인솔자들의 속셈을 알 리 없는 애들은 차라리 순진한 축에 가까웠다. 흠뻑 젖은 대지. 북상하는 기압골의 영향인지 심술인지 빗줄기는 더욱 세찬 기세로 짓무른 논밭을 두들겨댔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든 사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던 전세 버스는 차츰 도로 체증을 감내하기 시작했다. 투덜거리듯 굴러가는 네 바퀴. 가다 서다를 거듭하며 행선지를 향해.

  그때였다. 어디선가 가늘고 여린 콧노래가 들리더니 이내 차안을 메웠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흥얼거리는 아이들. 게다가 축 처진 기류와 썩 어울리는 노랫말이었기에 한결 묘한 정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떠도는 의미를 퍼오려니 단 한 소절도 뚜렷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럴수록 두 귀를 쫑긋 세워본들 일부 가사는 물론 제목조차 낯선 대중가요. 그나마 건진 건 내 차례를 알아차린 눈치머리. 나는 잽싸게 대학시절 애창곡을 끄집어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대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은 원래 기타 반주에 맞춰 음미하듯 조용히 읊조려야 제 맛이련만 도무지 그럴 형편이 아니어서 내 감성과는 무관하게 떠밀려 후딱 해치워버렸다. 저희들이 듣기에도 별로였는지 더 이상의 요구는 없었다.

  버스는 막 수원을 지나면서 체증다운 체증에 부딪혔다. 거푸 조느라 얼마간 침묵하던 학생들도 조금씩 술렁였다. 동시에 나는 내게 주어졌던 명상의 시간을 반납해야 했다. 준비된 사회자의 능력 탓인 듯 다들 지시에 순응하는 분위기. 당대 우상이던 심신 오빠의 히트곡을 시발(始發)로 호응 없는 합창이 이어졌다. 뭇 시선의 혼돈 속에 한 아이가 메마른 개그를 선보였다. 반향 없는 메아리. 그 정적을 으깬 건 ‘비 내리는 호남선’이었다. 단언컨대 목청껏 질러대는 여고생의 합창이야말로 듣기에 정말 거북하다. 잠깐 동안의 어색한 동거가 끝나고 그닥 재밌지도 정겹지도 않은 흐름을 지긋이 상쇄한 건 버스였다. 서서히 속력을 내자 그녀들의 게걸스런 유희도 곧 시들해졌다.

  이윽고 첫 견학지인 <호암미술관>. 오전 1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변함없이 비는 흩뿌렸으나 누꿈한 틈에 무리 없이 정문을 통과했다. 비옷을 입은 경비원들의 바쁜 몸놀림. 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관내에 전시된 골동품으로 쏠렸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이 그토록 아끼는 유물들은 어떤 모습일까? 적지 않은 무리의 가지런한 줄서기. 그런데 왠지 닫힌 문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20여 분쯤, 되돌아온 건 ‘관람 불가’였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람? 500여 명의 학생과 20여 명의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견학을 불허하다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알림에 죄다 어안이 벙벙했다. 일행은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제지하는 쪽을 주시했다. 설명인즉슨 이러했다. “남북고위급회담 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이곳을 방문지로 정해놨기 때문에 관람이 안 됩니다!” 아주 짤막하고 매우 무성의한 해명. 따라서 준비할 게 많다는 거였고, 관람객을 들여보낼 경우 청소를 다시 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는 거였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84호)에는 '소풍가던 날 <하>'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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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소풍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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