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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 연화사, 안중출장소에 사랑의 쌀 기탁
    성혜스님 “취약계층 위한 나눔 봉사 이어가겠습니다” 평택시 포승읍에 소재한 연화사(주지 성혜)에서는 지난 24일 평택시청 안중출장소에 슈퍼오닝 쌀 200포(10㎏)를 기탁했다. 이날 연화사 성혜스님은 “동절기를 맞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등 취약계층에게 따뜻한 도움과 함께 살아가는 훈훈한 인정을 나누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취약계층을 위한 나눔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5월 3일 경로주간을 맞아 지역의 전체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동의 안중출장소장은 “사랑의 손길이 꼭 필요한 이웃들에게 고루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경기침체와 코로나19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을 위해 정성을 모아준 연화사 성혜스님 및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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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9
  • [세상사는 이야기]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소외된 지점을 엿보니’ (3회)
    ◇ 생각 모음 다섯: 오래전 ‘포스코 신문’에 실린 “이런 생각 저런 의견” 중 하나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지나치다. 이제는 확 달라져야 한다. 지난 호 ‘목요 데이트 칼럼’의 함인희 교수 글을 읽으면서 장애인 가족으로서 겪었던 필자의 아픈 경험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웠다. 교통사고율을 비롯한 여타 부분에서도 부끄러운 세계 상위권이 많지만 특히 장애인 복지 측면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 인식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심각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장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에 사는 현실에서 누구라도 그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실제로 선천적인 장애인보다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은 이들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대의 여건을 고려하되 단지 배려하는 차원에서 느긋이 기다려주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 장애인은 우리 비장애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불편한 장애를 지녔기에 사회로부터 더 많은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을 우선하여 배려해야 할 까닭은 자명하다. 비장애인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을 위주로 편리하게 이뤄진 각종 시설과 수많은 제도 속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함 교수의 글은 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의 현주소를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한 글이었다. 기실 필자 역시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사각지대에 대해 깨우친 바가 컸다. 더불어 “어느 비장애인의 멋쩍은 일고(一顧)”라는 중수필을 탈고한 일은 담장이 아닌 담벼락을 뛰어넘은 큰 결실이었다. 더욱 내용을 보완하고 정성껏 다듬어 지역신문에 기고함으로써 다들 생각할 계기를 마련했을뿐더러 출간한 책자의 한 단원으로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 쓸쓸한 빛이 감도는 천안 광덕산 ◇ 생각 모음 여섯: 위 얘기와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불황의 고리에 대한 의견이나 분석이 분분하다. 매년 즐거운 명절을 맞이하건만 저마다 못 살겠다고들 아우성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방의 한 재래시장에서는 평소보다 되레 손님이 줄어들었다고들 울상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온통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소리뿐이다. 일견 호들갑에 가까운 걸 감안하더라도 불황의 끝이 어디인지 도통 모를 만큼 혹독한 시련의 연속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실태를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문제의 핵심을 짚어낼 수밖에 없다. 먼저 오늘날은 세시풍속에 따른 명절이라고 해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거나 따로 의복을 마련할 까닭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실제 설빔이란 낱말을 들어본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호의호식은 화두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분수를 모르고 치장하는 데 눈살을 찌푸리고 너무들 먹어 탈이 나는 세상이다. 여기저기 앞다퉈 살 빼기에 안간힘을 쓰니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온 나라가 과소비에 몸살을 앓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각을 바꿔 우리 사회가 점차 근검절약하는 미풍양속으로 정착해 간다고 볼 수는 없을까? 아직 곳곳에 장날이 서기는 해도 상설시장이 대세인 데다 인터넷 구매가 생활화에 접어든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게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2018년 OECD에서 발표한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은 21%에 달한다. 이는 2004년 말 기준 33.6%보다는 2/3로 줄어들었지만 10% 내외인 선진국에 비하면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놀랍게도 세 끼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나라들을 빼놓고는 미국과 멕시코 다음으로 세 번째에 해당한다. 유럽의 소국인 룩셈부르크와 아이슬란드는 최하위권이다. 크고 작은 길가 어디를 걸어도 이처럼 동종업계의 점포들이 앞다퉈 경쟁하듯 들어서는 곳이 한국 말고 또 있을까? 참고로 1989년에는 무려 40.8%에 달했다가 2018년에는 25.1%까지 떨어져 OECD 7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매스컴의 시각에 일대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령 소외된 이웃 돌보기, 의례적이 아닌 진정한 효도의 길, 해마다 두 차례씩 빚어지는 교통체증의 비효율성, 매장문화로 인한 산지의 황폐화, 고학력 젊은이의 귀농 대책, 실직자의 재교육 및 지원방안, 지구촌의 바람직한 명절 문화 중 특정 종교의 관점을 벗어나 관혼상제 문화에 허례허식의 요소는 없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름지기 언론의 책무는 국민의 눈높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파헤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8호)에는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 축적한 사념의 조각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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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11-24
  • [세상사는 이야기]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도처에 불거진 문제점’ (2회)
    ◇ 생각 모음 셋: 요즘 부쩍 굴지의 신문에서는 내세운 제목처럼 ‘횡설수설’을 자초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性)이란 천부적인 것으로 절대 자력으로 바꾸거나 타의에 의해 바뀔 수 없다. 세간에 언뜻 여자처럼 생긴 한 남자를 두고 신기해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나 사람이면 누구나 여러 원형들 가운데 남성 속의 여성성(anima)과 여성 속의 남성성(animus)을 갖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쪽 요소가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런 성향을 보고 너도나도 성을 전환하겠다고 나선다면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힘들게 의사가 된 마당에 의술을 함부로 사용해 자궁도 없는 여성 모형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진짜 여자로 인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각종 성형수술을 통하거나 간헐적으로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유지되는 여성적인 현상을 도대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단언컨대 동성애는 음란한 성애(聖愛)의 배설에 불과하다. 앞장서서 찬성의 기치를 높이 쳐든 분들에게 캐묻노니 당신의 며느리가 남성이고, 당신의 사위가 여성이라고 해도 그 기막힌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응답하기 원하노라. 해괴한 위선자의 실상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참이다. 따라서 이런 성전환자들에게 일부 판사가 성을 바꿔주는 일은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성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주민등록번호만 보고 속아서 파혼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조차 위험에 빠뜨릴 개연성이 크다. 얼마 전 대한변협과 의사협회에서도 이에 대해 허용해서는 안 될 사안이라며 성명까지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타 성적 소수자를 인격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필자 역시 동의하지만, 세상에는 해서 될 일이 있고 시도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사람의 성을 인위적으로 전환하는 수술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가운데 으뜸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한동대와 한기총에서 발표한 동성애에 관한 성명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스스로 기독교의 범주에 들어있다고 주장하거나 착각하는 측의 의견에는 찬동할 수 없다. 참고로 필자는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책자나 자료가 태부족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논제로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비록 20년 전이어서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각주로 단 경우가 많았으나 당시 그 분야의 연구에 시동을 걸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 쓸쓸한 빛이 감도는 천안 광덕산 ◇ 생각 모음 넷: 2004.10월호 <인권>의 독자로서 투고한 내용이다. ‘국가보안법’이란 족쇄는 언제쯤 풀릴 수 있을까? 물론 북한의 ‘인민보안단속법’에 대응하는 조치와 병행해야 한다는 반론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50년이면 충분하다”라는 논리는 매우 타당하고 명쾌하다. 국가보안법의 역기능이야말로 반세기를 옥죈 쇠사슬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주 인사들을 탄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를 서슴지 않았는지 캐묻고 싶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더는 전쟁을 방불한 비상시기가 아니다. 남북이 대화로 매듭을 풀어 통일을 이루자는 마당에 서로를 적대시하는 처사는 옳지 않다. 남북 기본합의서를 기반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의 초석을 놓았기에 6·15 남북 공동선언과 10·4 남북 공동선언으로 이어졌으며, 불과 얼마 전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을 오가며 동족의 우의를 다지고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현재의 교착 상태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조만간 풀리리라고 기대한다. 국가를 지키는 가장 큰 힘은 자발적 애국심이다. 타율적으로 강요된 일사불란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우러난 협력과 민의가 나라를 사수하는 원동력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와 대법원에 이어 법무부까지 국보법 사수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니 실로 착잡하다. 우리 사회가 과거의 냉전체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어려워서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처럼 이제는 국보법을 박제로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할 때가 되었다. 만의 하나 안보 전선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형법’을 보완하면 될 일이다. 게다가 사안별 적용이 기능한 ‘사회안전법’까지 두고 있지 않은가? 후자로 통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뿌리 깊은 의식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구시대의 낡은 법복을 과감히 벗어버릴 때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7호)에는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 소외된 지점을 엿보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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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11-17
  • [세상사는 이야기]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교과서 너머를 살피니’ (1회)
    ◇ 생각 모음 하나: 평소 학교도서관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중앙 일간지에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학교의 얼굴이라는 도서관이 너무 낙후되어 하루 너덧 시간씩 수업하랴 틈틈이 잔무 처리하랴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던 때가 있었다. 기본적인 대출과 반납 시스템은 물론 불편한 동선으로 인한 민원이 한둘이 아니다. 시설 전반이 한마디로 열악하기 짝이 없어 지식의 보고(寶庫)를 관리하는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적잖았다. 요로(要路)를 통해 건의도 해봤으나 대개는 가볍게들 취급하는 바람에 도서관인으로서 아쉬움이 컸었다. 그러한 가운데 주말마다 부쳐오는 ‘책의 향기’라는 별지의 효용이 업무에 뜻하지 않게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으니 호소하는 심정으로 거드는 말을 써서 부친 적도 있다. ‘이 주일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저자는 말한다’에서도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이것저것 신간을 심층적으로 소개하는 기사들이 소장할 장서를 선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가지 ‘내가 요즘 읽는 책’에서는 서명 외에 좀 더 상세한 출판사항을 넣으면 호평을 받을 것이다. 쉽고도 재미있는 서평의 기능을 충실히 갖춰 달라는 요청이다. 사실 공교육을 살리는 지름길은 도서관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 학생들이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자투리 시간마다 모여드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도서관이 방과 후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장소로 기능할 때라야 학교는 학교답게 살아날 수 있다. 경향각지(京鄕各地) 각 신문이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차제에 <전국 학교도서관 순례> 난을 신설해 달라고 요구한다. 초중고로 나눠 매주 번갈아 가며 학교도서관의 현주소를 파악해 심각한 실태를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그걸 도서관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선진국에 비해 아직 뒤떨어져 있는 공공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 도서관의 면면이 곧 그 나라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꾸밈없는 얼굴이 아름다울 때 고개를 끄덕이는 법이다. 고을마다 동네마다 발걸음 닿는 곳이면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열악하기 그지없는 학교도서관 시설 개선을 위해 언론기관이 나서주면 국민교육의 현장도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 100대 명산 중 하나인 광덕산 입구 ◇ 생각 모음 둘: 지상(紙上)에 연일 점입가경의 민낯이 보여 항변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발표한 촌지 근절방안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테면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주고받을 때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에게도 불이익을 준다는 발상인데 전적으로 옳지 않다. 일면 형평성과 타당성이 있어 뵈지만 이는 매우 비교육적인 처사로 다음과 같은 오류를 야기할 확률이 높다. 우선 시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당사자가 받을 만할 때 주는 것인데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의 수상 자체가 원천봉쇄된다면 일종의 연좌제에 불과하다. 어느 학생이건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칭찬과 용기를 북돋우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교육 본연의 목적은 어찌할 셈인가? 또한 촌지를 받는 일부분의 교사를 언제까지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교사와 동일시할 참인가? 고작 10여만 원 정도의 푼돈에 양심을 파는 일탈은 적어도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거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실제 촌지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예조차 거의 없다. 이거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차제에 몇몇 공영방송의 보도 태도에도 고칠 부분이 있다. “학부모의 촌지를 주는 행위가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전달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이들은 죄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일 텐데, 자칫 대다수 교사들이 불의한 금품이나 바라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모든 교육과정은 교사의 교육적 권위를 당당히 세워줄 때 올바로 설 수 있다. 주어진 권한 행사에 잘못이 있다면 일벌백계의 처벌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흔쾌히 동의하지만, 극히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싸잡아 폄훼하는 행정편의주의적 조치는 제발 그만두기를 촉구한다. 교육일선에서 뼈가 굵은 교사로서 그간의 경험칙을 덧붙이자면 가정에서부터 근본이 비뚤어진 아이를 학교 현장의 교육적 수단으로 교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적어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맞아들어간다. 부디 부모, 교사, 당국이 힘을 모아 미래세대교육을 함께 이끌어 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6호)에는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 도처에 불거진 문제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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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0
  • [세상사는 이야기] 주왕산 바윗돌 ‘길 가다 만난 기암괴석’ (전)
    기다리던 시공을 찾아 가족여행을 하던 중 느닷없이 들른 곳이 있었다. 동쪽 바닷가 영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주왕산 국립공원’, 여기가 바로 그 주왕의 전설이 알알이 박혀있다는 거기로구나! 언뜻 듣기로도 선경에 비견할 만한 비경을 뽐낸다더니 먼발치에서 바라봐도 전혀 낭설은 아니었다.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예정에도 없이 그쪽 입구를 향해 냅다 차를 몰았다. 매표소에 도착해 사방을 휘 둘러보니 첫눈에 들어온 것은 뫼의 반 이상을 뒤덮고 있는 장엄한 바윗돌. 마치 정성껏 분재해놓은 듯 싱싱한 소나무들이 제각각 균형을 잡고 암석 틈바구니마다 알알이 박혀있었다. 이토록 장관이니 ‘석병산(石屛山)’으로 칭할 수밖에. 마치 바위로 병풍을 두른 거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는데 잠시 간판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보니 그 옛날 중국 은나라 마지막 왕의 사연이 골짜기에 굽이굽이 서려 있다는 설명이었다. 주왕산은 그 이름의 유래부터 전설에 기인했다. 주왕의 본명은 원래 ‘주도’였단다.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뿐더러 5세 때 글을 깨쳐 11세에 이미 병법서인 육도삼략(六韜三略)과 천문지리에 능통했으며, 그때부터 “황하의 물을 들이키고 태산을 갈아 없애버리겠다”라고 호언장담하며 군사를 끌어모아 후일을 도모하지만, 그가 꿈꾼 새로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중과부적을 느낀 나머지 신라까지 쫓겨가 몸을 피한 곳이 바로 여기였고, 온갖 위장술을 동원하여 끈질기게 버티다가 그만 한중 양국의 양동작전에 걸려들어 끝내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패각하던 중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낭떠러지 중간에 요새처럼 뚫린 굴속으로 숨어들었단다. 하지만 도피의 세월도 잠깐, 마침내 주왕은 천명을 다한 듯 귀신도 모를 것 같던 천혜의 은신처에서 뒤쫓던 마장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으며 한 많은 생을 마쳐야 했다. 바로 그 주왕을 본떠 붙여진 이름이 주왕산이고 주왕굴이란다.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줄곧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었다는데 대전사(大典寺)와 백련사(百蓮寺) 또한 그가 남긴 남매의 이름을 딴 절이라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경상북도 청송군에 소재한 주왕산 <제공 = 주왕산 국립공원> 경상북도 청송과 영덕 일대를 두르고 자리한 주왕산. 보자마자 한눈에 빨려 들어온 산자락이요, 그 생김새 또한 수려하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해발 722m 높이의 뫼를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오르기로 했다. 온갖 기암괴석들이 울창한 수풀과 어우러져 신묘막측한 풍광을 연출하는 산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보리라 당차게 마음먹은 터. 행장을 보니 산행을 하기에는 적잖이 어설프다. 등산화는커녕 간편한 바지마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였다. 게다가 해가 이미 중천에 떴으니 잰걸음이어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네 산행 의지를 꺾기에는 역부족. 해낼 수 있다는 격려를 아이들에게 곁들이며 바위가 돌계단을 이루고 있는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짜기가 깊어 발길 닿는 데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걸음을 서두른 탓인지 우리는 금세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 더욱 밋밋하게 오르다 말 수는 없는 노릇. 큰 뫼를 딛고 눈을 들어 위를 바라다보니 푸르른 수림이 잔뜩 우거진 틈새로 높푸른 하늘이 활짝 웃으며 화답한 데 이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새털구름이 화들짝 놀란 듯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를 주의하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읽었던 글줄이 떠올랐다. 명품을 그린 병풍이로되 잔솔가지가 너무 늘어져 한쪽으로 치우친 품이 흠이라는 촌평. 그걸 좀 빌리면, 하늘로 솟아난 듯한 정자에 날아오르는 백학 한 쌍이 빠져버려 가벼워진 기품이 자못 아쉽다는 푸념에 묵직한 동양화의 진경산수화 한 폭이라기에는 적이 모자라서 못내 애를 태우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른 곳이 여기였다는 구절이었다. 막상 그곳에 깊숙이 들어오니 연달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한반도의 등뼈로 구실을 하는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스리슬쩍 우뚝 솟은 명산으로써 웅대한 바위산의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절경이라 하여 하등 나무랄 데가 없으렷다. 이제부터는 바위벽과 암벽 사이를 타고 올라야 한다. 난감한 건 밑바닥에 때 이른 낙엽과 푸석푸석한 돌가루가 수북이 쌓였다는 점. 위쪽으로 발길을 내딛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신발이 불편하여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자꾸만 미끄러지기 일쑤. 고맙게도 아이들이 오히려 성큼성큼 순발력 있게 잘 따라붙어 주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4호)에는 ‘주왕산 바윗돌 - 고초를 겪고 오른 지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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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4
  • [세상사는 이야기] 주왕산 바윗돌 ‘고초를 겪고 오른 지점’ (후)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모자 아래 두른 손수건이 금세 짠물로 흥건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랜 가뭄으로 인해 흙먼지마저 풀풀 날린다. 가쁜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몇 마디 건네는 입말조차 애를 먹을 정도. 솔직히 이쯤 해서 그만 내려가 버릴까 망설여도 보았다. 그러나 이 난국을 참고 묵묵히 오르는 두 아이를 보는 순간 게으른 잡념이 이내 사라졌다. 위를 쳐다보니 반갑게도 중턱이로되 산꼭대기가 코앞이었다. 비록 정상은 아닐지언정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라도 정복하려던 참이었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딸아이를 데리고 뒤따라오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빨리 비켜, 은빛 빨리!” 바위벽 사이에서 제법 큰 암석 덩어리 한 개가 뚝 떨어져 아이 쪽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이 벌어진 일은 일순간. 눈앞이 아득하고 정신은 아찔했다. 주위에 온통 암흑이 좍 깔린 것 같았다. 다행히도 아이는 굴러오는 돌을 침착하게 피했고 별반 놀란 눈치도 아니었다. 실로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큰일을 당할 뻔한 위기였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일이 있고 난 직후 겨우 한숨 돌리나 싶을 적에 이번엔 아들녀석이 높다란 바위벽을 붙잡고 자신만만하게 기어오르다가 반길 밑으로 맥없이 떨어져 버렸다. 평소에 유독 산을 곧잘 타서 그때마다 칭찬을 푸지게 들은 아이였기에 더 놀랄 수밖에. 빼빼 마른 체구에 가벼운 몸놀림으로 딴은 제 진가를 나타내려는 소영웅심이 발동한 참에 무리하게 올라붙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버린 터였다. 다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건 당연지사. 나는 얼떨결에 일어난 아이를 엉겁결에 끌어안았다. “아빠, 저 안 아파요!” 아이가 황급히 내뱉는 첫마디였다. “정말이야? 정말 괜찮은 거야?” “네, 그렇다니까요?” 하지만 난생처음 당하는 사고에 놀란 기색이 뚜렷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엄마가 본능적으로 품에 아이를 끌어안고 다독거리며 진정시켰다. 정신을 가다듬고 온몸을 훑어보니 신기하게도 긁힌 자국 한 군데 없었다. 나는 등판이며 팔다리를 번갈아 주무르며 일어났다 앉아보라고 두어 차례 주문하면서 목을 만져보고 좌우로 움직여보라는 말에도 아이는 충실히 움직였다. 일단 별 이상은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점이 도리어 불안한 지점. 혹여라도 속에서 골병이 든 건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 주왕산의 가을 <제공 = 주왕산 국립공원> 그렇다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산정까지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부간에 얼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진퇴유곡에 아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의외라 싶게 이왕지사 끝까지 올라가자는 제안이었다. 예상치 못한 진행에 아이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 나는 대뜸 대대적인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선언이라고! 물론 나의 고마운 속내였을 뿐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심리상태.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기어코 산꼭대기에 세워야 한다는 판단은 어쩌면 어른의 옹고집일 수 있고 섣부른 독단이 될지도 모르겠기에 잠시 망설여야 했다.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으니 흔쾌히 동의에 제청. 그렇게 우리 넷은 어렵사리 목표한 정상을 밟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천하를 몽땅 껴안은 기분. 저 아래 뵈는 주왕산의 바윗돌이 방금 전 그 모습 같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맘껏 칭찬해주며 “드디어 해냈다”라고 미소짓는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도 그 대견한 장면의 사진을 꺼내 보노라면 흐뭇한 웃음과 함께 그 시공에 감돌던 비장한 기운을 새삼 소환하곤 한다. 이제 흔쾌히 내려가야 할 시점. 역시나 하산길의 복병 또한 언제 떨어져 구를지 모를 돌들이었다. 입에서는 연신 조심 또 조심을 부르댔다. 나는 극도로 긴장한 데다 산에서 나는 세미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을 죽였다. 모두 잘 따라준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산밑에 닿을 수 있었다. 아이 둘이서 거의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내려온 성취감이 우리 식구를 한껏 고무시킨 현장. 선명한 주왕굴 표지가 눈에 띈 것은 그 뒤였다. 하지만 이미 여름 해가 서산에 걸렸을뿐더러 이만큼으로도 족하고 남을 하루가 아닌가. 역경을 딛고 올라선 아이들의 기개가 자못 자랑스러웠다. 그래 오늘 체험을 인생의 소중한 계기로 삼아 앞으로 닥쳐올 온갖 시련을 당차게 헤쳐나가렴. 끝으로 남은 행사는 시냇물에 발 씻기. 매끈한 바윗돌을 깔고 앉아 맑은 물을 한 움큼 꼭 쥐어 메마른 목청을 축였다. 아, 이 달콤한 맛이야말로 여행 중 산행의 산뜻한 뒤끝이 아니런가!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5호)에는 ‘가볍지 않은 생각 모음 - 교과서 너머를 살피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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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11-03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미래를 대비하는 교회상’ (6회)
    결국은 서로의 생각, 주장, 선호는 다르지만 훌륭한 예술품이 되는 모자이크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유기적으로 드리는 예배, 자유롭게 드리는 예배, 자연스러운 기도, 감각적 체험을 중시하는 예배(EPIC: 체험, 참여, 이미지, 연결)를 지향하는 일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스타벅스 스타일의 예배나 효율성, 측정/예측 가능성, 통제성을 강조하는 맥도날드에서 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자의 주장을 보면 교회는 스타벅스에서 교회의 비전(기원하고 싶은 목표)과 사명(존재하는 이유)보다 매주 일요일에 하는 일이 더 큰가를 비롯하여 성도 개개인을 향한 선택과 집중, 까다로운 성도들의 욕구를 조사해 반영해야 하고, 하나님과 깊은 연대감을 주는 위대한 공동체, 교회 방문자에게 의도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세 번째 공간”으로 봉사하는 등 늘 환영받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한편, 친숙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의식과 의례를 통해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교회는 목적을 달성하는 장소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교회보다 스타벅스를 더 좋아하는가를 들여다보니 복음이 선포됨으로 말씀에 대한 감동이 있는 예배, 문화 마케팅, 건강한 교제의 장, 환경 관리, 환대하는 공동체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놀랍게도 인공지능(AI)이 설교하는 예배가 가까워졌다는 경종이었습니다. 20세기 테크놀로지는 NBC(핵, 생물, 화학) & 21세기 GNR(유전, 나노기술, 로봇공학)에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즉 사물지능시대에 기업용 솔루션-의료-농업 등에 AI가 들어와 스트리밍 전쟁이 시작을 알렸고, 향후 10년은 전기차 시대, 디지털 헬스케어가 라이프스타일이 되어 로봇과 교감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일본의 로봇 페퍼에서 보듯이 이미 AI와 기독교는 컴퓨터에 인간의 기능을 결합한 대체재를 고안해냈습니다. AI 설교자의 출현 가능성으로 사회적인 영향력, 트랜스휴머니즘과 같은 새로운 종교,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전자인격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한 참입니다. 그렇다면 설교에 AI 사용하기를 고민할 시점입니다. 단 영성적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전달자로서의 인격적 교제를 감안하여 언어적 물리성을 초월한 영적 교류의 보조적 수단이어야 합니다. 이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예배에 매스미디어의 접근성, 유용성, 최신성, 영속성이라는 가치를 플랫폼 자체의 개방성, 즉시성, 유통성, 보완성, 기능성, 다양성 등을 접목하면 예배 홍보, 실황 중계, 피드백 실시간 반영, 정보 공유화, 교육과 교제, 공동체의 건강한 소그룹 형성 등 쌍방향 상호작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평일에도 예배할 수 있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뒤따라야 합니다. 청중을 깨우기 위해서는 설교에 변화가 있어야 하고, 영적 충전을 위한 예배가 다양화, 특화되어야 하며, 목회자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역설입니다. 다만 예배의 대상은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우리 예배의 근거가 되어야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계시한 말씀으로써 예배의 온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즉 주일예배는 설교 중심의 전통을 탈피하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통로이기에 은혜의 수단이 되어야 하며, 예배의 거룩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형식과 순서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관건은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예배입니다. 일찍이 종교개혁의 주요과제는 예배개혁을 통한 신앙개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예배가 생명력을 잃은 요인으로 인본주의의 영향, 곧 인간 중심의 예배로 세속적 감동과 눈길을 끌려는 동기, 갖가지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대신하려는 시도, 교역자들이 예배를 잘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빚어진 결과임을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예배개혁론자들의 주장대로 말씀의 회복, 예배 중심에 회중을 앉히는 문제, 제사상이던 성찬을 하나님 백성의 잔칫상으로 회복하는 노력, 사제들의 전유물이던 예배 프로그램을 회중을 위한 내용으로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과 세상을 잇기 위한 징검다리였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계시와 응답의 현장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의 교제, 세상을 향한 사랑의 교제, 세상 속에서의 예배행위이므로 하나님, 백성, 세상이 연결되는 지점이니 말입니다. 교회 안에 갇힌 교회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3호)에는 ‘주왕산 바윗돌 - 길 가다 만난 기암괴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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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10-27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코로나 이후의 예배형식’ (5회)
    금세기 느닷없이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를 뼈아프게 겪어내는 인류는 웹 사이트에서 진행되는 세미나(Webinar)에 점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예수님 시대로 돌리면 당시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었던 각 방면의 비중, 곧 정치·경제·권력의 중심지, 유대적 제의의 고향,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영광의 장소는 성전과 성전에서의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예속과 자유라는 면에서 이중적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누가복음 6:4)이요, 내 아버지의 집(요한복음 2:16), 만민이 기도하는 집(마태복음 21:13)이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그 기능을 긍정적으로 보았거니와, 성전보다 더 크신 이가 예수님(마태복음 12:6)이시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목적은 천국복음의 전파였으며, 정결예식이나 성전예배 참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관례대로 회당 예배에 참석하셨지만 메시지 선포, 자신의 가르침, 공적 사역을 위한 행위에 초점을 맞췄으며, 예배드리는 장소를 제한하거나 국한하지 않고 죄인들과의 교제에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이 지향하신 성전 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성찬과 애찬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교회, 극성 바이러스에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의 재건임을 분명히 하신 바입니다. 구제·기도·금식은 유대교의 3대 실천덕목이로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처럼 기독교 본래의 예배 정신, 즉 마음의 중심을 율법과 전례가 아닌 사랑의 공동체에 두었습니다. 바로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가 코로나 시대에 주목을 받는 이유입니다.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의 청취로는 교회의 코이노니아(친교나 모임의 이상적인 상태)를 대신할 수 없기에 결국 회중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원리입니다. 영상예배의 영향력을 통해 메시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당을 건축해야 하며, 영상예배의 효과를 위해 방송의 서론에 이목을 끌도록 내부를 장식하고, 대체미학을 고려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성경 묵상과 끝부분에 공익적 소통을 통한 교회의 역할을 짧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부연하면 사이버 시대에는 삶과의 관련성을 높이고 상호성을 확대하며 회중의 참여도를 높이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허용하여 진정한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미래세대에는 증강현실을 통해 예배의 레퍼토리가 방대해짐으로써 디지털미디어의 특성인 비선형, 다매체성, 단어와 이미지의 병존, 쌍방향성, 텍스트 전달이라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함께 작업하는 콜라보(collaboration)를 중시한 연속성과 혁신을 기반으로 공간보다 시간 중심의 열린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과 적극적 정보와 탐색을 통한 소비, 혼자이기를 원하면서도 소통을 원할뿐더러 개성을 중시하고 모험 소비를 추구하면서 YOLO: You Only Live Once): 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즐기자)를 실천하며 가성비를 따지는 등 소유보다는 경험과 공유를 중시한 채 살아가니까요. 밀레니얼 세대가 종교처럼 따르는 브랜드를 감안하면 성경적, 신학적 진리를 반영하는 풍부한 음악, 예배의 진정성, 인도자의 영성과 충분한 준비가 없이는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응당 그에 따른 밀레니얼 예배를 위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에 대한 인식, 상응하는 기독교 전통, 디지털 문화의 신학적 해석을 통한 예배로의 접목, 추상적 교리보다 실천적 삶 등이 그것입니다. 그중에 이머징(Emerging, 나타나다, 새롭게 출현하다) 교회운동(ECM)은 프로스트가 말한 복음과 상황과의 불가분성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문화 너머에 계시지만 목적을 위해 문화 속에서 일하신다고 보는 단체입니다. 에비 깁스은 이머징 교회를 가리켜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 예수의 방식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정의하며, 실천항목으로 예수님의 삶 따라하기, 세속의 영역 변화시키기, 고도의 공동체적 삶을 살기(핵심), 낯선 이들 영접하기, 아낌없이 봉사하기, 생산자로 참여하기, 창조된 존재로서 창조해 나가기, 하나의 몸으로 인도하기, 영성활동에 참여하기를 실천함으로써, 복음주의, 선교적 교회론, 고전적 영성의 회복에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2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미래를 대비하는 교회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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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10-14
  • 평택팽성노인복지관, 어르신 위한 ‘짜장면 나눔’
    원평포교당·용봉월드재단, 노인의날 맞아 짜장면·상비약 후원 평택팽성노인복지관(관장 이원형)은 지난 4일(화) 평택원평포교당에서 주최하고 용봉월드재단(이사장 원명스님)에서 후원하는 노인의날 기념 ‘짜장면 자비 나눔’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용봉월드재단의 후원으로 무료급식 대상자를 포함한 경로식당 이용 어르신 250명에게 짜장면을 무료로 대접하면서 상비약 250세트를 전달했다. 용봉월드재단 원명스님은 “노인의날을 기념하여 평택원평포교당과 용봉월드재단이 함께 어르신들에게 의미 있는 나눔을 가졌다”며 “이번 나눔으로 조금이나마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용봉월드재단과 조계종원평포교당은 중국, 베트남 등에 자전거 보내기 등 국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근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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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22-10-10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피어선의 목회를 상기함’ (4회)
    우리 고장의 평택대학교를 태동시킨 피어선 선교사의 목회현장을 평가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실현 가능한 적용점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지상에서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미전도지역사회로 들어가 원주민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섬김으로써 크리스천으로서의 일상적 삶을 살아내도록 돕는 일입니다. 송영섭 교수는 역사적, 신학적, 문화적 관점에서 자아성찰을 통한 교회는 단순히 ‘보내는 자(the sender)’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the one sent)’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교회들이 직면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주의적 상황입니다. 합리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적 흐름을 주시하며 대처해야 합니다. 심대한 문제의식 없이 유의미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 없이 적확한 대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선수범을 통한 모본은 방점을 찍는 일입니다.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복음 중심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교를 교회 성장의 도구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선교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세우기 운동으로써 하나의 성장 프로그램과 다르며 특수한 사역의 모델도 아닙니다. 김도일 교수에 따르면 선교적 교회론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고, 실천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령님은 성부, 성자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론과 실천을 조화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피어선 목사의 선교현장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거저 받은 구원의 은총을 남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은혜와 사랑의 문화, 섬김과 봉사의 문화, 교회와 사회를 향한 변혁적 문화관을 주창했습니다. 그가 삶의 현장에서 변화와 개혁을 위한 문화 사역의 일환으로 당대 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자 애쓴 흔적이었습니다. 반성경적인 지정좌석제를 폐지하고, 설교를 특별한 행사나 순서가 아닌 예배의식으로 단순화한 조치가 그 사례입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하지만 의식주에 허덕이다 구원 신앙과 멀어지는 도시 빈민의 문제는 늘 그의 목회 사역에서 풀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는 영적 위기를 느낄 때마다 부패한 미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았습니다. 치열한 자기반성으로 인해 참여한 케직사경회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성경적 성결의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기독교인의 모임이 창조 신앙을 통한 개개인의 성결을 강조함으로써 개혁주의적 전통을 확립하려 했다는 점에서 피어선이 추구한 선교는 복음주의 역사상 영혼 구원의 시급성을 알리는 일이 주요사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더 피어선 목사의 선교목회를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선교현장에 맞닥뜨리는 문제의 대부분은 기아를 해결하는 데 달려있다고 파악한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먹이고 난 뒤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맨 먼저 피어선이 앞장선 교회 내의 권위주의 타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당대 평등사회를 위해 노예제 폐지, 노동자의 권익 보호,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보장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인 것처럼 평신도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교의 문호를 과감히 개방함으로써 준비된 영적 인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한 한국교회의 시도는 사회 복음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뿐더러 선구자적 자세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피어선은 선교의 영역을 교회의 한 기능적 사역으로 취급하지 않고 교회 자체의 존재 목적으로 보는 교회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곧 공적 영역이 미처 채워줄 수 없는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선교적 제자도를 실천한 지점에 주목하라는 제안입니다. 그는 기존 신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교회를 현상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생계가 절실한 계층을 위한 도시 빈민선교를 선제적으로 실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습니다. 끝으로 피어선은 개교회나 개교단 중심의 목회가 아니라 교파와 선교단체를 아우르는 초교파 연합선교를 지향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된 해외선교에 눈을 돌렸습니다. 혼탁한 국내외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회활동이 균형 잡힌 복음을 추구하는 총체적 신학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1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코로나 이후의 예배형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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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6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중국선교를 위한 대안책’ (3회)
    중국사회의 기독교 정책 상황 진단과 더불어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교회의 다문화 선교사역의 한 부분으로서의 중국선교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의 목회 상황에 중국 정치 상황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 명시한 신앙의 자유는 단지 명목상의 규정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교육제도를 방해할 소지를 없애고 외세에 의한 종교단체의 사무 일체를 국가종교사무국에서 관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선교적으로 중요한 나라입니다. 한족 외 55개 소수민족 중에 교회나 전도자가 필요한 곳이 17개, 미전도종족은 천여 개에 달해 교회가 농촌 중심 가정교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도시교회로 전환되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문화 선교사역의 측면에서 중국선교에 대한 실현 가능한 목회적 대안은 무엇일까요? 이제 중국은 G2의 위상을 가진 만큼 원조대상의 피선교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접근과 이해를 요구합니다. 중국교회의 자립을 전제한 세계 교회 안에서 중국교회의 역할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자존심 강한 중국인의 저변에 깔려있는 전통적 의식 가운데 주위 민족을 야만시하는 중화사상과 유물론에 근거한 사회주의 계급혁명에 대한 평가는 필수적입니다. 소위 황하문명의 발상지였으므로 오래된 역사문화뿐만 아니라 한 차례도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된 적이 없고, 침입자들을 동화시킨 자긍심이 남다른 이유입니다. 반면에 19세기 서구열강들에 의한 침탈과 20세기에 당한 청일전쟁의 패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중국인의 전통적인 가치 상실에 대한 이해가 중국선교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위장술이 그것입니다. 서방문화와 기독교를 받아들이되 결국 그 기능을 통해서 중국의 가치를 구현해 내는 위장술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중화민족이 꿈꾸는 사회주의의 부흥에 저해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합니다. 중국에서 교회의 머리는 공산당과 정부이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조심스럽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 중에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중국의 정치 경제력을 세계의 중심으로 다시금 세우겠다는 당국의 정책을 활용해야 합니다. 시진핑이 강조한 경제건설은 당의 중심 업무이고 의식형태공작(意識形態工作)은 당의 극단적 중요업무이므로 중국 종교정책의 방향을 ‘기독교의 중국화’로 못 박은 조치에 추호라도 의심을 사면 안 됩니다. 종교업무 유관기관은 자율 및 독립적 영역이 아닌 통일전선부의 방침에 종속된 업무라는 내부적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는 범위에서 가능한 일이 선교입니다. 그러나 중국인들과의 관계가 아무리 돈독하더라도 종교를 사회주의에 적응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기독교’에 대한 ‘비기독교화’ 정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신자 수가 1억 명 이상이라는 기독교 세력의 확장은 2016년 기준 8천만 명의 중국공산당원이라는 엘리트 단일 권력체제에는 분명히 위협적 요소일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교회가 체제에 적대적이 아니라는 시그널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이처럼 서방 색채를 제거하고 중화사상으로 기독교를 중국에 토착화하고자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곳이 삼자교회입니다. 다만 제재가 많아 공산당과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가정집이나 비공개장소에서 모이는 가정교회가 출현했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신앙생활의 경험과 삶에 도움을 주어 단체 조직을 이끄는 데는 활력소가 되지만, 성경 말씀을 그들의 상황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함으로 인해 해석학적 오류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창의적 접근지역의 선교전략으로써 보안성, 단순성, 유연성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특징을 보완할 만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제3의 길이 도시교회입니다. 현재 중국교회 부흥의 사명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중간지점에 있는 도시교회의 실험에 달려있습니다. 청년지식인들이 복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접촉점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훈련된 청년자원들을 복음화를 위한 자원으로 파송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높은 교육 수준과 풍부한 재정 능력으로 자양, 자전, 자치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50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피어선의 목회를 상기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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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소수인격을 보호하는 길’ (2회)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상황에 대한 진단과 아울러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교회의 다문화 선교사역의 한 부분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실현 가능한 목회 패러다임 전환에 대하여 생각해보렵니다. 한국은 최근 들어 동성애에 대한 수용 여론이 급격히 우호적으로 바뀌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기독교계의 위기의식은 물론 군대 내 동성간 성행위 허용에 대한 우려까지 자아내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들이 급격한 사회변화를 주도해 나가려는 움직임에 대응하여 정교한 선교적 전략을 짜야 합니다. 이 현안은 동성애 반대를 성소수자 인권침해로 간주하는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맞물려 오늘날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해당 법조문에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차별’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함께 개인별 자유의 ‘역차별 금지 조항’을 반드시 명문화해야 합니다. 사안의 본질은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원칙에 있습니다. 즉 자신의 자유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될뿐더러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국민은 헌법에 명시한 대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호받되 법질서와 사회 시스템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동시에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행태를 통해 보듯이 무질서를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부추길 뿐입니다. 그에 따른 실현 가능한 목회 패러다임으로는 우리 사회에 소외되어 있는 성소수자들을 교회공동체에서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단, 그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결국은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로마서 1:26-27)라는 복음을 깨닫는 순간 회개로 이어져 영육 간의 방황을 멈추게 된다는 진단입니다. 궤도를 벗어난 사람을 구하는 일만큼 소수인격을 보호하는 장치는 없다고 봅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짚어볼 대목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동성간의 성관계로 노출하는 각종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축적된 통계에 의하면 게이들의 평균수명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짧고, AIDS 감염률은 면역력 약화로 100배 이상, 청소년 자살률은 4배 이상, 암 발병률은 2배에 달함에도 항문(배변 기능을 상실하는 변실금 유발)이나 혓바닥(세균 감염으로 치주염에 시달림)을 성행위에 사용하는 일은 의학적 무지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이고 진정성 있는 정체성 및 성교육과 함께 동성애 법제화의 현실을 각자의 가정사에 대입하면 대답은 훨씬 자명해집니다. 집안 며느리로 남자가 들어오고, 누이의 배필(매형이나 매부)이 막상 여자라면 누군들 찬성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여성 속의 남성성(anima)과 남성 속의 여성성(animus)은 상존하는 법이므로 인체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근원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동성애 대책 중 시급한 것은 교회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일입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청회도 필요할 것입니다. 판넨베르크(Pannenberg)의 말처럼 교회공동체 내에서 동성애를 승인하고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동성애자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므로 그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듬고 치유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는 혐오할 상대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인 것입니다. 엄연히 다른 뜻의 차별(discrimination)과 차이(difference)를 구분하여 선교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동성애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issue)를 넘어서 바로 코앞에 닥친 일상사의 국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파고를 성경에 입각해 지혜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지점입니다. 동성애는 적당히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49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중국선교를 위한 대안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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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평택시 행정동우회, 배다리생태공원 정화작업 실시
    윤승만 회장 “푸르고 맑은 공원 환경 조성 위해 노력하겠다” 평택시 행정동우회(회장 윤승만)는 9월 21일 푸른숲 가꾸기 일환으로 평택 배다리생태공원에서 행우봉사단(단장 김학규) 회원 30여 명과 함께 정화작업을 실시했다. 앞서 행정동우회는 지난 3월 아름다운 배다리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동우회 회원 50여 명이 참여해 식목 행사를 가진 바 있다. 도심 속에 위치한 27만7천㎡(8만4천평) 규모의 호수 공원인 배다리생태공원은 자연학습, 관찰, 생태연구, 여가 등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연일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윤승만 회장은 “봉사단 회원들과 함께 지난 3월 평택 배다리생태공원에 식재한 반송(소나무의 한 품종) 주변의 제초작업과 정화작업을 실시했다”면서 “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는 푸르고 맑은 공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회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함께 참여해주신 시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평택시 행정동우회는 지난 2001년 3월 16일 창립하여 현재 평택시청 퇴직자 3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 중이며, 지난해 4월 결성한 행우봉사단은 행정동우회 회원 중 30여 명이 참여하여 평택시에 자원봉사단체로 등록한 후 지역사회 복지증진과 평택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이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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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세상사는 이야기]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급변하는 다문화 상황론’ (1회)
    눈앞에 펼쳐진 다문화 상황에 대한 확실한 진단과 더불어 사랑받는 교회론의 관점에서 실현 가능한 목회 패러다임 전환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가 맞닥뜨린 대내외적 다문화 상황은 지구촌에 도래한 기후변화만큼이나 급진적입니다. 온난화의 속도를 생태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밀려드는 다양한 인종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양상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효과적인 전도 전략을 짜야 할까요? 이는 세계 각국에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문제와 맞물려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고 이어령 박사가 조합한 이른바 글로컬리즘(glocalism)은 보편성(globalism)과 특수성(localism)을 합성하고 있다는 면에서 ‘선교적 교회론’을 재정립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현수 교수의 말처럼 “선교적 교회란 단순히 ‘지역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고 있다’거나 혹은 ‘선교사역의 비중이 작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인 구조가 ‘선교지향적’ 혹은 ‘선교중심적’으로서의 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지역화의 과제가 무겁다는 반증입니다. 그에 따라 실현 가능한 목회 패러다임으로는 먼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른바 ‘뷔페 이론’(salad bowl model)에 의해 여러 민족이 형성하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문화다원주의는 종교다원주의와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동일선상에서 그 창조적 가치와 의미를 존중해야 합니다. 마땅히 천부적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 충북 진천과 맞닿아 있는 안성 배티성지 노영상 교수는 ‘문화상호교류주의 이론’(inter-culturalism model)을 내세워 다양성 속의 일치를 견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2006년 5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표한 ‘문화 민주적 통합으로 한국을 문화용해의 장’(cultural melting pot)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다문화가정 교육지원 대책은 자칫 ‘한국 기독교인 만들기’ 또는 ‘한국 기독교 선교사 만들기’의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필자 역시 당국의 근시안적인 정책에는 오히려 다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고 진단합니다. 다만 다문화주의의 공존을 가장한 기독교 선교의 전방위적 방해 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 구원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종교나 교리는 사탄의 교묘한 문화적 침투전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늘 표피적으로 제기되는 종교 편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목회현장에서 부딪히는 다문화가족들을 위한 개교회의 구체적인 목회사역 매뉴얼(지침)의 개발이 시급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선도적 교회들이 나서서 후발 주자를 이끄는 리더십이 절실한 부분입니다. 헌신을 전제한 본보기가 관건입니다. 사안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복음과 문화 네트워크”에서 이해하는 선교적 교회는, 첫째 교차문화 상황에 존재하며, 둘째 그것의 상황과 함께 대화 속으로 들어가서, 셋째 그 구성원들에게 성경적 관점으로부터 문화를 생각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넷째 그 자체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고 변화를 추구하면서, 다섯째 그 자신이 발견한 주변부로의 위치를 받아들인 뒤, 여섯째 그 자신이 속한 상황과 문화 안에서 증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의 본질적 성격상 접근이 쉽지는 않습니다. 구더(Darrell L. Guder)가 정리한 ‘선교적 교회론’은 적잖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성경적으로는 교회에 관한 것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야 하고, 역사적으로는 우리의 교회론이 다른 교회론들의 역사적 발전을 고려해야 하며, 상황적으로는 복음은 항상 한 문화 안에서 번역되고 영적으로 위임된 것에 대한 문화의 반응에 의해 형성되어 나감으로써, 종말론적으로 교회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만물의 완성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음을 믿기에, 실행적 측면에서의 그것은 실천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48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소수인격을 보호하는 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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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5
  •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 소외계층 위한 마스크 2만장 전달
    신희철 회장 “지역사회 위한 봉사 및 사랑 나눔 이어가겠다”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회장 신희철)는 지난달 30일 평택행복나눔본부에 KF94 마스크 20,000장을 전달했다.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는 주민자치 활성화 및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함은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한 방역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사회 감염병 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번 마스크 기부는 소사벌레포츠공원에서 진행된 해피마스크릴레이 나눔 봉사에서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전달된 마스크로, 주식회사 더조은에서 후원하고 한국자유총연맹 평택시지회에서 주관, 평택시자원봉사센터에서 주최했다. 신희철 회장은 “경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어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감과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전달하게 됐다”며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는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봉사 및 사랑 나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평택행복나눔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전달해주신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지역사회 이웃을 향한 소중한 마음이 잘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평택행복나눔본부는 전달받은 마스크 2만장을 관내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에 투명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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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2
  • [세상사는 이야기] 청령포의 오래전 풍경화 ‘처연한 단종의 인물화’ (후)
    거기서 왼쪽으로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라 서면 ‘노산대’에 이른다. 1457년 6월, 겨우 열두 살 소년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여 만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채 날마다 해질 무렵이면 힘겹게 기어올라 하염없이 한양을 바라봤다는 지점. 그가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하며 돌을 하나씩 둘씩 주워 모아 쌓았다는 망향탑을 대하노라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슬프게도 청령포로 유배된 지 고작 4개월 만인 1457년 10월 24일, 단종은 무자비한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고 관풍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억울함은 그로부터 무려 200여 년이 지난 1681년(숙종 7년)에야 풀어져 대군에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에 가서야 다시금 임금으로 복위되어 그 묘호(廟號)를 단종이라 부르게 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척살을 당한 원혼들을 달래줄 방도가 마땅히 없다는 푸념에는 응답할 얘깃거리조차 없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청령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굽이치는 강물이 휘감아 도는 정경을 지척에 두고서 감상할 수 있다는 연유로 인해 이처럼 명승지로 변모한 걸 보면 무심한 세월에 격세지감마저 든다. 무엇보다 길손이 지닌 처연한 감성을 자극하는 곳은 그의 무덤이었다.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장릉(莊陵)'이 그곳. 하기야 오랜 세월 구슬픈 사연을 애써 감내하는 데가 어찌 이뿐이랴마는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쫓겨나 짧은 일생을 지레 마감할 줄을 어찌 알았으랴. 당시 의금부 도사였던 왕방연은 비운의 왕을 이곳에 가두고 떠나기 하루 전 이렇게나마 가엾은 고혼(孤魂)을 달래주었다. 직책상 부득불 조정에서 명령한 업무를 수행하던 한 관리의 비통한 심정이 ‘단장가’라는 한 편의 시조로 남겨져 나루터에 떠돌고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하지만 불의를 보고서 항거를 마다치 않은 절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장렬히 죽음을 맞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을 묶어 우리 후손은 '사육신(死六臣)'이라 칭송하고, 비록 죽음을 불사하지는 아니했으되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개한 나머지 한평생을 죄인이라 자처하며 살다간 김시습 등의 여섯 명을 두고는 '생육신(生六臣)'으로 부르고 있다. 그게 비록 아니어도 이른바 ‘배일치(拜日峙) 고개’에 이르면 가슴이 아려오는 구구절절한 사연에 젖어 누구라도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 암울한 시절 단종이 유배지에 가까이 오면서 앞날을 기원하기 위해 해를 보고 절을 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래서 더욱 처량한 청령포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 속에 서슬 퍼런 역사를 떠내려 보내고 있다. ▲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청령포 해 질 녘 우리의 발걸음은 또 다른 팻말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남녘으로 얼마큼 달려가니 특이한 종유석으로 유명한 ‘고씨동굴’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이 근처에 살던 고씨 일가가 숨어들어 난을 피했다는 은신처. 이곳 역시 늘어뜨린 밧줄을 부여안고 내를 건너 좁디좁은 굴속을 비집고 들어가니 지하에서 솟구치는 시원한 물줄기가 일품이었다. 몸집이 큰 아줌마 때문에 간신히 빠져나오는 길에 사방을 두루 살피니 래프팅하기에 최적인 동강(東江)의 물줄기. 해마다 뗏목 축제를 개최하여 그 옛날 운송수단의 정취를 맛보는 곳에 무시무시한 인공 댐을 건설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적잖은 기간 환경 지킴이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름지기 한번 파괴된 자연이란 복원이 거의 불가능해지거늘 어찌하여 심각한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토록 쉽사리 어리석은 시도를 거듭하는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예로부터 인적이 드문 오지였기에 불과 얼마 전까지는 동해안을 찾는 경유지 정도로 여겨온 영월 지방. 하루 온종일 맑은 대기를 들이마시며 푸르디푸른 솔잎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깨끗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는 며칠 전 무거운 벼슬을 내려놓은 선비인 양 한껏 유유자적을 맛보고 싶었다면 나만의 과욕일까? 시나브로 꽉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한 고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잘 보존된 산하가 아직 우리 곁에 오롯이 남아 있기에 크나큰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장경(場景)을 만끽한 뒤 무사히 집에 돌아온 우리 식구들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그렇다면 오호라 경사로다, 비록 식전부터 뜻한 바는 아니었을지언정 홀가분하게 다녀온 당일치기 여행이라는 데 자족하리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47호)에는 ‘다양한 교회의 필요성 - 급변하는 다문화 상황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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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1
  • 송탄협력단체연합회, 북부장애인복지관에 백숙 전달
    이희주 회장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와 후원 이어가겠습니다” 평택북부장애인복지관(관장 유영애, 이하 복지관)은 8월 20일(토) 송탄협력단체연합회(회장 이희주)로부터 장애 당사자 가정에 지원할 여름건강보양식인 백숙 50인분을 후원받았다. 이날 전달된 백숙은 송탄협력단체연합회 회장 및 회원들이 직접 한방백숙을 조리했으며, 복지관에서는 후원받은 백숙을 장애 당사자 가정 중 건강 관리가 필요한 가정에 전달하면서 안부를 확인했다. 송탄협력단체연합회 이희주 회장은 “이번 백숙 나눔에 동참해주신 연합회 회원님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지역 내의 장애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봉사와 후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유영애 평택북부장애인복지관 관장은 “무더운 날씨에도 봉사의 손길과 물적으로 지원해 주신 송탄협력단체연합회에 감사드린다”며 “복지관에서도 장애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 평택사람들
    2022-08-30
  • [세상사는 이야기] 청령포의 오래전 풍경화 ‘청량한 포구의 산수화’ (전)
    한 학기를 알차게 마무리한 보람의 맛은 언제나 기분 좋은 자유의 시공이다. 평소에 비해 늦은 아침을 들고 그리하리라 작정한 바도 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오랜만에 바람이나 쏘이자며 자동차 페달을 살짝 밟는다는 것이 그만 장호원을 지나고 음성을 거쳐 어느덧 충주에 들어서면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치에 금세 물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냉큼 돌아서기 싫은 국면. 그렇다면 일단 이 순간을 즐기리라. 우리 네 식구는 하나같이 사방에 펼쳐진 황홀경에 흠뻑 빠져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렇더라도 왠지 어정쩡한 느낌이어서 단양팔경 중 어느 한두 곳만 구경한 다음 나중에 다시 올까, 아니면 내친김에 숙소를 잡고 청려(淸麗)하기 이를 데 없는 나머지 절경까지 죄다 돌아볼 건가를 제각기 재어보았다. 원래 의도는 분명 둘 다가 아니로되 주변의 청아한 풍경이 네 명의 나그네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점심때가 가까워지니 장기 전체에 출출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직 장호원은 못 미쳤으나 바로 곁에 단아한 초가가 있어 그 옆 솔숲 자락에 자리를 깔았다. 그런데 주섬주섬 챙겨온 과일에 문제가 생겼다. 트렁크에 넣어둔 수박에 얼이 잔뜩 먹는 바람에 맛이 좀 이상했다. 통째로 버리기는 아까워 성한 부분을 골라 먹는데 딱 한 입 베어 물기가 무섭게 아주 정색하는 인사가 있었으니 어린 아들내미였다. 그 모양새가 하도 우스워 다들 배꼽을 잡는 가운데 드는 생각인즉 오늘은 김밥 도시락이나 얼른 까먹고 가벼이 드라이브나 즐기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맘이 언뜻 들다가도, 까짓것 이왕지사 일이 이쯤 되었다면 내친김에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오락가락했다. 어렵사리 내린 결정은 아쉽지만 가장 유명한 청령포만 재빨리 둘러보고 집에 돌아가자는 쪽이었다. 부랴부랴 영월로 향하는 길. 목하 차창 밖은 수려한 강산의 연속극이다. 상상한 이상 고운 풍치에 너나없이 매료된 듯 차 안은 연신 감탄사들로 가득하다. 어느새 청풍명월(淸風明月)을 예약해둔 채 남쪽으로 흐르는 내[川, 시내와 강의 중간 크기]가 넓다고 하여 붙여진 듯 광천리(廣川里)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 청량하기 그지없는 청령포(淸玲浦)에 다다랐음을 알아차린 건 첫눈에 비친 비경(祕境) 때문이었다. 읍내로부터 십 리 좀 못 미친 지점의 좁다란 강가에는 막바지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 몇몇이 띄엄띄엄 한가로운 강촌을 시름없이 거닐고 있었다. 자료를 들춰보니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룬 곳으로써 동·북·서쪽이 모두 깊은 물줄기로 막혔을뿐더러 육지로 이어지는 남쪽마저 육륙봉의 험준한 층암절벽이 솟아있었다. 이를테면 단종의 유배지로 낙점할 만한 섬 아닌 섬이었다. ▲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청령포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빠삐용의 요새처럼 탈출이 불가능한 절해고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항간에 널리 육지 속의 고도(孤島)로 알려진 대로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데다가 남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고스란히 감옥을 삼기에 손색이 없다는 게 중평이로되, 속절없이 세월만 흐르다 보니 솔숲이 울창하고 강물은 더없이 맑아 영월 팔경 중 으뜸으로 꼽는 명소에 걸맞게 피서객과 낚시꾼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따라서 거기에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한다. 재밌게도 강철 밧줄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강폭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맞닿는 수단이 색다른 정취와 감흥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조심스레 뭍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널따란 잔돌밭이 가족 단위의 일행을 맞았다. 청령포는 한낮인 데도 해가 진 듯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햇살이 뚫지 못할 만치 울창한 수목들로 빼곡하다. 하늘을 뒤덮은 나무 가운데 맨 먼저 눈에 띈 건 관음송(觀音松). 단종의 유배 생활을 줄곧 지켜보았을 거라며 ‘볼 관(觀)’ 자에 피맺힌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뜻으로 ‘소리 음(音)’ 자를 따서 붙였단다. 입간판을 보니 둘레가 5m가 넘는 높이 30m가량의 600년생 소나무는 빼어난 자태로 인하여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적송이었다. 그 우측으로는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자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했던 금표비(禁標碑)가 있었는데 한때 화마에 휩싸여 영조 2년에 복원했단다. 돌비에 쓰인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인즉, 사방으로 접근이 엄격히 금지된 구역이었음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46호)에는 ‘청령포의 오래전 풍경화 - 처연한 단종의 인물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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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2-08-25
  • 바르게살기운동 신평동위원회, 어르신 주거환경개선 봉사
    신평동 유천2리 주거환경 열악한 어르신 싱크대 교체 작업 평택시 바르게살기운동 신평동위원회(위원장 이소흔)에서는 지난 21일 오전 9시~12시 신평동 유천2리에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어르신들의 싱크대 교체 작업 봉사를 실시했다. 이번 주거환경개선 봉사에는 신평동위원회 회원 10여 명이 참여했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 댁을 선정하여 싱크대 교체사업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매년 어르신들의 주거환경개선 봉사를 실시해오고 있는 신평동위원회는 이날 싱크대 교체는 물론 전기선 정렬 및 내부 청소를 함께 실시함으로써 열악한 위생 상태로 고통 받던 어르신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신평동위원회 이소흔 위원장은 “더운 날씨에도 어르신들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봉사에 참여해주신 바르게살기운동 평택시협의회 이종안 회장, 평택시의회 이기형 의원, 김수우 전 시의원님과 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주거환경개선과 함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바르게살기운동 신평동위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바르게살기운동 평택시협의회는 회원 약 1,2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 밑반찬 나눔 봉사, 태극기 달기 운동, 학교폭력 및 자살 예방 교육 공연 등 지역사회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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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22-08-23
  • 평택시 신장1동, 복지 사각지대 발굴 캠페인 실시
    김준숙 위원장 “위기가구 발굴하여 맞춤형 지원 제공하겠다” 평택시 신장1동(동장 김훈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위원장 김준숙)에서는 지난 17일 위기가구를 찾기 위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번 캠페인은 ‘우리 주변에 복지 위기가구를 찾아서 알려 주세요’ 홍보 전단지를 제작하여 신장1동 주민들에게 배부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김준숙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복지 위기가구란 ‘소득 감소, 실직, 휴·폐업 등 생계곤란 가구, 학대 위기 아동, 혼자 사는 돌봄이 필요한 가구, 중대한 질병, 장애 등 건강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가구’임을 상세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위기가구를 발굴하면 행정복지센터와 함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신장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김준숙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들은 매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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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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