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이세정(경기도청 언제나민원실장)

 기차는 장구한 세월동안 만남과 이별, 환희와 기쁨 등 사람들의 온갖 사연들을 생산해 왔다. 일제 강점기때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등지는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이별만 아니라 숱한 만남의 이야기도 품고 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머리를 깎고 입대하는 청년들,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다시 타고 싶은 귀향열차이기도 하다. 이번 설명절에도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편 임진각에 서있는 녹슨 철마는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열차는 행복을 가동하는 기관차이기도 하다. 우리 또래 사람들은 칠팔십년대 여름에 빽빽한 찜통 완행열차에서 삼삼오오 기타를 치면서 `조개껍질 묶어,` `행복의 나라` 등의 노래를 부르며 청춘과 우정을 불태웠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같이 흥겨워하곤 했다(당시 대중음악은 정치사회 부조리에 대한 울분을 삭일 수 있는 공통 수단이었다). 

지금은 이런 광경을 보기가 어렵지만 요즘에는 25세 이하의 7일간의 자유여행인 `내일로(railro)` 프로그램이 인기다. 입석티켓으로 바닥에 앉아야하는 힘든 여행이지만 마음껏 전국을 돌며 자유와 땀의 가치를 체험하고 낯선 친구들과 인연을 맺는 값진 기회를 만들어간다고 한다. 각종 테마열차는 일상의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가족이나 친구·연인들간의 정을 더 끈끈하게 결속시킨다. 아이들이나 어른 모두에게 사랑받는 `곰돌이 푸` 저자 밀른은 열차는 행복하기에 매우 이상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나도 열차를 타면 목표와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고 과거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정서적 격려와 힐링을 얻는다.

지난해말 서울역과 수원역 대합실에서 철도파업으로 상당수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많은 승객들이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국가에는 성장동력을, 서민들에게는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철도만은 파업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도가 지난 3년간 코레일과 협력하여 운행한 민원열차가 작년말 막을 내렸다. 대여섯 명의 공무원들이 직접 승무원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느라 쉬지 않고 열차와 함께 달렸는데, 총 주행거리가 무려 43만㎞, 지구를 11바퀴 정도 회전한 양이다. 몇 주 전 동료 직원들과 시흥 차량기지에서 마지막 민원열차의 간단한 퇴역식과 함께 작별의 키스를 하고 의왕 철도박물관을 들러 철도역사에 남겨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굿바이 민원열차!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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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열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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