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1(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오래 전 농촌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던 ‘전원일기’가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춘 뒤 요즘 부쩍 잔재미를 붙인 프로그램이 있다. ‘러브 인 아시아’가 그것이다. 한국으로 시집오거나 장가든 외국인이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낯선 문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 회를 거듭할수록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러브 인아시아의 구성은 엄선한 가정의 일상사를 소개한 뒤 항공권을 지원해 고향을 방문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눈물콧물로 뒤범벅된 만남을 뒤로하고 허름한 집을 고치고 편리한 가전제품을 들여놓는가하면 때늦은 결혼식을 올리는 등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장면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아쉽게도 근무 여건으로 인해 죄다 실시간으로 챙겨볼 수는 없지만 여의치 않으면 녹화된 영상으로라도 밀린 흥미를 달래곤 한다. 이방인끼리 뭉친 어엿한 가정. 우리말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정겹다. 물론 다들 알콩달콩 잘 사는 건 아니다. 그 뒤에 어두운 현실이 켜켜이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필자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의 사랑은 대체로 아름답다. 
   
  여기서 무겁게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다. 역사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도 근거가 미약한 단일민족이라는 우월의식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상존하는 단세포적 사고 가운데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연유인즉 누구라도 아메바가 아닌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에 그러하다. 어느 피붙이인들 순수 혈통일 수는 없는 게다. 가정컨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연인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둘 간의 촌수를 따진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든 실제 여덟 단계만 거치면 서로들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단다. 앞으로 연구를 거듭할수록 한 아비와 한 어미의 핏줄이라는 사실이 가시권에 들어올 거라고 확신하는 근거다. 알고 보면 우리는 한 핏줄에서 나고서도 저마다 아옹다옹하며 애써 외면한 채 나 몰라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인간의 원조를 기록한 창세기의 말씀이 증명될 때가 머지않은 터다. 피부색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 굳이 생물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빌리지 않더라도 애최 단색이던 살갗이 생육하고 번성함에 따라 무려 270여 가지의 다양한 빛깔로 나눠지고 이처럼 이 땅에 충만한 참인 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죄다 인척관계다. 때문에 대놓고 으르렁댈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우면 가까워서 탈이 나고 멀면 멀다는 핑계로 배척하기 일쑤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변심을 내재하고 사는 인간이 대다수이기에 그렇다. 그것이 사람의 속성이고 그들이 지닌 한계라고 보면 된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다문화가족의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그래서다. 같은 한민족 간에도 온갖 문제점을 노출하고 사는 마당에 태생이 다른 사람끼리 감싸며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우랴. 어쨌거나 부부의 연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눈에 콩까지가 씐 채 첫눈에 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심층적인 대화 한 마디 없이 선을 보고 묻은 자리에서 결혼하는 일까지 눈앞에서 벌어지곤 하니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 격이랄까? 즉 생판 모르던 남녀의 피와 살을 섞은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란 끈으로 동여진 다음 서서히 사랑이 싹트는 양상이다. 

  물설고 말 설은 곳에서 생활문화의 양식마저 제각각이라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밖에 없다. 매사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일 외에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말이다. 한 남자, 한 여자를 보고 혈혈단신 이역만리까지 날아와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감행한 용기만으로도 그들을 우대할 조건은 충분하다. 시골에서 좀체 듣기 어려웠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것만으로도 진실로 감사할 제목이다. 경사의 원천은 태(胎)를 여시는 창조주의 섭리. 즉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야말로 모두가 마음을 모아 듬뿍 축하해야 마땅하다. 그에 힘입어 폐교 직전에 내몰렸던 초등학교 교정이 모처럼 활력을 되찾지 않았는가? 궁벽한 시골일수록 신입생의 절반을 차지한다니 함께 기뻐할 일이다. 잘들 대처하고 있다지만 담임교사를 중심으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학교장은 훈화를 통해 인성교육을 챙기는 한편 위정자들은 틈날 때마다 지구촌의 화합을 역설할 시점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딸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귀하지 않은가? 곱씹을수록 그들은 반가운 손님이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78호)에서는 <'러브인아시아'를 보며-하>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2176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러브 인 아시아’를 보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