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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평택사람들 기사

  • 미류공방, 하순천 도예가
    “흙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일은 아이들 남편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며, 그다음으로 미류공방을 통해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하순천 도예가(50)의 얼굴에는 동심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웃음과 미소가 있었다. 지난 12일 진위면에 위치한 미류공방을 방문해 하순천 도예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도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혼 후 서울에 살던 하 도예가는 10년 전인 2002년 가을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송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평택시 진위면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도예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아이 둘을 키우며 주부로 살아온 하 도예가는 가정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내놓을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직접 만들어 보려는 평범한 주부의 생각으로 진위면 미류공방을 찾았다. 딱 2개월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공방을 알아보던 차에 사람들의 평이 좋았던 미류도예공방에 문을 두드리면서 되었고, 하루하루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흙에 생명을 불어 넣어 작품을 만드는 일의 즐거움과 자신의 작품이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운명처럼 도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하 도예가는 지금도 흙을 만질 때 설렘을 느낀다. 지금까지 만든 많은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애장품으로는 등잔을 꼽는다. 자신이 만든 등잔으로 전깃불 대신 다락방의 어두운 곳을 밝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게 될 때 소소하지만 작은 감동을 느낀다.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물러대는 흙이 때로는 등잔이 되고, 때로는 주전자가 되고, 때로는 찻잔이 되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이 되고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또 전시회와 지인을 통해 저의 작품을 구매하시는 분들과 열심히 만든 작품을 이웃들에게 선물 할 때 이웃들이 작품을 예쁘게 봐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도예가로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어떤 작품을 해야 하나 구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하 도예가는 혼자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긴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도착하는 곳에서 작품의 힌트를 떠올린다고 한다. 무작정 떠난 드라이브의 끝은 바닷가가 될 때도 있고, 산이 될 때도 있고, 강이 될 때도 있다. 지금까지 도예를 할 수 있었던 원천은 사랑하는 가족의 지지가 가장 큰 힘이었다. 작품에 몰입 할 때는 새벽까지 밤샘작업을 하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가족모두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응원해준 덕분으로 지금까지 지역의 중견 도예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미류라는 공간에서 국제대학교 도예과 박상돌 교수의 가르침과 ‘무슨 일을 하던지 열정을 갖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배웠으며, 가정주부이자 도예가라는 제2의 인생을 끌어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냥 평범한 주부로 시무룩하게 살 수 있었던 인생에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도예와의 만남으로 전시회도하고 초대전도 하게 되고 너무 행복합니다. 모두들 힘든 시기에 희망을 잃지 마시고 도전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도예가로서, 가정주부로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열심히 걸어갈 것입니다.” “작품들을 보면 나와 닮지 않았나요?” 하순천 도예가의 도자기는 작가의 마음처럼 소박하면서 꾸임 없는 매력을 가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정이 느껴진다. 무언가 열정을 갖고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느끼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하 도예가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중년의 주부에서 지역의 중견 도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하 도예가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필자가 접한 중년의 인생과 열정, 도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문의: 미류공방,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진위천유원지입구 ☎ 031-611-7753)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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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17
  • '사랑의 가위손' 안미옥 사장
    “아이들에게 실천하는 봉사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환상적인 가위 놀림으로 정원, 머리 손질, 강아지털 손질까지 솜씨를 보여주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된다. 에드워드는 이기적인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순수한 사랑을 그의 딸에게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과 대조되는, 변함없는 에드워드의 사랑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평택시 비전동에서 참머리사랑 헤어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안미옥(46) 사장은 9일(월) 제17회 여성주간행사에서 소외계층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주민화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지역봉사상을 수상했다. 안 사장의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은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택시 칠원동에서 태어나 송탄초등학교와 한광여자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20살의 나이에 미용학원을 다녀 미용사 자격증을 갖게 된 안 사장은 미용에 대한 큰 꿈과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지인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3년 동안 미용실에 취직해 미용실 운영과 미용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아 성북구 길음동에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가게 문을 연 안 사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살려 이웃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종로구에 있는 탑골공원을 찾아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70~80여명의 노숙자들과 어르신들을 상대로 머리를 손질해 주는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안 사장은 “처음 시작한 봉사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계속 했다”며 “아이들에게 말로만 가르치는 봉사가 아니라 실천하는 봉사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5년 안 사장은 평택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 곁에 살기 위해 평택으로 내려온 후에도 봉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평택시미용협회 오정희 지부장, 김성향 사무장과 군문동에 위치한 ‘얼짱 헤어샾’, 평택동에 위치한 ‘노담 헤어샾’ 사장님들과 함께 평택시 소사동에 위치한 동방학교를 찾아 학생들의 머리 손질과 함께 말벗이 되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동방학교를 방문할 때 마다 안 사장은 “작은 봉사를 통해 길고 지저분한 학생들의 머리가 깔끔해지고 예뻐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장애 때문에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가식 없는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따뜻한 안 사장은 이 외에도 비전동 소재 교회 관계자의 부탁으로 4년간 어려운 가정형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머리를 손질해 주었으며 지역 주민들 중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에게는 무료로 머리를 깎아 주고, 요금을 할인해주는 등 재능을 이용한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또한 복지카드를 들고 오시는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머리 손질을 해주는 사랑 나눔으로 강북구청장 표창장, 대한미용사회 경기도 지회로부터 표창 등 많은 상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봉사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 봉사를 하다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돈과 노력으로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이 크며, 저의 조그마한 봉사로 이웃들이 활짝 웃을 때에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 곁에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봉사를 할 것입니다.” 안 사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를 적으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이들에게 말 뿐인 봉사가 아니라 실천하는 봉사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공부 잘해야 출세한다'는 말 이외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뜻한 가슴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말 해 본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나누고 봉사한다는 것. 어렵지 않으면서도 현실에서 너무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안미옥 사장의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눔, 사람만이 희망이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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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10
  • 최승혁 시인
    “오늘도 메모지에 다양한 질감의 세상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월 30일 최승혁(76) 시인은 자신의 첫 번째 시집 ‘개천둥소리’ 출판식에서 시집 출판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옹달샘은 작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쉼터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두 가지 방법이 그중 하나는 저술을 남기는 일이고 또 하나는 자식을 낳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성공을 위해 책을 쓰지 않는다. 다만 훗날 나의 책이 다른 연구자들을 위한 한 권의 참고문헌으로 영원히 살아남아 한 줄 인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최 시인은 1937년 일제 강점기 말기에 평택시 가재동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송탄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발생한 6·25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에 올라 학교 교육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3년간의 6·25 전쟁이 휴전되고 최 시인은 배움에 대한 그리움으로 16살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성신중학교(옥수동)와 고등학교를 야간으로 다니며 낮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최 시인은 고향 가재동에 홀로계신 어머님이 걱정돼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당시 가재리는 전쟁 후 열약한 교육 환경으로 인해 기본교육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농사짓고 사는 것만이 인정받을 때였다. 최 시인은 어려서부터 마을에 있는 가재리교회를 다니며 이웃사랑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키워왔으며, 교회학교 교사와 속회속장을 맡으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에게 글을 깨우쳐 주는 등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최 시인은 80년대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 나갔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복음성가 가사를 스스로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썼으며 처음으로 ‘기독교타임즈’에 시를 한편 두편 기고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1998년에는 송탄문학인협회에 등록,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송탄문학’ 시집에 50여 편이 넘는 시를 게재했다. 그 후 2009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중앙문예지인 월간 시사문단의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달에 3편씩 시사문단을 통해 사람들에게 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2010년 1월 30일 자신만의 색깔이 오롯이 묻어 있는 ‘개천둥소리’ 시집을 발간하였다. 이러한 열정은 2009년 시사문단 신인문학상, 2010년 제7회 풀잎문학상 본상, 2011년 제6회 빈여백동인문학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최 시인은 전철을 타고 다닐 때에도 문든 떠오르는 시가 있으면 바로 메모지를 꺼내 옮긴다. 또 항상 가방에 자신의 시집을 가지고 다니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집을 꺼내 웃음과 함께 건넨다. 요즘은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없는데 독서를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시인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자신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시를 쓸 때 마음이 가장 편해집니다. 시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볼 때 한없이 재미있고 긍정적으로 보게 되며 사람들이 말하는 것, 옷 입은 것, 소소히 지나치는 생활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다양한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최 시인은 “시는 시인의 것도 되지만 독자의 것이라며 자신의 시를 사랑해주는 독자들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시를 작성해 나갈 것”이라며 “시 한편에 길게는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작품도 있지만 세상을 저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창작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다양한 질감의 세상과 사람을 메모지에 열심히 옮기고 있는 최 시인은 우리 곁의 이웃이자 평택을 살찌게 하는 훌륭한 시인이었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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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03
  • 팽성읍 내리식당, 이중한 사장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인근 농촌에는 젊은이들은 없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만 남아 논과 밭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고, 부모님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정성껏 모시고 있습니다.” 이중한(57) 사장이 운영하는 평택시 팽성읍 내리에 위치한 ‘내리식당’은 인근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대접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 이 사장은 작년 2월 인천시 부평구에서 도시생활을 정리한 후 공기 맑고 인정 많은 시골마을을 찾던 중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 팽성읍 내리에 정착하면서 ‘내리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 옆에 집을 마련하고 거주하면서 이 사장은 이웃 외로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드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이웃한 내리양로원을 찾아 식사를 하지 못하신 어르신들을 자신의 식당으로 모시고 와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필자가 이 사장의 식당을 방문한 날에도 20~30여명의 어르신들이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와 이 사장의 따뜻한 가슴을 나누고 있었다. 이 사장은 어르신들 한분 한분에게 일일이 “어르신 많이 드시고 가세요”,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라며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과 음식을 대접했고 식사 후에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배웅 하였다. 이사장은 “어르신들을 대접할 때마다 부평에 계신 어머님과 20여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말하며 “어르신들을 잘 모셔야 모든 일이 잘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이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여느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밥(흰밥, 볶음밥)과 국(된장국), 반찬(짜장, 동그랑땡, 잡채, 불고기) 등 약 15~17가지의 다양한 반찬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고 있으며 혹시나 어르신들이 미안해하는 마음이 없도록 밥 배식과 밝은 웃음으로 어르신들을 만난다. 이 사장의 봉사는 이전에 살던 부평에서 야채 장사를 할 때부터 많은 이웃에게 사랑의 씨앗이 되었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필요한 야채를 무료로 주거나, 적은 돈을 받고 많은 야채를 주는 등 봉사를 실천해 왔다. 부인 김경숙씨는 “마음씨 착한 남편을 만나 지금껏 행복하게 살아왔다”며 “어르신들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에 한 번도 반대해 본적이 없고 열심히 지지하고 있다”고 말해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은 물론 부부의 따뜻한 이웃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리식당’은 주민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역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주민들을 위해 5천원의 저렴한 가격에 뷔페식으로 20여 가지의 다양한 반찬을 제공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자주 찾고 있으며, 입소문이 나고 있다. 다만 저렴한 가격에 질 좋고 다양한 반찬을 내놓다보니 직원들의 인건비를 빼면 가게 경영은 빠듯하기만 하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초에는 경영난으로 5개월 정도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이 사장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앞으로 가게 운영이 잘된다면 1주일에 2~3일 뿐만 아니라 외로움에 지친 어르신들에게 매일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나누고 있는 이중한 사장이야말로 가슴이 따뜻한 평택사람이었다. 어쩌면 좋은 차, 좋은 집에 살고, 부족한 것 없이 사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대다수가 굳게 믿는 세상에서 자신 역시 부족하면서 나눌 수 있다는 것.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랑이다. (내리식당: 평택시 팽성읍 내리 110-2 ☎ 031-691-2828, 011-328-5215)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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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26
  • 박정인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장
    사랑을 배달하는 ‘박정인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장’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에 소재한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의(이하 복지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정인(44) 센터장은 지난 2007년 9월부터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의 운영을 맡고 있다. 평택시 서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약 120여명의 소외계층 어르신들에게 방문을 통해 건강 체크, 대화를 하며 소외감과 심리적 불안정을 해소해 드리기, 반찬·도시락배달, 의식주 및 시장보기 지원, 관공서·은행 등 업무대행, 생신잔치, 외식, 소풍 등의 봉사를 통해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지난 2005년 4월 1일에 문을 연 복지센터는 정부지원 없이 순수하게 민간 후원금만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저소득층 독거 어르신들과 노인어르신 뿐만 아니라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어르신들의 행복한 웃음을 볼 때 봉사의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할머니께서는 생일날 꽃을 선물해 드렸는데 평생에 처음으로 꽃을 받아 봤다며 한없이 기뻐하셨으며, 2009년에는 복지센터 재정의 어려움으로 매년 연말에 실시하던 송년잔치 계획을 취소하였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당시 기초 수급대상자이시던 할머님께서 송년잔치를 꼭 하고 싶다며 봉투에 돈을 넣어 전달해주시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큰돈이 들어가는 치과 치료나 안과 치료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에 통증을 호소하던 어르신에게 치과 치료를 받게 해드린 후 맛있는 음식을 씹게 되어 고맙다며 웃으시던 모습,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해 바깥 외출조차 할 수 없었던 어르신에게 수술을 받게 해드린 후 앞이 잘 보인다며 기뻐하시던 모습들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우리 주변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농촌에 땅은 소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소득활동이 전혀 없는 분들이나, 부양할 자식은 있지만 오히려 부모님을 찾아와 얼마 되지 않는 돈까지 빼앗아가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자식은 있지만 자식들이 부모님을 전혀 돌보지 못하는 가정이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현재 복지센터는 운영비용과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내 여러 기업체들이 도움을 주려고 했다가 법인이 아닌 관계로 후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정의 어려움으로 어르신들의 이동용 차량이 없어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이동할 경우에는 다른 단체로부터 차량을 빌려오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재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많은 어르신들에게 봉사를 하기에는 자원 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박 센터장은 현재 특화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나눔이 행복한 쌀'을 운영해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에 쌀 걱정이 없도록 봉사하고 있으며, 오는 2015년 어려운 어르신들이 모여 살 수 있는 ‘행복마을’을 계획 중에 있다. 현재 평택재가복지센터에는 안중지역의 많은 이웃들, 가게와 업체들이 도움을 주고 있으며 살림살이 공개를 통해 투명한 운영을 하고 있다. 박 센터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복지센터를 나오는 필자의 시선에 보행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더도 덜도 말고 어르신들의 가냘픈 어깨에는 외로움, 쓸쓸함, 지병, 경제적 어려움이 힘겹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민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 686-7557, 010-6291-2651,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291-2 3층, http://cafe.daum.net/ptold, 후원계좌: 농협 115-01-095697 예금주 평택재가노인복지센터)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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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19
  • 시각장애 5급 최영순씨 '고졸 검정고시 합격'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작은 꿈입니다” 지난 7일(목) 오후 에바다장애인평생학교를 찾아 뒤늦은 나이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한 시각장애 5급 최영순(51)씨를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김영순씨의 시력은 오른쪽 눈은 밝고 어두운 것 정도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잃었으며, 왼쪽 눈 역시 안경을 착용하지 않을 경우 심한 원시와 난시로 인해 형체만 겨우 구분할 수 있다. 교정시력 역시 시야가 약 15%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동안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최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교육은 더욱 더 적응하기 힘들었다. 요즘에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러한 배려가 전혀 없어 맨 앞줄에 앉아도 칠판의 글씨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두 달 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마지막으로 공부를 포기했다. 이러한 아쉬움은 최씨가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이러던 차에 최씨는 작년 5월 에바다장애인평생학교에서 공부하던 지인의 추천으로 평생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며, 가슴에 응어리진 못다 한 공부에 아쉬움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점차 발전해 갔다.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책과 문제집은 크게 확대해서 봐야했으며, 잠자리에 들어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용 테이프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또 검정고시를 며칠 앞두고 모르는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윤현수 사무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하는 등 검정고시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항상 에바다장애인평생학교에 등교해 공부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최씨는 평생학교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교육장비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공부하면서 적지 않은 불편을 겪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평택시에는 작년 기준 1급 272명, 2급 46명, 3급 84명, 4급 102명, 5급 186명, 6급 1,405명 등 약 2,095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공부하고 싶어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어 가슴에 응어리를 안은 시각장애인들이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의 못 배운 응어리를 풀어 줄 수 있는 평택시의 시각장애인 교육기반시설 구축과 확장이 시급해 보인다. 최씨는 시각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에 대한 서러움도 말했다. 계단의 높고 낮은 정도를 구분하기 쉽지 않아 계단 손잡이를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움직일 때면 천천히 간다고 뒤에서 윽박지르고, 버스번호 확인이 어려워 바로 눈앞에서만 볼 수 있어 뒤늦게 출발하려는 버스에 타려할 때 일부 버스기사가 무심코 던지는 언성높인 재촉, 장애인들을 위해 도로와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점자블럭에 서서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외출이 두렵다고 말했다. 최씨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우리 모두가 쉽게 이용하는 목욕탕을 가보고 싶고, 여름철을 맞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나 자동차 등을 운전해보고 싶은 것이다. 또 대학에 진학 해 사회복지를 전공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시각보행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보다 더욱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청교도 작가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맹인이 되는 것은 비참하지 않다. 맹인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비참하다”고 말했다. 최씨가 바라는 작은 꿈, 그리고 자신보다 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꿈들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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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12
  • 서탄면 유만지 할머니
    “하루 1만원 벌려면 새벽 4시부터 부지런히 파지 주워야” 모두가 잠든 새벽 유만지(75) 할머니의 일과는 다른 사람 보다 이른 새벽 4시에 시작된다. 할머니는 일어나자마자 무거운 손수레를 이끌고 동네를 돌며 파지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유만지 할머니는 10년 전까지 동네 인근에 있는 한 공장에서 식당일을 하며 지병을 앓아온 할아버지를 돌보며 어렵게 생활해 왔으며, 안타깝게도 4년 전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는 퇴근길에 난폭운전을 일삼는 버스 안에서 넘어져 허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 3년 정도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해왔다. 하지만 겨울 난방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으로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7년 전부터 파지를 수집하며 조그마한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약을 복용하면서도 힘든 몸을 이끌고 1만원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발품을 팔고 계신다. 파지와 캔, 깡통,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가능한 이것저것을 수집하기 위해 당신의 몸보다 더 큰 손수레를 끌고 있다. 할머니는 “나를 주기 위해 파지와 재활용품을 모았다가 주는 슈퍼마켓 5곳, 공장 3곳이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필자에게 몇 번이고 말씀하셨으며, 파지를 줍기 위해 왕복 5km도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필자의 가슴은 너무도 무거웠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파지를 수집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해 파지를 줍는 사람들이 많아져 한 달에 30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웃주민들의 불만으로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파지와 재활용품에서 나오는 냄새가 심하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찾아와 항의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필자는 할머니가 염려돼 끼니마다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묻자 할머니는 “밥은 굶지 않고 매일 매일 잘 먹어. 요즘은 도와주는 곳이 많아서 어디서는 쌀도 주고 어디서는 김치도 준다”며 “쌀이나 김치가 남을 때는 나보다 더 어려운 양반들 도와줄 때도 있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선 필자의 눈에는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깔아놓은 전기장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 할머니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했다. 또한 한 달 4천원의 난방비가 나왔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필자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한 겨울 강추위만큼의 먹먹함이. 할머니는 밖에서 파지 줍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일을 하다보면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1시간에 걸쳐 취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필자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문 밖에 까지 나와 고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할머니에 대한 필자의 작은 관심이 고마운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필자도 주변을 좀 둘러봐야 할 것 같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고, 또 소외된 이웃들이 많다. 오늘도 할머니는 당신의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손수레를 이끌고 파지 몇 장을 더 줍기 위해 5㎞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걷고 계실 것이다. <유만지 할머니: 서탄면 수월암4리 ☎ 662-5514, 후원계좌: 농협 유만지 207034-52-009171> 원승식 서형래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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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5
  • 송탄소방서 ‘송호성 소방교’
    시민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송탄소방서 ‘송호성 소방교’ "지난해 12월 송탄소방서 이재만 소방장, 한상윤 소방교는 서정동 가구전시장 화재현장에서 만일의 경우 대피하지 못한 시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 위험을 무릅쓴 인명검색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단한명의 시민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소방대원들이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 송탄소방서 송호성(28) 소방교는 작년 11월 평택시 서정동 D아파트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김OO(남, 61)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식은땀을 흘리는 김씨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심정지가 발생하자 지체 없이 신속한 심폐소생술 실시 후 자동제세동기(AED)를 사용한 전문적인 응급조치로 꺼져가던 시민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17일(목) 송탄소방서를 방문해 시민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젊은 청년 송호성 소방교를 만났다. 송 소방교는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작은 아버지와 고모부, 친한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올해 소방관이 된 고종사촌 동생까지 소방관집안이다. 어려서부터 소방관으로 일하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부를 바라보며 소방관의 꿈을 키워왔다. 송 소방교는 충남도립 청양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를 졸업하고 2006년 9월 포천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입문하였으며 2010년 5월에 송탄소방서로 발령받아 평택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있다. 소방관 6년차인 송 소방교는 올해 1월 송탄소방서 119 상황요원으로 근무를 지정받아 시민들의 긴급 전화를 받고 있으며 상황을 판단해 각 센터와 구조대에게 신속정확하게 지령을 내리고 있다. 작년 11월 꺼져가는 시민의 생명을 구해 최근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킨 구급대원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하트 세이버 배지’를 수여 받았다. 송 소방교는 심정지가 발생하고 4~5분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시간인데 대부분 신고자의 늦은 대처와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촉박해 인명구조에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소방관생활 중 가장기억에 남는 일은 포천에서 근무할 당시 연속적인 4차례의 화재로 화재진압을 마치고 돌아와 물탱크에 물만 채우고 4번 연속 출동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약 10시간 동안 화재진압을 해 다리부터 팔까지 온몸에 힘이 빠져 인간의 한계를 느꼈지만 불을 끄고 생명을 구했다는 소방관으로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가장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작년 서정동 가구전시장 화재사고에서 함께 근무하던 형제와 같은 소방대원 2명을 떠나보낸 사건이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송 소방교는 “하루 25차례 정도 출동하는 구급대원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시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신고자와 주변사람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협박 또는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며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2명이 한조가 되어 출동하는 구급대원들은 야간에 만취자와 정신질환자 또는 갑자기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시민들로 인해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작은 선물이지만 음료수 또는 피로회복제 등을 들고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시는 시민들과 목숨을 구해줘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으면 시민들의 따뜻한 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며 “이럴 때에 소방관으로써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또한 시민을 위해 많은 땀을 흘리는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송 소방교는 긴급한 상황에서 당황해 정확한 신고접수를 못하는 시민들이 많아 곤란할 때가 많다며 긴급한 상황일수록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신고하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또한 하루 평균 50건이 넘는 장난전화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할 소방인력이 분산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화재, 구조, 구급 출동은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이므로 소방차가 접근했을 때에는 우선 길을 양보해 통행로를 확보해주는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평상시 긴급자동차 접근했을 때 무조건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운전자의 관심이 한 생명을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루 24시간 2교대를 하며 힘든 근무여건 속에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난해 12월 서정동 화재현장에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다가 산화한 이재만 소방장, 한상윤 소방교를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곁에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는 소방관들이 있다. 그래서 시민 모두는 행복하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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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22
  • 가재리교회 봉사부
    “아직도 우리 곁에는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깜깜한 방 안에서 형광등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며 생활하시는 독거어르신들이 계신다. 또 지난겨울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강추위에도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겨울을 나신 어르신들도 계신다. 이분들에게는 깜깜한 방안, 추운 방안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 어둡고 가슴 시렸을지도 모른다. 좋은 차에 좋은 집에 사는 것만이 진리가 된 세상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는 가슴이 따뜻한 평택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지역의 빛과 소금이다.” 평택시 가재동 소재 가재리교회(목사 김창택) 봉사부에서는 매주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어려운 환경에 계신 독거어르신들에게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양로원을 찾아 어르신들의 목욕봉사를 실시하는 등 봉사자가 아닌 아들과 딸로서 따뜻한 가슴의 체온을 어르신들에게 전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목욕봉사는 안성시 보개면 소재 밝은집 양로원을 시작으로 2010년부터는 교회인근에 새로 들어선 푸른요양원에서 계속 봉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2011년부터 가재리교회 봉사부(봉사부장 최대혁)에서 시작한 반찬봉사에는 많은 교인이 함께 동참하고 있다. 가재리교회 인근 지역(도일동, 가재동, 방혜동)은 농촌지역으로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자녀들도 고향을 떠나 외롭게 어르신들만 거주하는 경우와 독거어르신 또한 많이 거주하고 있다. 봉사부 회원들과 교인들은 일요일 9시부터 밥과 반찬을 준비해 3시부터 도일동과 가재동의 약 20여분의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직접 전달하고 있으며, 어르신들은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어르신들은 반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또 따뜻한 정성을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반찬봉사는 매주 기본적으로 국, 김치, 마른반찬, 나물반찬, 고기반찬 등 일주일동안 넉넉히 드실 분량을 마련하고 있으며, 거동이 불편해 목욕하기가 어려운 어르신들 찾아 말벗도 되어드리고 묵은 마음의 상처도 씻겨 드리고 있다. 최대혁 봉사부장은 “반찬봉사와 목욕봉사를 할때마다 봉사부원들과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봉사에 임하고 있다”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독거어르신과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에 모든 봉사부 교인들이 행복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택 담임목사는 “가재리교회는 87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송탄동 일대 지역주민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해 왔다”며 “앞으로도 독거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저를 포함한 모든 교인이 사랑을 나눌 것이며, 시민 여러분들도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25년 방혜동 이상숙 할머니 가정에서 첫 예배를 시작으로 설립된 가재리교회(교인 234명)는 반찬봉사와 목욕봉사 이외에도 노인정 음식대접, 장학사업, 군부대위문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 있다. 낮은 데로 임한다는 것. 그래서 사람만이 또 희망이다. (문의: 가재리교회 ☎ 070-8224-0091, 070-7570-0091)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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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5
  • '원평동 다문화 한글 교실' 오동환 선생님
    평택시 원평동주민센터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한글을 배우는 다문화가정 주부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원평동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다문화 한글 교실 오동환(55) 선생님은 한국말이 서투르고 어설프지만 한글을 배워가는 주부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한글을 가르치는 즐거움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평택시 군문동에서 태어나 교직생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평택에서 살아온 오 선생님은 2003년도에 평택기계공고 교감 명예퇴직으로 20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교직생활의 풍부한 경험을 살린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조그마한 소금 역할을 담당하고자 했던 오 선생님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2005년부터 원평동 주민자치센터 교육분과를 담당해 왔으며, 2007년부터 다문화 한글 교실을 신설하여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한글 선생님으로, 때로는 상담자와 편한 친구로 다문화가정에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은 다문화가정 주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교재가 많이 생겨 영어 베트남어 등으로 주석이 있는 책자들이 많이 있지만 오 선생님이 처음 다문화 한글교실을 시작한 2007년도에는 제대로 된 교재도 없고 경험도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오 선생님은 처음 한글을 배우는 다문화 주부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재를 구하기 위해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직접 편집하여 다문화 한글교실 교재로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가졌다. 오 선생님이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특히 베트남 주부들이었다. 일본, 중국, 필리핀에서 한국에 온 주부들은 조금이라도 언어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글을 가르치기가 수월했지만 베트남 주부들의 경우에는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아 가르치면서 진땀을 흘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 선생님은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말을 전혀 못하던 다문화 주부들이 한글교실을 통해 한글을 익혀갈 때 기쁘다”며 “어린아이가 한자 한자 한글을 익혀 나가는 것과 같이 부모의 뿌듯한 심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글을 배움으로써 우리나라 문화에 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낯선 한국에 와 집안에만 있던 주부들이 우리이웃의 한사람으로 버스도 타고 시장도 가는 등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써 생활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성공적인 다문화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치센터와 다문화가정이 서로 소통하며 가정주부뿐만 아니라 가정의 2세들 또한 관심을 가져야한다. 다문화가정 주부 대부분은 어린나이에 시집을 오게 되고 출산을 빨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 한글을 모르는 주부의 자녀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오 선생님의 모습에서 구수한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로 5년차인 다문화 한글교실은 그동안 70여명의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이제 선후배가 생겨 처음 배우러 오는 신임 주부들에게 선배주부들이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어 더 빠르고 쉽게 한글을 배우고 있다. 원평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월, 토 한글교실을 운영 중이다. 오 선생님은 월요일 한글교실에서는 자치센터로부터 소정의 수업료를 받고 있지만, 토요일은 월요일에 수업을 받지 못한 주부들을 위해 특별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우리주변에는 많은 다문화가정의 주부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언어, 문화 많은 것들이 다르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지역사회의 약자이다.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오동환 선생님이야 말로 이들 주부들의 고향 아버지와 같은 따뜻함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가슴이 따뜻한 평택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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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4
  • 날개 없는 천사 James Dougan(두기)
    외로운 아이들의 소중한 친구...날개 없는 천사 '두기'씨 “2004년 여름, 내가 한국에 와서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는데, 마트에 가던 도중 서정리 시장을 마트로 착각해 버스에서 잘 못 내려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정동 애향복지센터 앞을 지나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애향복지센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애향아동복지센터(이하 복지센터)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모와 잠시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갓난아기에서부터 고교생까지 80여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활하고 있다. 8년 전 송탄미군부대에 발령받아 처음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한국명 ‘두기(James Dougan, 42)’씨는 지난해 7월 주한미군 상사로 20년간의 군 생활을 끝마쳤으며 지금은 미군부대 안에 있는 ‘Maryland University College’ 4학년 과정을 이수중이다. 두기씨는 2004년 우연히 알게 된 복지센터를 찾아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 어린이들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지난 8일(일) 오전11시 서정동에 위치한 두기씨의 집에 방문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말을 전혀 할 수 없던 두기씨는 복지센터를 찾아 단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꾸준한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쉽게 친해졌다. 두기씨는 “외로운 아이들과 함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휴식이었다”며 “내가 사랑을 나눠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이들에게서 더 크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두기씨는 지금까지 평택 서정동에 위치한 애향아동복지센터 자원봉사자로 봉사를 하고 있으며, 또한 주변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두기씨를 잘 아는 주변 이웃들은 그를 ‘날개 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기술과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인정은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피부색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외로운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주변 이웃들이 말하듯이 ‘날개 없는 천사’였다. 두기씨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이 좋아졌고 지난 2006년 스페인으로 발령 받아 이미 동생과 조카처럼 정든 아이들과 헤어져 생활했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스페인에 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려 판매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인터넷 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끈을 이어갔다. 2008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를 잊지 않고 멀리서 “두기!”라고 부르며 달려 나와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고 자신이 아이들에게 받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있는 학생 2명을 친가족처럼 함께 지내면서 학비에서부터 생활비까지 모든 걸 책임지고 보살펴 왔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기자에게 앞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며 밝게 미소 짓는 두기씨의 모습에서 피부색과 국적은 다르지만 진정한 이웃 사랑을 느꼈다. 그가 아낌없이 뿌린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는 더 큰 ‘두기’가 될 것이며, 그 사랑은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찬 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웃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우리들의 조그마한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자 역시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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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7
  • 평택소방서 119구조대 김혁 소방관
    헌혈 횟수 102회 "헌혈은 사랑이자 생명 나눔입니다" 대한적십자사 헌혈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 소방관이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지난 2011년 7월에 임용되어 평택소방서 119구조대에 근무 중인 김혁 소방관(30세)이다. 김혁 소방관이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군 생활을 하던 2003년 암으로 투병하는 동료의 어머니가 급히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동안 헌혈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 헌혈증이 없어 괴로워한 후 부터이다. 이후 김 소방관은 전역 후 한 달에 한 두 번씩 헌혈의 집을 찾아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수혈을 받을 수 있는 헌혈증서는 투병중인 가족이 있는 직장동료나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김 소방관과 함께 근무하는 평택소방서 119구조대원들에 따르면 밤새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구조를 한 후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도 퇴근길에 헌혈의집을 찾는다. 행여나 몸이 축날까 걱정되는 직장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소방관은 정해진 날이면 어김없이 헌혈의집을 찾아 헌혈을 하고 있다. 김 소방관은 "헌혈을 통해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소중한 일인지 가슴 깊이 깨닫고 있다"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어 소방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내에서도 헌혈 전도사로 활약한다. 동료들에게 우리나라의 혈액 보유량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양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으며, 헌혈을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자주 이야기 하곤 한다. 그와 함께 근무 중인 한 동료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헌혈을 한 적이 없지만 김 소방관의 생명 나눔을 접하면서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헌혈에 참여중이다. 김 소방관은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헌혈을 할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헌혈홍보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불과 싸워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피를 나눠 또 한 번 생명을 구하는 김 소방관이 우리 곁에 있다. 아직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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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2
  • 평택시 전·의경회 안광호 회장
    "지역주민들을 위한 치안 봉사활동, 너무나 행복합니다" 전직 전·의경 출신들의 모임인 ‘평택시 전·의경회(회장 안광호), 이하 전의경회’는 지난해 5월 60여명의 회원들이 뜻을 모아 창립식을 갖고 평택시민들을 위한 치안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전·의경회는 올해 3월초 시민들의 밤길 귀가 및 청소년들의 밤길 안전 귀가 및 선도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회원들의 자비를 들여 순찰차량을 구입해 평택시 전역(3개 읍, 6개 면, 13개 동)을 순찰하며 평택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기자는 지난 30일(금) 안광호(53) 회장이 근무하고 있는 세교동에 위치한 ‘쉐보레 평택남부 대리점’을 찾아 안 회장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안 회장은 평택시 현덕면에서 태어났다. 20살 되던 해에 전경에 지원, 전경77기로 입대해 1980~83년까지 인천경찰서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젊은 청춘을 함께 보낸 전우들의 끈끈한 정과 우정을 가슴속에 담고 생활해 온 안 회장은 평택시 전·의경회 창단을 위해서 회원 한사람, 한사람을 직접 만나는 등 60여명의 회원들을 발굴해 평택시 전·의경회를 출범시켰으며, 현재 30여명의 회원들이 안 회장과 함께 열정을 갖고 지역의 치안봉사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전·의경회 회장을 맡아 사랑하는 가정에 많이 소홀해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입니다. 또 직장생활과 생업에 종사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묵묵히 지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안회장은 “회원들과 함께 힘을 모아 구입한 순찰차량을 그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회원들이 내는 회비(월 1만5천원)로 차량유지 및 기타 경비로 사용하고 있다”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순찰업무는 퇴근 후 오후 9시부터 평택시 비전동을 시작으로 서정리, 송탄, 하북, 서탄, 고덕, 오성, 청북, 포승, 현덕, 안중, 팽성까지 순찰활동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전지역을 순찰하는 전·의경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회원 2명이 한조가 되어 총 85km 구간을 순찰하며, 관내 우범지역과 치안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순찰하고 있다. 안 회장은 막 태동하기 시작한 전·의경회가 이름만 있는 단체가 아니라 시민 분들의 관심을 받고 존재감 있는 단체로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며 시민과 경찰의 중간에서 시민과 경찰이 더욱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범지역에서의 학교폭력예방과 등하교길 교통정리 등을 비롯해 평택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경찰의 보조 인력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매주 평택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묵묵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를 몸으로 실천하는 분들, 그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이웃을 위해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하는 분들, 자신의 쌀독의 쌀을 비워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빈 쌀독에 쌀을 가득 채워주시는 분들, 또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 나이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분들을 만난다.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 이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며,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지역주민의 한사람으로써 이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어쩌면 좋은 차에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되어버린 지금,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비우고, 자신의 시간을 들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며, 이러한 분들이 있어 아직도 우리 지역은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앞으로도 안광호 회장과 평택시 전·의경회 회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85킬로미터의 지역을 돌며 치안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안전을 묵묵히 지켜갈 것이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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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3
  • 장애인도우미견협회 이형구 회장
    “도우미견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장애인도우미견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을 도와주고 장애인들의 사회영역을 넓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외롭고 소외된 장애인들의 인생에 동반자이며 친구로 삶의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와 한국동물매개치료협회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구(58) 회장은 팽성 두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이 회장은 개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73년 훈련사 자격증을 취득해 훈련사로써의 인생을 살아왔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이용해 사회에 봉사하고자 마음먹었던 이 회장은 1992년 장애인 도우미견에 대해 사회적으로 무관심했던 때에 장애인도우미견 훈련시설인 ‘이삭애견훈련소’를 열어 지금까지 150여 마리의 장애인 도우미견을 장애인과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에게 분양해 왔으며, 이외에도 일주일에 한번 평택노인복지센터를 찾아 심리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친근한 개를 이용하여 동물매개치료를 해오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사회에 소외되어 있는 장애인과 노인 분들에게 자신이 훈련시킨 도우미견이 도움이 될 때 삶의 보람을 느낀다”며 “도우미견과 행복하게 지낸다는 분양자들의 말 한마디에 많은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장애인도우미견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태어나서 1년은 기초적인 기본훈련을 실시한다. 이후 성장과정을 분석하여 개의 특성에 맞게 6개월에서 1년의 엄격한 전문훈련을 실시하며 훈련에 합격한 장애인도우미견을 장애인들에게 분양하고 있다. 한 마리의 장애인도우미견을 훈련해 내기위해서는 총 2년의 훈련기간과 3천~4천만원의 훈련비가 소요된다. 이렇기 때문에 1~3급 중증장애인들의 신청을 받은 후 철저한 면접을 실시해 면접에 통과한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 주고 있다. 또한 임대 후에도 제주지부, 영남지부, 호남지부, 등을 통해 전국에 퍼져있는 분양견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사후관리 또한 철저히 하고 있어 전국 각처의 장애인들에게 칭송이 자자하다. 이 회장은 장애인과 함께 있는 도우미견(노란색 한국장애인도우미견 옷을 입은 개)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개로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으므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며, 먹을 것으로 유혹한다든가 만지거나, 부르는 행위는 함께 있는 장애인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이 회장이 일하고 있는 곳은 2006년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로 등록되어 경기도와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도우미견을 보급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지금 협회에는 약 70여마리의 장애인도우미견, 매개치료견들과 훈련사 10여명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1년 평균 25마리의 장애인도우미견을 분양하고 있지만 신청자 수는 200명이 넘는다”며 “앞으로 도우미견을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분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후원, 자원봉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내에서 도우미견 신청을 하는 분들에게는 특별 우선권을 부여해서 평택에 거주하는 분들께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며 묵묵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이형구 회장에게서는 따뜻한 사람냄새가 났다. 아주 따뜻한 사람냄새가 말이다. (후원문의: 031-691-7782, 후원계좌: 국민은행:257601-04-078664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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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7
  • 파리바게트 용이점 김진태 점장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산타클로스 ‘김진태 점장’ 파리바게트 용이점을 운영하고 있는 점장 김태진(27)씨의 꾸준한 기부활동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많은 이들에게 꾸준한 기부를 통해 사랑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기자는 중년의 신사를 생각하며 김 점장을 만나기 위해 15일(목) 파리바게트 용이점을 찾았다. 뜻밖에도 김 점장은 27살의 젊은 청년이었고, 웃음이 아름다운 우리 이웃이었다. 처음 인사를 나눈 김 점장은 기자를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며 “신문에 실릴 만큼 대단한 기부를 한 적 없는 것 같은데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택시 고덕면 율포2리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점장은 마음이 따뜻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부모님들은 농사를 지어 부족한 형편 속에서도 동네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김 점장은 그러한 부모님의 따뜻한 모습들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웠다며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 점장의 착한 마음씨는 10년 전 동일공업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많은 학생들이 꺼려하던 당시 학교 봉사동아리인 R.C.Y에 들어가 재학기간인 3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2주에 한번 씩 평택 소사동에 위치한 지적장애 및 지체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동방학교를 찾아 장애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봉사활동을 했다. 김 점장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학생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우리사회에 많은 곳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존재한다는 것과 나눔과 봉사를 통해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재 어떤 봉사를 하나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점장은 처음 빵집을 운영 하면서 당일 팔지 못한 빵이 하루 평균 40~50개(8~10만원 상당) 정도 남아 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고 고민한 끝에 부모님과 같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로 마음을 먹고 당일 만든 빵을 팔지 못하면 남은 빵 모두를 다음날 아침에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까운 교회에 봉사를 시작으로 빵을 기부한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돌았고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인 꿈꾸는 숲(월, 수)과 방정환 아동센터(화·목)에 기부봉사를 하고 있으며, 지역의 기부를 받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푸드뱅크(금·토·일)에도 기부봉사를 하고 있다. 주위에 지인들은 ‘남는 빵을 조금 싸게 팔아 이윤을 더 많이 남기는 게 어떠냐’는 말을 자주 했지만 김 점장은 “어린 시절 농촌에서 먹을 것 없이 자란 관계로, 빵 또한 자주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다”며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에게 빵을 기부할 수 있고, 맛있게 먹는 모습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가장기억에 남는 일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주문한 케이크가 무려 80개정도 남아 이것을 모두 봉사단체에 나누어 기부하였는데 케이크를 보며 행복해 하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고 한다. 지금까지 설날(구정)과 추석당일을 빼고 1년 363일 쉬지 않고 기부를 하고 있는 김 점장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습관이며 크지 않은 기부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기부활동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의 빵을 전하고 있는 파리바게트 용이점 김진태 점장은 크리스마스이브에만 우리 곁에 나타나는 산타클로스가 아닌 일 년 내내 우리 곁에 나타나는 젊은 산타클로스이자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 평택사람들
    2012-03-20
  • 윤현수 에바다장애인평생학습센터 교육처장
    “장애인과의 소통과 나눔, 저에게는 큰 행복입니다”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윤현수 교육처장은 평택시 합정동 에바다장애인평생학습센터(이하 학습센터)에서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장애인들에게 사회 수업을 하면서 사회적응 능력과 자립심을 키워주며 꿈을 심어주고 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윤 사무처장의 밝은 얼굴은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난 8일(목) 오후 5시30분 평택시 합정동에 위치한 학습센터를 찾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학습센터는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었으며, 고등부 강의실에선 장애인 4명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윤 사무처장의 수업을 경청하고 있었으며, 기자도 취재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 같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학습센터는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설교육기관으로 지역사회의 후원과 경기도 교육청 지원으로 2009년 7월 진위면에 문을 열었으며, 지역의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1년 12월 현 위치인 합정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학습센터에는 총21명의 학습자가 교육을 받고 있다. 평균학력은 초등학교 이하수준으로 사회에 적응하기란 턱없이 부족한 교육 수준이다. 모두 기존의 학교에서 장애와 가난, 그리고 무관심, 잘못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교육에서 소외되어 왔던 장애인들이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한글을 익히는 문해초등부 교육에서부터 중등부교육, 고등부교육과정을 배우고 있다. 윤 교육처장은 오래전부터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해왔다. 평택에는 혼자 이동을 하지 못하는 1급~2급 중증장애인이 약 4600명 정도 있지만 평택시에는 장애인전용 특별교통수단인 콜택시가 겨우 3대(법정대수 23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날 예약하지 않으며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법정 설치율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 역시 현재 20%에도 미치지 못해 장애인들이 목마른 배움을 위해 센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방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모두 기존의 학교에서 장애로 인한 무관심, 잘못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교육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말하지만 평택시의 부족한 장애인 교통수단만 보더라도 아직 우리사회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장애인 이동권은 동정과 시혜의 차원, 복지의 차원이 아닌 기본권인 이동권인 것입니다.” 윤 사무처장은 2010년 지인의 권유로 학습센터에서 장애인 학습자들에게 사회 수업을 맡아 가르치고 사회적응 능력과 자립심을 키워주며 꿈을 심어주고 있다. ‘학습자들과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윤 처장은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장애인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배우고 있는 학습자들의 웃음과 밝은 얼굴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윤 처장은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외롭게 생활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배움에 목말라하지만 아직도 승차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며, 이러한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는 학습자를 볼 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번은 휠체어를 탄 학습자와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식당을 찾지 못해 점심을 포기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재 공공기관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많은 건물들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으며, 화장실은 더더욱 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윤 처장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데 노동현장에 접근하기도 어려우며, 장애인 고용실태 또한 너무나도 열약하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장애인을 고용하기 보다는 부담금(장애인 의무고용인원 미달 수에 따라 사업주가 부담하는 고용부담금)을 내고 만다는 식의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장애인들의 설 곳이 너무나 적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장애인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그마저도 못 받는 장애인들은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 교육처장은 현재 경기도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원금만으로는 학습센터 운영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고 말했다. 앞으로 학습센터에서는 더 많은 장애인 학습자를 위해 차량운행을 생각하고 있으며, 기본 과목뿐만 아니라 예체능과목을 개설해 예술성과 감수성을 높여주고, 영화감상이나 레저, 스포츠 등 더 많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자들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던 윤 처장과의 만남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게 평택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매번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지 않았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후원 계좌: 농협 351-0268-8630-63, 예금주: 에바다장애인야간배움터> <후원 문의: 윤현수 사무처장 010-2852-8420, 카페: http://cafe.daum.net/eptjh>
    • 시민광장
    • 평택사람들
    2012-03-13
  • 만학의 꿈 이룬 오인환(56)씨
    오인학씨, 56세에 평택大 계열수석 입학 '만학의 꿈' 이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료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죽백초등학교와 신한중학교를 어렵게 졸업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이 소아마비를 앓아 치료비를 위해 진학의 꿈은 접어야만 했습니다.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의 꿈은 눈물과 함께 접고 당시 동네에 있던 방앗간에서 막노동을 하며 병석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평택시 죽백동에 거주하는 오인환(56)씨는 올해 평택대학교 수시를 통해 계열수석(경영학과)으로 장학금(1년 간 학비 50%)을 받고 입학해 만학의 꿈을 이루었다. 그토록 열망하던 '2012학번 평택대학교 경영학과 신입생'이 된 것이다. "중학생이던 여동생이 새벽 4시에 어머니와 함께 과수원에 나가 일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울면서 일어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기만 합니다." 오 씨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장 역할을 해야 했으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5년 동안 동네 방앗간에서 일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22살이 되던 해 열심히 5년 간 일해 과수원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사업이 실패해 2억원의 빚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오 씨는 그 무렵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였다. 자포자기 하고 싶은 심정도 있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을 외면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2년만에 빚을 다 갚고 재기했으며, 2년 전까지도 과수원을 운영했다. "53살의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 했지만 처음에는 생각도 많았고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뒤늦게 저를 위해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후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오 씨의 가슴 한편에는 못다 했던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열망이 늦다면 늦은 53세의 나이에 공부를 다시 이어가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공부에 대한 갈증이 누구보다도 컸던 오 씨는 열심히 공부했으며 수원 수성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12번의 시험에서 4번이나 수석(전체 300명)을 차지하는 등 3년 내내 상위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수석을 차지하던 날, 오 씨에게는 생애 가장 기쁜 순간이었으며 주위의 지인들에게도 자신의 수석을 알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월 27일 "설레는 마음으로 평택대학교 입학식을 가졌다"는 오 씨는 취재 기자에게 학생증을 보이며 활짝 웃었다. 아름다운 웃음이었고, 또 행복해 보였다. 오 씨는 "앞으로 학교의 행사와 학우들과의 관계도 열심히 다져 갈 것이고 수시로 입학했기 때문에 부족 한 것이 많다"며 "특히 자신 없는 과목인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고 기회가 된다면 대학원 진학 등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 씨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마음과 열정, 그리고 자신감과 긍정의 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각자가 처해 있는 삶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치열함만이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있고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기자에게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중략>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나를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난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라는 '거위의 꿈'. 만학의 꿈을 이루고 또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오씨의 모습은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택사람이었고, 또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는 강인한 평택사람이자 소탈한 꿈을 가진 우리의 이웃이었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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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06
  • 미용의 달인 ‘가위 손’ 정연규 사장
    평택의 ‘가위손’ 또는 ‘신의 손’이라 불리는 정연규(38 사장)씨의 평택시 합정동 ‘한스남자머리전문점’은 매일 머리를 깎으러 찾아오는 손님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난 2005년 MBC 공감 특별한세상, 2006년 생방송 투데이에 소개될 만큼 정연규사장의 머리 자르는 솜씨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있다. 평택 토박이인 그는 올해로 16년차인 미용의 달인이다. 지난 24일(목) 지금까지 쉴 틈 없이 미용에만 전념해온 정연규 사장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에 노는 거 좋아하던 정연규 사장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살아 갈수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고등학교 1학년 방학 잠깐 부산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30년 전만해도 남자가 미용을 한다는 건 아주 특별했으며, 미용을 하시는 작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그도 미용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미용에 대한 열정하나로 집안 식구들은 물론 친구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은 당연히 정 사장의 몫이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용사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국내 헤어스타일은 너무 단조로워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헤어 선진국인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가 3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세련된 헤어스타일을 접하면서 미용에 대한 특별한 눈을 떴다. 그때의 경험으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그가 유행시킨 ‘샤기 컷’, ‘가위반삭’, ‘인디반삭’, ‘다운 펌’ 등은 관내 학생들을 중심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으며, 끊임없는 노력과 여러 가지 시도는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유행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오늘의 정 사장을 있게 만들었다. 정 사장은 찾아오는 손님이 사진을 들고 와 ‘이 사람처럼 해 주세요’, 또는 TV 속 ‘누구누구처럼 깎아주세요’라고 말하면 한번 보고 바로바로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 준다. 또 머리 깎는 속도는 모두를 놀라게 한다, 머리 깎는데 채 5분을 넘기지 않아 처음 찾은 손님들은 너무 대충 잘라주는 거 아닌가 하며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 ‘머리 예쁘게 잘 잘랐다’라는 말들을 듣고 단골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단골이 된 손님들이 상당히 많으며, 그 많은 단골손님의 머리 모양을 모두 외우고 있을 만큼 정 사장은 헤어디자이너로써의 자부심과 열정이 넘친다. “손님의 두상을 보면 손님의 머리가 바로바로 기억이 나고 어떤 머리든 한번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제 몸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 사장은 지난 2005년 MBC 공감 특별한세상, 2006년 생방송 투데이에 미용의 달인 ‘가위 손’으로 소개되어 평택시민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23살 때부터 미용실 문을 연 정 사장은 “처음 미용실 문을 열었을 때 단골손님이 이제는 애기아빠가 되었다”며 그동안 ‘한스남자머리전문점’을 찾은 손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정 사장은 지금까지 일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평택고등학교 학생으로 꼭 ‘한스’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며 밤 11시 30분 늦은 밤에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찾아와 자다 말고 미용실에 나와서 잘라준 경우와 다른 미용실에서 머리를 반쯤 자르다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반쯤 잘린 머리 그대로 찾아와 다시 잘라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에게 ‘지난번처럼 깎아 드릴까요?’라고 말하면 ‘1년 전에 왔었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하며 깜짝 놀라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간혹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머리를 다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아이는 친구들 같이 머리를 하고 싶어 하는데 돈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면 아이 입장이 난처하지 않게 친구들 몰래 ‘이따가 다시 올래? 아저씨가 머리 예쁘게 깎아 줄게’하고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정 사장은 “제 인생에서 머리를 깎을 때가 가장 행복하며 깎은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손님의 미소를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손님이 한명도 없을 때까지 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서울, 부산, 수원 등 여러 지역에서 찾아오시는 손님이 많다”며 “시민들과 먼 곳에서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후계자 육성을 많이 해 체인사업이나 평택에서 가장 큰 매장을 운영해 보고 싶다”고 희망을 말했다. 취재를 마친 기자 역시 “나도 한번 단골이 되어 ‘한스머리’를 해볼까?”하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우리 주변에는 소중한 땀으로 희망을 일궈가는 이웃들이 있고, 또 가슴이 따뜻한 이웃들이 있었다. (미용 문의:031-658-0531, 010-3617-0602)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 평택사람들
    2012-02-28
  • '따사모'를 아세요?
    "평택시 전체에 사랑이 넘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2월 17일(금) 오전 10시 기자는 송탄 여성회관 4층 요리실을 찾았다. 요리실에는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회장 고문자, 이하 따사모) 회원 19명의 따뜻한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다. 2007년 여성회관에서 음식을 배우던 주부들로 구성된 따사모는 지역사회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독거어르신들과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이 부족한 결손가정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결성된, 말 그대로 가슴이 따뜻한 평택 사람들이다. 33명의 따사모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셋째주 금요일마다 새벽 일찍 장을 본다. 그 이유는 기초 수급을 받지 못하는 독거어르신과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정성껏 만든 반찬을 전하기 위해서다. 특히 사춘기인 관계로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학교를 통해 반찬과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아침 일찍 기자를 힘들게 했던 겨울 추위는 따사모 회원들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는 훈훈함을 바라보면서 영하의 추위를 잊을 수가 있었다. 이날 따사모 회원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탕수육, 육개장, 파래무침, 무고등어조림은 예쁘게 포장되어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우리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가 아닌, 남에게 보이고자 함이 아닌,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셋째주 금요일마다 봉사를 준비하는 따사모 회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장을 봐와 손수 여성회관 4층 요리실에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만들어진 음식을 직접 예쁘게 포장해 집집마다 다니며 수급을 받지 못하시는 독거어르신(9명)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으며 혹시 사춘기인 결손가장 학생(7명)들에게는 아이들이 오해할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학교를 통해 반찬과 작지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따사모회원들이 봉사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렵게 살아가시는 어르신 대부분이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외출을 꺼리고 혼자 외롭게 생활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봉사를 나가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적대감을 갖고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많으며 오랜 시간 방치된 외로움으로 인해 회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고, 또 마음에 있는 괴로움과 슬픔을 토로하시곤 한다. 회원 모두는 그러한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회원들은 외로움으로 대회를 원하는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봉사현장을 떠날 때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고문자 회장은 "예전에 비해 많은 봉사단체가 생기고 수급여건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우리주변의 많은 독거어르신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며 "수급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앞으로도 꾸준한 봉사활동과 부족하지만 더 많은 봉사를 하기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비를 들이고, 시간을 내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눈다는 것. 또 어려운 이웃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수를 보낸다. 극심한 불경기에 주변을 돌아보며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정성을 모아 힘과 용기를 주는 따사모야말로 아름답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우리 지역사회의 따뜻한 이웃이자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빛과 소금이었다.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분들에게는 언제나 따사모의 문이 열려있다. 봉사활동에 참가하지 않아도 한 달에 1만원씩을 후원할 수 있다. 따사모 가입을 원하는 시민이나 후원을 원하는 시민은 고문자 회장에게 문의(☎ 010-4633-6162)하면 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기자에게 한 회원은 "평택시 전체에 사랑과 나눔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좋은 차, 좋은 집에 사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이 아닌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행복 안에서 따뜻한 웃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기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 시민광장
    • 평택사람들
    2012-02-21
  •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겨울 추위에 전기장판으로 혹한과 싸우는 김 할아버지 지난 9일(목) 평택시 도일동 김일만(86)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싸늘한 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혹한을 견뎌내는 할아버지는 귀와 눈이 어둡고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는 일조차 힘이 든다. 송탄 지역에서 가장 어렵게 살아가시는 김일만 할아버지는 1927년 생으로 올해 나이 86세의 고령 노인이다. 하지만 올 명절에도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이 외로이 추운 겨울을 홀로 나고 계시는 김 할아버지에게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할아버지의 방 이곳저곳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으며 빈 밥통과 많은 설거지거리 등 복잡한 집안상항이 할아버지의 어려운 일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또 비싼 기름 값 때문에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겨울을 나고 있는 관계로 김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은 55년여 만에 찾아온 추운 겨운 날씨로 인해 방안에는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춥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더니 ‘전기장판 틀어 놓으면 따뜻해 여기 앉어’하고 기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문득 장판을 보니 장판 위에는 언제 빨았는지 모를 얇은 이불이 깔려 있었다. 이 추운 겨울 날씨에 김 할아버지를 추위로부터 지키는 유일한 도구였다. 마음이 무거웠다. 장판 바로 앞 비닐봉지에는 수많은 약봉지가 있었고 불편해 보이셨던 거동 때문에 편찮으신 곳을 묻자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은데 항상 파스 10장를 붙이고 계신 왼쪽 골반과 점점 안 좋아지는 귀와 눈이라고 하셨다. ‘병원은 다니세요?’ 묻자 돈 때문에 한달에 1번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오는 게 전부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밥은 잘 드세요?’ 하고 기자가 묻자 할아버지는 밥은 안먹고, 라면 먹던지 만두를 드신다고 하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라면상자와 만두 찜기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한봉지의 라면을 세 번 나눠 끓여 하루를 때우거나 만두 2개로 한끼를 해결하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생활비로 사용하는 돈은 기초노령연금 9만4천원과 기초생활보호대상으로 35만원, 총 45만원으로 한달을 생활하신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 사는 할아버지께 도움을 주는 곳은 평택노인복지센터 독거노인 생활안전관리 돌보미가 주 1회방문하며 2~3일마다 전화로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또 보건소에서 월 2회 방문하며, 주위 가재리교회에서 밑반찬을 만들어 할아버지께 전달하고, 푸드뱅크에서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할아버지 가장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할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그저 지원되는 돈 조금 더 주면 좋지’ 라고 할아버지의 힘든 현실을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취재를 마치고 할아버지 댁을 나선 기자를 대문 앞까지 배웅하고 기자의 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서 손을 흔드셨다. 김 할아버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시는 독거 어르신들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가슴이 모아졌으면 한다. 젊은이도 버티기 힘든 강추위에 전기장판 하나에만 의지한 채 라면 하나로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김 할아버지에게는 이웃만이, 사람만이 희망일 것이다. (양말, 속옷, 생필품 등 물품 후원을 하고 싶은 독자, 시민 여러분들은 ☎ 031-663-0580으로 연락드리면 된다. ▶후원계좌: 농협 205018-52- 214946 예금주 김일만) 원승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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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사람들
    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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