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1(수)

시민광장
Home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실시간 조하식의 이야기 기사

  • [세상사는 이야기] “원효길과 괴태곶에 묻힌 기억들” 원효를 둘러싼 이야기 (상)
    연일 소논문의 각주를 채우느라 뜨거워진 머리도 식힐 겸 오랜만에 찾은 아산만은 주말치고는 한산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심술을 탓해야 할지 짓궂은 팬데믹의 손장난을 나무라야 할지 우리 사회는 아직 갈피를 못 잡는 거 같아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게다가 살인적인 고물가 때문인지 바지락 칼국수마저 내심 바라던 맛이 아니었다. 서둘러 도착한 주차장에서 미리 훑어본 자료집. “평택 역사 특강”에 붙은 두 가지 제목을 보니, 본 토론자 역시 ‘원효대사’에 관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간 궁금했던 ‘괴태곶’에 얽힌 지난날의 궤적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듯하다. 아주 먼 옛날이니 삼국시대는 건너뛰더라도 높고 고운 나라 고려(高麗)로 거슬러 올라가 평택지역을 관할했다는 양성현이 수원에 속했다가 조선조에 들어서는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했다는 사료보다는, 18세기 수도암(修道庵)이 괴태곶 봉수대 아래 있었다는 고서의 풀이가 먼저 한눈에 들어온 이유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19세기 양성읍지에도 수도사(修道寺)는 그대로 있었고, 보시다시피 하루해가 멀다 하고 격변하는 오늘날에도 이같이 건재하다. 원효대사에 대한 현대인들의 상식선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바야흐로 대선 정국을 맞이한 대한민국이 앞다퉈 본받을 만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다만 네 번째 항목에는 깊이 들여다볼 지점이 보인다. 물론 여말 이승휴의 <帝王韻紀>나 선초 고서경과 김지의 <大明律直解> 등의 기록을 간과한 바는 아니로되 설총이 이두(吏讀)를 만들었다는 설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해독이 어려운 한문에 문장의 순서까지 영어를 빼닮아 우리말 어순이 절실하던 참에 평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두라는 뒷말의 독음을 보아도 신라 때보다 훨씬 전부터 쓰이던 구결(口訣)의 토(吐)와 같은 어원인 ‘讀(두)’을 차용한 것으로 보아 주로 품외 서리(胥吏)들이 쓰던 글자이므로, 설총은 이두의 창안자라기보다는 난분분하던 표기 체계를 집대성한 자로 보는 편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이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한국어 요소를 담은 변체한문)을 비롯한 최근 발견되는 고고학적 목간(木簡)을 참고하더라도 설총의 시대에 비해 6세기 정도 앞당겨진 시점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흥미로운 대목은 조선말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원효와 의상의 관계다. 백승종 교수가 제시한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에는 당시 이규경이 쓴 ‘원효와 의상에 대한 변증설’이 실릴 정도였다는데, 내막인즉슨 ‘의상은 원효의 아들로서 익히 알려진 설총의 아우’란다. 따라서 무학대사가 지은 청구비결(讖謠, 일종의 예언으로 ‘정감록’에 있음)에 나오는 대로 의상이 원효의 제자라는 말은 착오가 된다. 신기한 건 그 형인 설총은 동방의 儒宗이 되고 동생인 의상은 동토의 僧祖가 되었다는 기술보다는, 여태껏 학자들은 왜 원효와 의상을 부자로 인정하지 않느냐에 있다. 꼭 이규경의 점잖은 문제 제기가 아니더라도 호사가들은 이른바 ‘씨나 배’의 문제로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았을까? 이수광의 <芝峯類說>을 펼치면 항간에 혹여 요석공주 말고 다른 연인이 있었다는 추측성 소문이 가능할뿐더러, 김걸이 지은 <海東文獻錄>의 釋家類에 동조하여 의상의 속성이 김(金) 씨라면 만의 하나 아버지가 다른 분일 수도 있지 않나 해서다. 어쨌거나 어느 날 불쑥 나타날지 모를 고문서에서 두 분에 대한 인상착의가 단 한 줄이라도 숨어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개인적 바람일지언정 불경스럽거나 지나친 억측인 걸 모를 리 없다는 점을 차제에 밝혀둔다. 매우 조심스럽게 짚어볼 대목은 의상과 원효가 택한 길이 달라진 것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로되, 원효 큰스님이 오밤중에 해골물을 마시고 깨우침을 얻었다는 설이야말로 역사성이나 사실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세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이끄는 일은 색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데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살을 붙여 가꾸는 협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주 분황사에 원효의 진상을 안치했다는 설총의 효심은 당대 미라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면 어느 쪽을 택했을까? 일본인들이 원효를 위시해 퇴계 이황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조상을 흠모한 연유는 무지몽매한 그들에게 백제의 선진적인 문화에다 유학을 전파한 아직기와 왕인 박사의 공이 크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천자문뿐만 아니라 논어 등 경전까지 배운 왜인들이었건만 어제오늘 경제 좀 일궜다고 저토록 최소한의 은혜조차 모른 채 매사 오만방자한 행태를 보노라면 왠지 스승이 제자를 잘못 가르친 것 같아 이제껏 걸어온 길을 새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11호)에는 “원효길과 괴태곶에 묻힌 기억들 - 괴태곶을 밝힌 봉수대”가 이어집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11-25
  • [세상사는 이야기] “큰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학술토론을 환기함 (하)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토요일인지라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다소 붐비는 편. 다행히 심하게 밀리지는 않아 여유롭게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자동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간단한 요기와 볼일을 마친 뒤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에 입장. 학술대회가 갖는 비중에 걸맞게 상당히 북적였다. 물론 코로나 사태의 엄중함에 따라 방역수칙은 지키려고 애썼으나 예상을 웃도는 참가자들로 인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 식전 행사에서 선보인 우아한 춤사위를 뒤로하고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네 분의 발제가 진중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오늘 학술대회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건 지정 토론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풍성한 문답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못 집요했을뿐더러 비록 자체 내 중간 평가라고는 하더라도 대내외에 널리 알려진 여느 학술대회 못지않을 만큼 알차게 진행된 점에 대해서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듯하다. 특별히 멀리 강원도 속초에서 달려와 종합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신 열렬 참여자가 있었는데 워낙 학문의 깊이가 돋보여 뭇 시선을 끌었다는 점을 밝힌다. 아울러 오랫동안 대회 준비와 뒷받침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손길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더불어 날카로운 질문들과 깊이 있는 탐구에 대한 진심 어린 치하와 치열한 질정이 있었고, 아직 시원한 해답은 얻지 못한 지점에 관해서는 후속 연구물을 통해 수정하고 보완하기로 다짐한 일도 묵직한 소득이다. 참고로 질의에 나선 지정 토론자가 일부에 집중된 현상을 감안해 개별 사안에 따른 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중 유의미한 문답을 골라보면, 안성천과 진위천까지 소금뱃길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은포를 평택항 근처로 비정(比定)하는 근거는? 세기의 장사꾼 오페르트가 평택항에 출몰했다는 설과 1980년대 평택제철 무산에 대한 견해는? 큰스님들과 학구열은 정비례하는가? 열반경, 유마경, 금강경, 라마다경 등 불경들의 차이점은? 전반부를 망실한 왕오천축국전에 쓰인 어휘들과 혜초의 바닷길을 논구한 치적에 비추어 진위행궁의 행방을 연구할 의향은? 원형 설화의 구조 탐색에 관한 의미 부여는? 석조비로나자불의 출현과 교학적 해석을 연계한 불교 작품들이 보이는 인생무상의 주제의식은? 길에 대한 상징적 의미 설정과 문화와 경관독해의 개념을 특정한 의도는? 서양의 형태이론과 장소이론의 상하위 관계는? 지역사회의 이면을 해부하고 가감 없는 실태 파악을 위한 특단의 해법은 없는가? 원효길 조성의 발상 전환과 옛길을 재현하려는 필요충분조건은? 명목뿐인 평택섶길의 현실적인 활성화 방안은? 당은포는 유라시아의 길목으로서 문명사적으로 어떤 문화를 수용하고 전파했으며, 그 유적들과 유물들은 있는가? 당나라는 탈라스(Talas)전투에서 진 뒤 <육상실크로드>가 막힌 것을 동아시아의 비약이라고 했는데 논리적인 연결고리는? 소무덤과 아까운 내 인생 되돌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 현각스님이 혜민을 향해 ‘도둑놈, 지옥으로 가는 기생’이라고 한 비난은 어찌 보며, 한국 불교계에 대한 생각은? 명성과 진실이 부딪칠 때 원효의 가르침은? 다수의 한국인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개인들인데 역사를 공부하면 시민의식이 고취되는가? 사유지에 속한 돌미륵입상이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오도성지와 대진포구에 대한 명확한 정황들을 적시하면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상권이 해인사판 고려대장경 속에 명확히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돈황 막고굴에서 처음 빛을 본 게 아니었다는 사실과 일본 종교학자 오타니 고즈이가 신라인 혜초의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물론 대부분의 질의와 응답은 논문 안에 녹아있었다. 그밖에 원효의 해골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 여부 등 미처 제기하지 못한 질문거리도 여럿 있거니와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사항도 다수 있었음을 상기해 둔다. 다시금 모두(冒頭)를 소환하면, 정해진 순서를 기다리면서 체험관 내부를 둘러보니 원효스님의 일대기를 정갈하게 정리해 놓았다. 막간을 이용해 다녀온 화장실의 민낯도 그만하면 합격점. 그윽한 차를 마시는 동안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나눈 눈인사는 가벼웠으나 저녁 잔치 자리를 메운 화제들은 평소 흘러넘치는 나의 관심사만큼이나 퍽 흥미롭고 다채로웠다. 모쪼록 평택 불교사암연합회에서 주관한 첫 학술대회 토론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앞으로 더욱 뜻깊은 연중행사로 발전해 나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10호)에는 “원효길과 괴태곶에 묻힌 기억들 - 원효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11-23
  • [세상사는 이야기] “큰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평택섶길을 소환함 (중)
    박재용 동국대 겸임교수의 “심복사와 비로자나불 - 부처가 바다에서 나온 까닭은?”은 비교적 친숙한 제목이었다. ‘평택섶길 명상길’을 돌 때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얽힌 설화를 정리해 기고한 ‘평택시민신문’(2020.12.30.)을 들쳐 보니 ‘절 입구에 세운 우보살 공덕찬은 광덕산 심복사(深福寺) 사부대중들이 우직한 일꾼으로 살다 죽어간 검은 소들의 넋을 기리는 송가였다. 사찰건립 당시 목재를 운반했던 소들을 보살처럼 깍듯이 묻어주고 심우총(尋牛塚) 앞에서 해마다 성묘를 지낸다니 줄곧 절터를 지켰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65호)은 뭐라 염불할지 자못 궁금증이 일었다. 물론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되 나름 짚고 넘어갈 구석은 있어 뵌다. 요즘 개고기를 금하자는 마당에 공헌도로 치면야 우공(牛公)들을 보니 살점을 부위별로 발라낸 뒤 뼈다귀까지 고아 먹는 것도 모자라 발톱에 터럭마저 장식품이나 붓으로 쓰는 걸 보노라면 저리 떠받들 구실은 갖춘 셈이다.’라고 적혀있었다. 발표자의 관심은 구비문학의 사실성이나 완결성이 아닌 특이한 서사구조에 있었다. 메신저보다는 메시지의 재해석에 따른 실생활과의 연계 여부랄까. 켜켜이 쌓인 적층문학의 핵심을 제대로 간파한 참이다. 유달리 종요로운 곳은 그 시절 사찰의 야외에서 펼친 설법 강좌[野壇法席]처럼 ‘평택은 그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원효·의상·혜초로 대비되는 구법승들의 엇갈린 행보가 공존했던 곳’이라는 문장으로 가히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와 성격을 단칼에 응축한 표현이었다. 2017년 과거의 시공을 재현한 ‘빛따라 한발디딤’이라는 지역축제가 열린 일도 이번에 알았다. 심혈을 기울인 연구물을 읽는 동안 기억에 남은 건 ‘심복사는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과 불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걸로 추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운율에 맞는 <화엄경>의 번역문이나 현란한 불교 용어를 비롯해 부처가 깨달음을 주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는 ‘나투다’라는 낱말도 호기심 많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김학범 한경대 명예교수의 “원효길의 역사문화적 상징과 의미”는 그나마 익숙하게 읽을 수 있는 논제였다. 발표자가 내린 정의처럼 길은 기점과 종점을 연결하는 하나의 행로다. 인생길 역시 출발이 있고 마침이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가는 사람이 길을 뚫었기에 인류는 교류했으며 갖가지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종교들이 똬리를 틀더니 여러 순례길이 생겼다. 국내만 해도 1980년대부터 정부 주관 하에 전국 옛길을 찾아 조성한 ‘조국순례 자연보도’를 필두로 2021.8.6. 현재 한국관광공사에 538개의 트레일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순례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어느새 그곳을 벤치마킹한 ‘제주올레’가 세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평택에는 총 16개 코스의 오백리 섶길이 시민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원효길’이 갖는 역사·문화적 상징성은 깊고도 넓다. 인간은 길에서 태어나고 뛰어놀다가 묻히기 때문이다. 길이 지닌 문화경관으로서의 의미는 지속 가능한 가치다. 문화와 경관은 매우 밀접한 어휘여서다. 삶의 총체적 양식이 문화이므로 경관은 자연스레 종교 경관, 민속 경관, 언어 경관, 농촌 경관, 도시 경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게 논자의 혜안이다. 이제 경관을 읽고[讀] 해석[解]한다는 이른바 ‘경관독해’의 개념은 문해력(literacy)에 속한다. 적시한 말마따나 ‘과거의 경관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형성될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그들의 사회조건, 자연조건 등의 문화적 맥락을 염두에 둬야 하는 때‘가 눈앞에 도래한 참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기억과 정서적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생태환경은 물론 사투리, 역사유적, 옛 마을, 건축물, 예술품, 음식물, 나아가 종교를 통한 자아를 만나고서야 자긍심을 키우며 미래를 열어가는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발표자가 소개한 서양의 형태이론은 효율적인 지침이다. 모든 장소는 그 모양에 의해 그 쓰임이 결정된다(Form follows function or Function follows form). 굳이 양자의 불가분성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정치한 설계와 정교한 시공이야말로 늘 유효한 이유이리라. 눈과 입이 즐겁고 맘과 발이 편한 곳이라야 사람들이 꼬일 테니 말이다. 남은 과제는 ’원효길‘의 재현이요 복원이다. 지난 2009년 문화관광부에서 발표한 원효대사의 구도행로를 추적한 순례길은 항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발표자는 시종착점에 원효대사비의 건립부터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야만이 원효를 상징하는 길이 된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평택항의 상징성을 부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인프라를 갖추고 상응한 의미체계를 갖추면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라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09호)에는 “큰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 학술토론을 환기함”이 이어집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11-23
  • [세상사는 이야기] “큰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원효대사를 회고함 (상)
    기독교 철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자로서 ‘제1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초청을 받은 감회는 남다르다. 수도사 주지 스님의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으나 아니 벌써 교회 장로와 더불어 신구약성경을 통독했다는 말씀에 놀라며 아주 좋은 기회라 여기고 흔쾌히 토론에 임하기로 했다. 순서지를 보니 가장 먼저 삼귀의례(三歸儀禮)와 사홍서원(四弘誓願)이란 사자성어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나 오히려 난생처음 접하게 될 장엄한 불교의식이 기다려지며 얼마 남지 않은 원고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냉큼 토론 자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김경집 진각대 교수의 “원효의 구법행로에 대한 연구”는 고대불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거늘 오래된 역사마저 가물가물하니 신라 구법승들의 행로 또한 생소한 느낌이지만 이내 출발지였던 당항진의 개칭(改稱)과 위치에 대한 정보에 눈길이 갔다. 각주를 보니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삼국유사는 읽어보았어도 삼국사기는 제목만 들어온 처지인지라 상식적인 고대역사의 범주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에 들어온 대목은 신라가 당항진을 두어 대당해로(對唐海路)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지점이었다. 발 빠르게 남북왕조에 사신을 보낸 진흥왕의 외교술이 돋보이는 장면이었거니와 이어진 중국 왕조와의 교류에 힘입어 불교는 융성했고, 원광을 비롯한 안함(安含), 자장(慈藏) 등 적잖은 구법승들이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원효와 의상대사의 두 번에 걸친 구법행로는 1차(650)에 험난한 육로를 택한다. 까닭인즉슨 당대 유명세를 타던 평양 반룡사의 보덕화상에게서 열반경과 유마경(維摩經)을 배우려는 학구열이었다니 존경스럽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첩자로 몰리는 바람에 금세 돌아오고 만다. 2차(661) 구법행로 역시 보장왕이 취한 ‘숭도억불(崇道抑佛)’ 정책에 따라 거처를 완산주로 옮긴 보덕화상을 찾아 계획했던 배움의 허기를 채운 뒤에야 ‘당은포’로 이름을 바꾼 당항진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관심이 가는 지점은 당시 당은포의 위치가 평택 포승읍 지역으로 유추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택섶길을 걸으며 엿들은 얘기로는 오래전에는 안성천이나 진위 오산천까지 소금배가 들락거렸다니 내륙의 송탄동인들 아예 관련이 없다고만 할 수 있을까? 김규현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장의 “慧超 <往五天丑國傳>의 海路說”을 통해 국내 최초로 논구한 혜초의 바닷길을 살펴본 성과는 크다. 교직 생활 틈틈이 해외 40여 개국을 나다닌 가운데 인도가 그 첫 여행지였기에 그렇고, 해상실크로드가 아시아하이웨이를 따라 펼쳐질 때를 학수고대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중국의 一帶一路에 섣불리 동행했다가는 공정치 못한 동북공정을 추인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저어되는 형국은 막아야겠기에 내심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요즘 한창 중국몽에 젖어있는 그들의 ‘海上紗綢之路’를 보며 발표자가 제안한 를 맞이할 준비만큼은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고견에는 하등의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름도 정겨운 ‘당나루’의 초점은 군사요충지로서의 기능에 모아져 있다. 만약 당항성 아래 현 남양만 어딘가에 ‘당은포’가 있었다면, 입국절차를 거치는 ‘海門’이란 관청이 있어야 한다는 게 논자의 추정이다. 지금의 평택당진항을 대상지 중 하나로 꼽는 건 그래서다. 전거는 기호지방의 옛 지도 중 1862년에 제작된 <水原府地圖>에 ‘大津’이란 지명이 표시돼 있고 그 하단을 보니 ‘대진에 백제의 수군 창고가 있었으며 ‘稤館(수관)’이라는 관청까지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수원부지도>를 비롯하여 <동국지도>, <해동여지도>, <경기도>, <대동여지도>에도 나와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한도숙에 따르면 평택항은 19세기 중반 세기의 장사꾼 오페르트가 기웃거릴 만치 수심이 깊고 보면 적어도 아산만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눈길을 끈 내용은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최초의 시가 黃鳥歌에 나오는 ‘翩翩’이란 표현에 있지 않거니와 당시 신라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무슬림 상인들과 교역했다는 史實이다. 이는 아라비아 박씨 성을 가진 학생을 가르쳤다는 지인 교사의 전언이나 8구체 향가인 處容歌의 시대적 배경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신라를 현대 중국어 발음인 ‘sinlo’나 ‘sinla’로 통한 게 아니라 ‘sila’나 ‘shila’로 불렀다는 대목이다. 720년의 <日本書紀>나 <崇神記>에도 나온다고 하니 더 수긍이 간다. 난해한 문제를 공들여 풀어헤친 연구자께 경의를 표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08호)에는 “큰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 평택섶길을 소환함”이 이어집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11-23
  • [동호회를 찾아서] 7인조 여성으로 구성된 ‘평택 라온밴드’
    지난해 11월 구성된 ‘평택 라온밴드(리더 김현주)’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7인조 여성밴드로, 지역사회에서 봉사와 재능기부를 통해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향기롭게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지난 20일 합정동 소재 ‘라온밴드’ 연습실에서 멤버들을 만나 추구하는 음악, 활동 계획,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말>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09-28
  • [동호회를 찾아서] 평택예향팬플룻 앙상블
    2014년 평택시 학습관에서 팬플룻 강좌가 열리면서부터 평택 지역의 팬플룻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졌다. ‘평택예향팬플룻 앙상블’은 2014년 8월 1일 평택시 비전동에 거주하는 초대단장인 이장수 단장의 노력으로 15명의 팬플룻 앙상블 멤버가 구성되면서 창단됐다. 창단 후 이장수 단장의 열정과 노력으로 참여 단원이 늘어가기 시작했지만 모임과 연습 장소가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평택동산교회에서는 ‘평택예향팬플룻 앙상블’의 연습장으로 교회 교육관을 흔쾌히 내주면서 이장수 단장과 회원들은 1주일에 한 번 모여 배움과 연습을 이어왔으며, 음악 안에서 소통하고 행복을 나누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09-28
  • [평택시 동호회] 중증 시각장애인 “평택슈퍼볼링동호회”
    “열개의 핀이 동시에 쓰러지면서 내는 파열음은 볼링만의 큰 매력이며,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에서 받는 수많은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평택슈퍼볼링동호회(회장 정운국)는 지난 1994년부터 활동한 평택시의 가장 오래된 볼링 클럽이다. 이전에는 개인별로 활동했지만 회원들이 뜻을 모아 2014년부터는 ‘평택슈퍼볼링동호회’를 창단해 현재 정운국 회장을 비롯해 박기원, 양순자, 김만철, 김태형, 김정임, 김종화, 박숙희, 변보우, 손명자, 오용환, 양영조, 정민원, 홍성민 회원 등 시각장애 1급~2급 15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시민광장
    • 조하식의 이야기
    2021-09-2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