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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교육/문화/웰빙 기사

  • 북부놀이터, 체험하러 오세요!
    북부청소년문화의집, 매월 넷째 주 놀이터 운영 평택시북부청소년문화의집에서는 다가오는 31일(토) 청소년 15명을 대상으로 토요특별프로그램 북부놀이터를 운영한다. 31일 북부청소년문화의집을 찾으면 설날에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윷놀이 체험과 정초에 많이 노는 어린이 놀이기구인 제기를 만들어보는 체험부스를 진행한다. 오는 2월에는 북부놀이터 게임대전을 개최하여 다트와 도미노, 닌텐도 Will 게임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문화의집 관계자는 "북부놀이터는 평택시북부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매월 넷째 주(상황에 따라 변경가능)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며, 사전 신청 및 당일 선착순모집으로 진행 된다"며 "청소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타 궁금한 사항은 북부청소년문화의집(☎ 031-8024-7418)으로 문의하면 자세히 안내 받을 수 있다. 김지영 대학생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시가 있는 풍경] 겨울비처럼 내리고 싶어라
    김태련 차디찬 겨울 안에서겨울비가 하염없이 눈물처럼 내리고 있네아프디 아픈 내리는 빗물을 벗 삼아하늘을 올려다보면겨우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서러움이 물들어 오네날개가 없어도 그저 날 수만 있다면저 아프디 아픈 겨울비 속으로몸을 맡겨 한참을 날아 오르겠네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아프도록 달구어진내 육신의 피로함을 달래며겨울비처럼 그렇게 차갑게 내리고 싶어라 ■ 작가 프로필 열심히 공부해 시인이 되고 싶다는 시민 김태련(69) 씨는 이충동 현대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지난 2009년부터 틈틈이 시를 써왔으며, 문단에 등단한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사랑하고 시를 아끼는 우리의 이웃이다. 현재 수원시 인계동 생명의 전화 상담사로 무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자유학기제, 혁신교육의 날개를 달다!
    평택교육청, 청소년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구축에 앞장 평택교육지원청(교육장 김기연, 이하 교육청)은 자유학기제 선도교육지원청 운영 1년을 뒤돌아보며, “평택 자유학기제 운영을 통해 평택 혁신교육의 날개를 달게 했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2014년 자유학기제 선도교육지원청으로 지정되어 자유학기제 지원체제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운영, 교사의 전문성 함양, 진로탐색 프로그램 제공, 지역인프라 구축과 우수사례 공유를 통하여 자유학기제를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1회 평택 청소년진로축제, 제1회 평택 특수 진로융합 축제 등 지역공동체와 연계하여 추진함으로써 지역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체험터 발굴 및 단위학교와 지역사회 진로직업 체험터와 허브 역할을 담당할 전담기구 구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평택시내 청소년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학교로 “찾아가는 직업멘토 지원 프로그램”, 평택교육지원청 주관 “나의 꿈 발표대회” 운영, 특성화고등학교·대학 학과프로그램, 지역기관 진로직업체험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활동적인 체험활동이 될 수 있도록 단위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평택교육지원청 교수학습지원과장 김동민 장학관은 "평택교육지원청과 관내 중학교의 노력으로 학생들의 표현능력, 집단적 문제해결력, 창의력 신장 등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이 신장되었다"고 말했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조찬다사리포럼 “가치를 디자인하라”
    2월 12일, 원대연 한국패션협회 회장 초청 강연 제98회 조찬다사리포럼은 2015년 2월 12일(목) 오전 7시 굿모닝병원 해오름관에서 원대연(사진) 한국패션협회 회장을 초청, “가치를 디자인하라”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는 시간으로 마련한다. 원대연 회장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삼성물산 대표이사 부사장, 제일모직 사장, 국제백신연구소 명예대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산 의류 대표브랜드“빈폴”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패션협회 회장, 원주원씨 시중공계대종회장 등으로 사회봉사하고 있다. 의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디자인경영대상”, “산업자원부 철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가치를 디자인하라〉등이 있다. 다사리포럼은 시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1만원이다. 아침식사도 제공한다. (문의: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 ☎ 031-665-3365) 은종민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도교육청, 건전한 졸업식 문화 만든다
    졸업식 전후 및 당일 학교 주변 생활지도 강화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은 오는 2월 본격적인 졸업시즌을 맞아 추억·감사·격려가 함께 하는 학생중심의 ‘건전한 졸업식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소통·공감하는 학생중심의 축제형 졸업식 ▶부모와 스승께 감사하는 졸업식 ▶교복 물려주기 및 자선바자회가 함께 하는 나눔의 졸업식 등 학생 중심의 졸업식 문화를 만들 계획이다. 또한 졸업식 전·후 불미스러운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 및 각 학교는 취약지역 특별순찰 계획을 수립하고 학생들에게 강압적 뒤풀이도 범죄임을 교육하는 한편 지역별 연계 공조 지도를 진행한다. 특히 폭력적인 졸업식의 사전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졸업식 전후 및 당일 학교 주변 생활지도를 강화하도록 당부하였다. 아울러 도 교육청은 경기지방경찰청과 긴밀히 협조하여 졸업식 전후 및 당일 취약지역 순찰, 졸업 당일 배회학생 귀가 지도, 유해업소에 대한 학생 출입 단속지도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도교육청 학교인권지원과 관계자는 “금년 졸업식은 참여와 소통, 자율과 책임이 있는 학생중심의 축제형 졸업식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일부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큰 바, 교복 찢기 및 알몸뒤풀이 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과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내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은 다음달 4~13일 열린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설 맞이, 지산초록도서관으로 오세요!
    그림책 전시회 및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풍성' 평택시립지산초록도서관(관장 박천수)은 설날을 맞이하여 전시회 및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음달 10일부터 27일까지 도서관 1층 유아자료실에서 <그림책으로 살펴보는 명절 이야기>를 주제로 우리나라 명절 관련 그림책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 밖에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종이접기를 응용한 <세뱃돈 봉투 만들기, 2월 13일>, 실뜨기, 딱지치기 등 전래 놀이 체험 <한바탕 놀아보자! 전래놀이, 2월 14일>, 손 글씨와 그림을 그려 넣은 <소원 컵 만들기, 2월 15일> 등 3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며 6세 이상 초등학생까지 참여 가능하다. 강좌 접수는 전화, 방문 접수를 받으며 새해맞이 프로그램에 관한 기타 자세한 사항은 평택시립도서관 홈페이지(www.ptlib.net) 공지사항에서 확인하거나, 지산초록도서관(☎ 8024-7451)로 문의하면 된다. 이일호 대학생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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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28
  • [책과의 소통] 여리고 조금은 서툰 당신에게
    우사미 유리코 지음 / 최윤영 옮김 / 큰나무 / 2013.10.07 출간 불안을 행복으로 바꾸는 26가지 마음 레시피 『여리고 조금은 서툰 당신에게』. '있는 그대로 살아가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자!'를 실천하는 것만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불안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26가지의 레시피를 소개한 책이다. 스스로 레시피를 직접 실천하고, 서툰 인간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 교육/문화/웰빙
    2015-01-28
  • [기획] 평택농악, 세계의 신명이 되다!
    우수성과 정통성 인정받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지정 우리나라 농악 가운데 가장 역동성과 연희성 뛰어난 농악으로 평가 “평택농악, 드디어 세계의 신명이 되다” 지난해 말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농악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했다. 우리나라 농악 가운데 가장 역동성과 연희성이 뛰어난 농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승려들이 꽹과리 치면서 염불하고 공양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전문 연희패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해오던 평택농악은 인근의 안성·화성 등지와 함께 농악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중 지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받으면서 웃다리가락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평택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평택농악의 발생과 문화재 지정 ▶파일난장굿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최은창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이돌천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김용래 ▶웃다리 평택농악의 특징 ▶대한민국 6대농악 평택농악의 발자취 ▶평택농악의 형태 ▶평택농악의 창조적 계승 ▶평택농악보존회 김용래 회장 인터뷰를 상세하게 보도한다. <편집자 말> ■ 평택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처음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이번에‘농악’이 등재되면서 모두 17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참고로 유네스코(UNESCO)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약자이며, 교육·과학·문화의 보급 및 교류를 통하여 국가 간의 협력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합전문기구이며 인류가 보존 보호해야할 문화, 자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2011년 기준 195개국이 종회원국이며, 8개 준회원국이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에 가입했고, 1987년 제24회 총회에서 집행위원국에 선출된 바 있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는 2012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매우 제한적으로 등재시키고 있다. 2010년 12월 3일 ‘무형문화재분과 제6차 회의’에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 대상 종목으로 ‘풍물놀이’, 나전칠장, 줄타기 놀이 등을 선정했다. 이후 2011년 1월 14일 ‘무형문화재분과 제1차 회의’에서 ‘풍물놀이’를 2012년도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 대상 종목으로 결정하고 3월 신청서를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중국이 ‘아리랑’과 ‘김장’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우리 정부는 대표목록 등재 우선순위를 조정해 결국 ‘풍물놀이’가 밀려나게 된다. 이후 ‘아리랑’과 ‘김장문화’가 차례로 등재되고 2013년 3월 8일 ‘무형문화재분과 제2차 회의’에서 ‘풍물놀이’를 2014년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단독등재’ 심사종목으로 결정함에 따라 당초 2012년 등재키로 한 ‘풍물놀이’는 두해를 넘겨 등재하게 됐다. ‘농악’이라는 명칭 지정에 있어서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구결과 농악은 20세기 이전부터 사용됐고 1966년 처음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농악’으로 명칭이 지정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별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풍물’ ‘풍장’ ‘매구’ 등의 용어를 모두 아우르는 용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처음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서에 명기된 종목 명칭인 ‘풍물놀이’는 올해 2월 최종적으로 ‘농악’으로 변경해 유네스코에 수정등재신청서가 제출됐다. 유네스코 사무국은 매년 ‘무형유산위원회’ 개최 한 달 전 ‘심사보조기구’에서 권고한 사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데 ‘농악’에 대해 만장일치로 ‘등재권고’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유네스코 사무국은 우리나라의 등재신청서를 모범사례로 평가해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렸던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최종 결정되었다. 웃다리 농악의 대표성을 띤 평택농악은 우리나라 농악 가운데 가장 역동성과 연희성이 뛰어난 농악으로 국내무대는 물론 세계무대에서 정통성 있는 농악으로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인에게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로 평택시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 평택농악의 발생과 문화재 지정 평택농악의 발상지인 평택시 팽성읍 평궁리는 예부터 지신밟기, 두레굿 등 농악이 발달했다. 이러한 “평택농악”이 전국무대에 선을 보인 것은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시절 대통령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전국농악경연대회였다. 평택농악의 초대 인간문화재였던 최은창 명인은 당시 평택군의 요청으로 농악패를 구성해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광화문인 중앙청 앞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하여 1958년과 1959년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과 걸립농악을 가장 잘 계승한 웃다리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두레농악에서 하던 지신밟기, 두레굿과 더불어 난장굿, 절걸립, 촌걸립 등 걸립패에서 하던 전문연희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1985년 12월 1일 그 우수성과 정통성을 인정받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파일난장굿’이란?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날 이외에 특별히 열리는 장을 난장이라고 하는데, 난장굿은 이러한 난장에서 벌어지는 놀이판을 말한다. 평택지역에서는 주로 명절을 맞아 난장을 열었는데 “파일난장”, “백중난장” 등이 있었다. 난장이 열릴 때 상인들과 사람들을 보다 많이 끌어 모으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전문적인 기·예능을 가진 농악단체를 초청하여 장터 한가운데서 포장을 치고 공연을 하게 했다. 평택농악은 “파일난장”, “백중난장” 등에서 이러한 난장굿을 주관하고 연희하였다. 난장굿 중에서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에 열리는 난장에서 연희를 하는 것을 “파일난장굿”이라고 하였으며, 백중날(명절의 하나로 음력 7월 15일)에 열리는 난장에서 연희를 하는 것을 “백중난장굿”이라고 하였다. ■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최은창 지금의 평택농악이 있기까지 큰 업적인 남긴 최은창 선생은 1914년 4월 18일 평택군 팽성면 원정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의 태어나 출생 직후 평택농악의 발상지인 평궁리로 이주한 후 마을 두레패 상쇠에게서 꽹과리를 배웠고, 16세 때에는 두레패의 상쇠(농악대의 꽹과리 제1 주자)를 쳤다. 성인이 되면서 마을단위를 벗어나 전문연희패에서 활동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직접 절걸립 행중을 꾸려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최고의 상쇠로, 비나리꾼으로, 장고잽이로 명성을 얻었다. 전문연희패에 몸담아 전국적인 활동을 하는 중에도 평궁리에서 평택농악을 결성하여 현재 연희하는 평택농악의 원형을 완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5년 평택농악이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평택농악 상쇠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이후 평택농악을 알리고 후진양성에 힘쓰다 지난 2002년 작고하였다. ■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이돌천 최은창 선생과 함께 평택농악을 이끌어 온 이돌천 선생은 1919년 5월 26일 천안시 쌍용동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무동으로 농악을 시작하였으며, 16세 때 마을 상쇠에게서 쇠를 배워 쳤고, 17세 때에는 충북 출신의 박치삼에게 법고를 배웠다. 18세 때에는 남운룡(南雲龍) 밑에서 법고를 배워 남운룡농악단의 법고수로 활동 했다. 1980년 평택농악을 공식 결성할 때 합류하여 1985년 법고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당대 최고의 법고잽이로 명성을 얻었다. 평택농악에서 활동하면서 천안 흥타령 농악단을 결성하여 천안농악의 활성화에도 노력을 하였다. 평택농악을 알리고 후진양성에 힘쓰다 지난 1994년에 작고했다. ■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김용래 평택농악의 현 인간문화재인 김용래 선생은 1939년 4월 19일 충남 천안시 쌍용동에서 태어나 13세 때 난장패에 사미로 들어가 처음으로 농악을 시작했다. 16세부터 대전 송순갑 행중과 안성 남운룡 행중에서 활동하다 18세 때 상모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스승이 바로 평택농악의 명인 이돌천 선생이다. 이후 최고의 법고잽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무동놀이에도 뛰어나 밑동과 앞뒤곤두 등을 도맡아 하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가졌다. 1987년 평택농악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 평택농악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현재까지 평택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현재 평택농악에서 연희하고 있는 무동놀이의 체계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사라진 무동놀이 기술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호에 '평택농악, 세계의 신명이 되다!' 두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기행 - 파리한 파리 시내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파리로 향하는 길. 프랑스는 쓸모 있는 평지가 대부분이다.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노라니 자연스레 우리나라 산하가 떠올랐다. 난개발에 몸살을 앓는 한반도. 도처에 몰지각한 군상이 늘어가는 한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 하지만 어느 선진국인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차지한 공간이 있다던가! 하나같이 비싼 물가. 잠시 담소를 나누며 2.5유로짜리 홍차를 대접받고 나오니 인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가가 태반이어서 그러니 조금만 참으란다. 차안에서 오징어, 건과류, 아이스크림의 섭취를 엄금하는 건 서구의 보편적인 관행. 부스러기에 개미가 들끓는데다가 청소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예 법으로 규제한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적당주의가 판을 치는 마당에 맘에 쏙 드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게 선진국의 앞선 제도요 의식구조다. 간간이 보이다 사라지는 풍차들. 마치 거인의 어설픈 몸짓인 양 느릿느릿 돌아간다. 가느다란 미루나무의 행렬. 낙엽 진 활엽수에는 유난히 겨우살이가 많았다. 국산만큼 영양가가 없어 내버려둔다는 것. 그렇듯 한적한 장면이 이어지다가 빌딩이 나타나고 기다란 지하도를 벗어나니 파리 시가지였다. 벽면 낙서와는 대조적으로 낭만이 서린 센(Seine)강. 여전했다. 우뚝 선 에펠탑까지. 현지 가이드는 애써 프랑스혁명 100주년(1889)을 맞아 조립한 320.75m의 철탑일 뿐이라고 토씨를 달았다. 그 문에 앞서 다가간 <개선문>. 그들은 통상 ‘에투알 개선문’이라고 부른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기공됐지만 그의 사후인 1836년에야 준공된 세계 최대(그러고 보니 북한이 평양에 더 큰 문을 세웠다는 소식이 있었음)의 개선문이다. 높이는 50m. 그러니까 샤를 드골 광장에 위치해 있는데 12개의 거리가 빛나는 성처럼 부채꼴 모양으로 뻗어나가 붙여진 이름이다. ‘승리의 아치’(Arc de triomphe)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에서 딴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을 본뜬 신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작.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작이었으되 그가 이 문을 지나간 것은 1840년 파리로 이장할 때였다. 민족을 위해 숨진 무명용사의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서 아내와 기념사진을 찍고 한물간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매년 1월말까지는 바겐세일이라지만 경기는 예전만 어림없단다. 우중충한 프랑스를 비치는 흐릿한 햇살처럼. 인솔자는 연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느라 지하철 입구를 빠져나와 마로니에 산책길을 걷노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 부부를 노리고 덤벼든 치들이 있었다. 나의 단호한 대처에 놀라 순순히 물러갔으되 각별히 조심할 대목. 갈수록 범죄 형태가 대담해져 일단 당하고 나면 속수무책인 경우가 다반사란다. 오후 5시면 일몰이 거의 끝나가는 겨울철. 그렇지만 해질녘에도 영상 10도를 웃돌았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광경을 두고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이유였다. 한식으로 때 이른 저녁을 들고 찾은 <에펠탑>. 사전 검색이 철저했다.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다보니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노출된 참이다. 세찬 바람에 빗줄기까지 굵어져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한 기념물이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애물단지에 불과했는데 오늘날 파리의 랜드 마크가 될 줄이야! 내막을 들춰보면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 치열한 논란 끝에 1910년 철거를 전제로 버티던 220만 개의 나사(1만 톤이 넘는 무게)는 어느새 괴물이 아닌 명물로 거듭난 터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을 탓해야할지, 구스타프 에펠의 혜안을 추어야할지……. 다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한 아줌마의 일갈이 가슴에 꽂혔다. “아따, 멀리서 볼 때는 그럴싸하더니만 워매 가까이 와서 봉께 지저분하구마니라.” 어스름불빛에 조망하는 파리. 더없이 평온했다. 요리조리 사방을 둘러보니 번듯한 도시구획. 오래 전 미로형 가로 형태를 방사형으로 바꿨다더니 과연 세기에 남을 만한 탈바꿈이로다. 탑 아래 자리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를 묻은 앵발리드가 있고, 근처에 로댕미술관을 지었다. 지척에 샤요박물관을 두고 서두른 데는 <센 강 유람선> 선착장. 차가운 겨울 밤공기이거늘 기운은 따사로웠다. 어딜 보나 은은한 야경. 중국처럼 짐짓 건물마다 전깃줄을 둘러쳐 어색한 조명을 획책하지 않았거니와 그윽한 빛들을 은근히 흩어내어 시선을 사로잡은 연출이 돋보인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해 선물했다는 자유의 여신상은 여기도 있었다. 맨해튼에서는 그녀를 우습게도 여신이 아닌 여인이라 이르고, 심하게는 ‘골빈 여인상’이라고 속칭했는데 일리 있는 패러디. 나름 재단하면 파리는 신구(新舊)를 아우르며 오묘한 조화미를 구축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역만리 밤낮을 강행군한 끝에 당도한 숙소. Balladins Hotel은 아담했지만 깨끗했다.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리자마자 단잠에 빠져들었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7호)에는 서유럽 기행 세번째 이야기, '달리 보인 루브르'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평택의 문화재] 홍학사비각(洪學士碑閣)
    - 문화재명: 홍학사비각 - 시대: 조선시대- 지정번호: 경기도문화재자료 제5호- 지정일자: 1983년 9월 19일- 소재지: 팽성읍 본정1길 8-16 (팽성읍 본정리 322) - 소유자: 이종인- 관리자: 이종인■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 홍익한 선생의 비를 보호하는 건물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崔鳴吉)이 주장한 화의론(和議論)에 극구 반대하다 윤집(尹集) · 오달제(吳達濟)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화포 홍익한(花浦 洪翼漢)선생의 비를 보호하는 건물이다. 1964년 본정리의 삼거리 부근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1982년에 비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면서 다시 건립하였다. 이 비각은 포의각(褒義閣)이라고도 하는데 본정리 마을 뒤쪽의 꽃산에 있는 선생의 묘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익공계(翼工係) 맞배지붕집(기둥 위에 새날개처럼 뻗어 나온 장식과 옆면에서 보았을 때 ‘人’ 모양의 지붕 집)인데, 사방에는 벽체 없이 홍살만 시설되어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낮은 장대석(長臺石)기단에 놓은 높은 사각 초석(楚石) 위에 민흘림기둥이 세워져 이익공이 일정형태로 만들어졌고 삼량(三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익공과 첨차(기둥 머리나 소로에 얹혀 두 개가 직각으로 교차하여 십자맞춤으로 짜여져 올라가 공포를 형성하는 부재), 화반 등의 세부는 18세기의 형식을 모방한 것이다. 내부에는 선생의 신도비(神道碑)와 묘비, 아들 수원(수元)의 묘표와 홍익한의 증손자 대성(大成)의 묘표가 있으며 상부에는 1964년의 비각 창건 사실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비각은 최근에 건립된 것으로 건축사적 측면에서 크게 의미 있는 건물은 아니다. ■ 홍익한의 생애(洪翼漢:1586~1637) 홍익한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이다. 홍익한은 진사 이성의 아들로 선조19년(1586)에 현재 팽성읍 함정리에서 출생하여 서울 마포에서 자랐다고 한다. 월사 이정구의 문인이었으며 광해군 7년(1615)에 생원이 되고, 인조 2년(1624)에 공주행재정시문과(公州行在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후 사서(司書)를 거쳐 인조13년(1635)에는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시하는 모욕적 조건을 내세워 사신을 보내왔을 때 사신을 죽임으로써 모욕을 씻자고 주장하였다. 1636년 청의 침입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때 조선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와 백성의 무고한 피만 흘리게 되니 화친하자는 화의론으로 의견이 갈렸었다. 하지만 청군에게 남한산성을 겹겹이 포위당하고 성내에 식량이 떨어지자 결국 강화를 청하기로 하였다. 이 때 청태종은 인조가 친히 나와 항복할 것과 함께 척화론의 주모자를 보내라 하니 인조는 피치 못하여 적진의 삼전도(三田渡)에 나아가 군신의 예를 다한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성립시켰다. 청태종은 강화도에서 잡은 포로를 송환한 다음 그들의 진중에 억류하였던 세자, 세자빈과 봉림대군을 인질로 하고 척화론의 주모자 오달제, 윤집, 홍익한을 잡아 심양으로 돌아갔다. 이들을 훗날 삼학사(三學士)라 칭하였다. 잡혀간 홍학사는 청의 태종 앞에 끌려가 준엄한 문초를 받으며 청의 신하가 되도록 백방으로 설득을 당했으나 그는 “온 세상의 사람들이 형제는 될 수 있으나 천하에 아버지가 둘 있는 자식은 없다. 조선의 신하로서 내가 너희 나라를 황제국으로 칭한다면 아버지가 둘 있는 자식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끝내 버티고 싸우고자 함이 마땅히 신하된 직분일 뿐이다. 다만 이제 신하된 몸으로 위로 임금과 어버이가 계시는데 모두 보호하여 안정하게 하지 못함에 죽도록 원통할 뿐, 더욱이 왕세자와 대군은 포로가 되었고 늙은 어머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니 이 어찌 대장부의 여한이 없을까보냐. 마땅히 충효와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는 죽어야 옳을 뿐 용서받을 수 없는 것, 비록 만 번 베고 무찌름을 당할지라도 진실로 마음에 달게 여기겠다. 그리고 피를 한번 북에 바르고 혼은 하늘을 날아가서 고국에 돌아가 노닌다면 가슴 시원하겠다. 이밖에는 다시 할 말이 없다. 오직 빨리 죽기만 원한다.” 하여 비장한 최후의 유언을 남기고 이로부터 닷새 후에 갖은 악형과 고문을 당해 마침내 순절하니 나라에서는 그의 충절을 찬양하여 영의정에 추증하고 충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홍학사의 시신은 구하지 못해 현재의 팽성읍 본정리에서 혼을 불러 초혼장(招魂葬)을 지내고 그의 충성과 공적을 기리고자 신도비를 세웠다. 그리하여 홍학사 묘에는 심양에서 입고 있던 그의 의관만이 돌아와 부인 양천 허씨와 합장되어있다. 전설에 의하면 모시고 오던 홍학사의 복장이 압록강을 건널 때까지는 홍학사를 부르면 대답을 하였으나 압록강을 건너와서는 대답이 끊어져 이때 홍학사가 참사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홍학사 비각은 1726년에 건립한 것이고, 그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는데 글씨가 마멸되어 내용을 알기는 어렵고 더구나 큰 비각의 비문 23행중 왼쪽 모서리가 깨어져서 1행은 소멸되어 있다. 현재 비문 2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모두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큰 비는 높이가 230cm, 폭이 96cm이며 작은 비는 높이가 125cm, 폭이 54cm인데 모두 개석이 앉아 있다. 원래 유택은 이곳에서 좀 떨어진 함정리에 있었으나 세계2차대전시 일제가 군사시설을 하게 되어 묘의 이장이 불가피하게 되니 1942년 12월경 현재 비각에서 0.8km 떨어진 이곳 본정리 꽃산에다 면내 대동청년단의 이종린, 박세황 주선으로 이장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묘와 함께 옮겨 왔어야 할 묘비 등의 비석들은 그대로 버려두어 흙과 풀 속에 덮어져 있던 것을 1964년 4월 7일 현재의 비각을 지어 안치케 된 것이다. 그 후 1982년 12월에 당시의 군수가 예산을 주어 비각 전부를 꽃산의 홍학사묘의 옆에 옮겨 놓았고 그 공사는 김의용이 시행하였다. 세간에서는 홍학사의 집안을 오형문(五刑門)집이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화포가 심양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집안에 전해지자 부인, 아들, 딸, 며느리가 모두 자결을 했기 때문이라고 홍학사의 문중 내용을 아는 이곳 촌로들이 전하고 있다. 또한 청까지도 3학사의 기개와 지조를 높이 보고 삼한산두(三韓三斗)라는 기념비를 심양에 세워놨다고 한다. 이 홍학사 비각 외에 광주의 현절사, 강화의 충열사, 홍산의 창열서원, 영천의 장엄서원, 부안의 도동서원, 고령의 운천서원, 평양의 서산서원 등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평택 유도회(儒道會)에서 매년 3월 31일에 제향을 드리고 있다. ※ 자료제공: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정리 서태호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도교육청 "학생안전확보에 274억 원 투자"
    2,351개교에 학생보호인력인 배움터지킴이 배치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은 올해 학생안전확보 등에 274억 원을 투자한다고 14일 밝혔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부터 학생안전 확보를 위한 시설 및 시스템과 학교 안전재난대응 체계를 본격 구축한다. 도교육청은 이를 위해 올해 어려운 재정 속에서도 학생안전관련 사업인 CCTV 확충 등 안전한 학교운영에 126억4,800만원을 투입한다. 2,351개교에 학생보호인력인 배움터지킴이를 배치하고, 15개소에 초등학교 CCTV통합관제센터를 운영하며, 200만 화소 이상 고화질 CCTV도 200개교에 보급한다. 아울러 학교재난대응시스템 구축을 위한 학교안전생활화 지원 및 학교재난대비 교육과정 운영에도 24억7,600만원을 투자한다. 각급학교에서 체험식 안전교육훈련을 실시해 재난에 대한 위기대응능력을 키우고, 학교내 안전교육 담당교원을 대상으로 재난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이론 및 체험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교육시설 안전개선과 시설관리안전교육에도 42억600만원을 투입한다. 학교 위험 건축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점검과 교육시설 안전관리 컨설팅, 학교시설 안전콜센터 운영 등을 통해 재난 및 안전사고 발생 위험요소를 사전 제거함으로써 쾌적하고 편안한 교육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안전 확보를 위한 안전지원국을 2부교육감 산하에 신설했다"며 "올해부터는 학교안전 확보를 위한 시설 및 시스템 구축 등에 본격적인 예산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시가 있는 풍경] 환갑이 지나서야
    박정옥 푸른 잎새 먼저 뭉텅뭉텅 떨궈 내었다는 걸환갑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구부러지고 비틀린 결핍의 통증들이몸 구석마다 매달려 있는, 어떤 이는 환갑이 이제 갓 지난 환갑이라 했고어떤 이는 칠순 줄에선 회춘이라 했다.그런 날이면 거짓말도 참으로 기분 좋은 날아직 인생의 홈런 날릴 기회는 오늘 아닐까땅, 뛰어볼까 환갑이 지나서야 다시 인생 시작임을 알았다가슴에 담았던 고통 주머니 모두 내려놓고나의 왼손에 쥔 꿈 하나 오른손으로 옮겨지는 사이높고 푸른 가을 하늘엔 솜구름들이 모여들었고나는 힘주어 오랜 희망 하나를 던진다 ■ 작가 프로필 ▶박정옥(67세) ▶2010년 전국 어르신 백일장 대회 입선 ▶2012년 전국 어르신 백일장 대회 최우수상 수상 ▶현 평택시 남부노인복지관 실버기자 활동중 ▶현 평택자치신문 시민기자 활동중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시립도서관, 15개 지역 직접 찾아갑니다
    화~금요일 오전10~12시, 오후 2~4시까지 순회 운영 평택시립도서관(관장 박천수)은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단장한 신규 차량으로 이동도서관을 운영할 예정이다. 평택시 이동도서관은 도서관 이용이 힘든 지역 주민을 위한 ‘찾아가는 도서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3년 7월 15일 첫 운행을 시작으로 현재 동삭동 등 15개 지역 18개소를 2주 간격으로 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10~12시, 오후 2~4시까지 순회운영하고 있다. 노후 된 도서관 차량을 대신하여 새로 도입한 차량은 온돌 마루를 장착하여 집에서 책을 보는 것과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며 스크린, 빔 프로젝터 등 최신식 영상 장비를 도입하여 시민에게 쾌적하고 현대적인 독서공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동도서관은 20일 서탄면주민센터를 시작으로 그 첫 발을 내딛었다. 도서관 관계자는 "인근 도서관의 이용이 어려운 7개의 지역을 추가 변경 운행하여 다수의 시민에게 정보습득과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평택시립팽성도서관(☎ 8021-5487), 또는 이동도서관(☎ 010-8834-4940)으로 문의하면 된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책과의 소통]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샘터사) / 2014.12.30 출간 전 세대를 다룬 책인 만큼 사춘기 손자가 노년의 할아버지와, 황혼의 부모가 결혼을 앞둔 딸과, 학부형이 된 아들이 은퇴한 아버지가, 서로가 함께 들려주고 묻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또한 책에는 작은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세대마다 선호하는 글자 크기를 고려해 각 부마다 글자 크기를 달리하였는가 하면,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의 대표 작가 박병철이 이 책을 위해 쓰고 그린 캘리그라피는, 저자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한 언어로 빛나게 한다.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임상미술상담사 양성과정 'A등급' 획득
    평택대학교, 지역사회 고용창출 효과 높여 평택대학교 산학협력단은 고용노동부와 평택시가 주관하는 2014년 지역 맞춤형 일자리창출 지원사업인 임상미술상담사 양성과정 사업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고 12일 밝혔다. 임상미술상담사 양성사업은 평택시와 주변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심리지원 전문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1, 2기로 나누어 총 60명이 과정을 수료하였다. 수강생의 강의만족도 평가 결과 5점 만점에 4.63점으로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으며, 특히 평택시에서 실시한 지역맞춤형 일자리창출 지원 사업 분야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이근매 교수(미술치료상담원장)는 "이번 사업은 청년 및 여성 구직자에게 임상미술상담사 교육과 실습과정을 통하여 자격증 취득 및 취업의 기회를 갖게 하고, 지역사회 고용창출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평택대 디딤돌스쿨, 최우수 평가 받아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레인보우스쿨 운영기관 선정 평택대학교 디딤돌스쿨이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최우수 레인보우스쿨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12월 여성가족부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발표한 점검결과에서 평택대학교 디딤돌스쿨은 전국 11개 운영기관 중 프로그램 운영, 대상자 관리, 운영관리, 종합평가 등의 평가항목에서 95점 이상의 최우수 평가를 받아 전국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디딤돌스쿨은 평택대학교 다문화가족센터(소장: 유진이 교수)가 2012년부터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다문화·탈북청소년 등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한국사회 초기적응을 위한 대안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디딤돌스쿨은 다양한 국가에서 입국한 9세~ 24세의 중도입국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국어수업과 진로직업체험, 특성화프로그램, 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초·중·고등학교로의 공교육연계 및 대학진학, 취업지원 등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19일부터 시작한 디딤돌스쿨 겨울학교에서는 한국어교육, 공예치료 및 댄스스포츠 등의 특성화 프로그램을 통한 다양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 031-659-8199)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서태호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일반계 고교 위탁교육과정 교육생 모집
    폴리텍대학, 반도체CAD분야“전자CAD”1년 과정 운영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학장 김상회)는 2015학년도부터 반도체CAD분야의 전자CAD 기능사(일반고위탁)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기능사(일반고위탁)과정은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2015학년도 기준)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 않고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전문적인 직업교육의 기회 제공하여 전문기술인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이다. 2015학년도 기능사(일반고위탁)과정 교육생 모집은 2월 6일(금)까지 대학홈페이지 및 우편을 통해 원서접수가 가능하며, 모집인원은 총 30명으로 교육기간은 1년이다. 제출서류는 ▶입학원서 ▶취업동의서(학부모동의서) ▶학교장 추천서 ▶고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하며, 기타 궁금한 사항은 교학처(☎ 031-650-7206)로 문의하면 된다.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학원연합회, 통합회장 취임식 가져
    안근학 신임 통합회장 "타도시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할 터" 평택시 남부연합회(회장 이소윤, 예일학원), 서부연합회(회장 김현규, 리듬피아노), 북부연합회(정원석, 프라미스학원)는 1월 17일(토) 오후 5시 30분 지제동 소재 더블유웨딩홀에서 신년하례식 및 통합회장(회장 안근학, 안스실용음악학원)·남부·북부·서부 회장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공재광 시장, 김인식 시의장, 유의동 국회의원, 최호 도의원, 유영삼 시의원, 학원연합회원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양수 북부사무국장 사회로 식전공연 및 학원연합회활동 동영상 시청, 내빈소개, 시상식, 취임사,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통합회장으로 취임한 안근학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권력의 시대에서 영향력의 시대로 간다고 미래학자들이 말했다. 이제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회원, 원장님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으로 대 평택시통합학원연합회가 탄생되었다"며 "사회적기업 잉글리쉬존 등을 통해 여기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타도시의 모범과 귀감이 되도록 모든 임원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서는 ▶공재광 시장상: 김유희(아이탑학원), 최삼호(청록해법수학학원), 박순록(론도음악학원) ▶김인식 시의장상: 박진영(필로스터학원), 박찬모, 삼성영어한솔학원), 복양수(복선생학원) ▶김기연 교육장상: 최상춘(스터니매니저최선생학원), 모봉연(모봉보습학원), 배춘효(송탄창조의아침미술학원) ▶도지회장상: 우영숙(필로스터에이스학원), 김태형(GnB영어학원), 장민(드림학원) ▶원유철 국회의원상: 정해미(초록음악학원), 이기훈(생각으로푸는수학학원) ▶유의동 국회의원상: 이경진(서울아이네트학원), 고길자(라이라이중국어학원) 회원이 각각 수상했다. 한편 학원연합회는 지난해 희망나눔스터디, YMCA평택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업무협약,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와 복지사각지대 지원협약, 평택시 평택생학습축제, 평택생활교류협회와 거리공연 등, 무료 주말농장, 신년 자선음악회, 어린이날 행사 주관, 수능생 응원, 노인회관 식사 무료봉사 등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 단체이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21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기행 - 다시 찾은 프랑스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무료하다. 그럴 때 쉬어가는 한국문화박물관의 푹신한 소파. 때마침 쓸 만한 드라마가 나왔다. 제목은 ‘진짜 사랑일까요?’, 젊은 나이에 홀로 코흘리개를 키우는 제자와 얼마 전 상처한 스승과의 러브스토리였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건만 막상 의사표현은 못하는 사이, 이럴 땐 좀 옆에서 나서주면 좋으련만……. 장장 11시간의 탑승. 직항이라서 결코 좋은 건 아니다. 좀 늘어질망정 보다 싼 값에 경유지를 거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게다가 네덜란드항공의 경우 좌석이 비좁다. 그 불편을 일거에 상쇄한 카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기내식이었다. 놀랍게도 여태껏 먹어본 비빔밥 가운데 단연 최고. 천상(?)과 지상을 통틀어 이만큼 맛깔스런 외식은 처음이었다.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에 고추장은 물론 고소한 참기름까지 갖춰 길손을 대접하다니 새삼 화란이란 나라의 괜찮은 품격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새벽에 내온 야채 오므라이스며 담백한 소시지, 원두커피와 따끈한 빵, 향긋한 과일에 신선한 요구르트는 덤이었다. 명색이 혼인 30주년 기념여행. 고맙게도 제 앞가림을 하는 딸과 아들이 정성껏 마련한 선물이라서 뜻이 더욱 깊다. 애초에 신청하기는 발칸반도를 두루 훑어보는 여정(11박12일)이었으나 아쉽게도 끝내 모객이 되지 않아 부랴부랴 프랑스와 베네룩스로 일정(6박7일)을 바꿨다. 우리 부부의 행복한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윽고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 밤하늘에서 흘끔 기창 밖을 내려다보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 ‘KLM’ 항공사의 명칭이었다. 둘러보니 한국인 여승무원은 딱 한 명. 내릴 때 멋쩍은 듯이 응답한 말은 ‘Royal Touch Airline’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Touch가 아닌 Dutch였다. 여태껏 영어에 귀를 트지 못한 탓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문명시대에도 임금을 떠받드는 데는 비단 영국만이 아니었다. 비에 젖은 ‘스키폴국제공항(Schiphol Amsterdam Airport)’의 첫인상은 부드러웠다. 아롱아롱 불빛에 반짝이는 빗물처럼. 청사 안의 동선은 다소 복잡한 느낌이었다. 꽤 쌀쌀한 대기를 쐬며 리무진에 올랐다. 곧바로 프랑스로 향하는 길. 하지만 한참을 달려도 어둑발은 좀체 가시질 않는다. 칠흑에 휩싸인 들판. 평소 차창으로 빨려 들어오는 풍경을 즐기는 나로서는 퍽 답답한 노릇이었다. 대뜸 인솔자에게 그 이유를 캐물은즉 겨울해가 더디게 뜨기 때문이라는 상식 수준의 대답이 전부.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두어 시간 내닫고서야 차츰 날이 밝아왔다. 사물을 겨우 분별한 08시 반쯤 반가운 팻말이 보였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ROTTERDAM). 그리고 잠시 벨기에의 끝자락을 가로질러 만난 곳은 프랑스 농촌이었다. 상투적이로되 전형적이라는 낱말과 목가적(牧歌的)이라는 수사 말고는 별다른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 광경. 비록 스페인이나 영국만큼 정교하지는 못할망정 다시금 다채로운 불란서 풍광을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첫 방문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세칭 불세출의 화가가 사랑한 마을은 고즈넉했다. 서정적 풍치를 고스란히 화목에 담을 만치. 고작 37살에 요절한 삶.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 10주를 머물며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가 유숙한 여인숙(Inn)을 중심으로 들어선 상가들. 고흐를 기리는 박물관에서 지척인 그의 생가는 여느 시골집이나 다름없었다. 앙상한 고흐의 동상은 말년의 깡마른 몰골. 뚜렷한 고흐 자신의 흐릿한 생애처럼. 이리저리 헤맨 끝에 들어간 식당(Total Restaurant). 뒤늦은 점심이었다. 배고픈 김에 야채샐러드와 바게트 빵으로 허기를 메우고 나니 큼지막한 돼지고기요리(여기서는 사슴-양-돼지-소의 순으로 인기가 있음)를 내왔다. 아깝게도 식탁에는 음식이 남아돌다니, 가이드의 세심한 안내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담? 누꿈하던 빗줄기가 심술을 부렸다. 손수건으로 안경을 가린 채 고흐가 묻힌 묘지로 향하는 시골길. 언덕배기에 자리한 오베르성당은 전지작업이 한창이었다. 볼썽사납게 나뭇가지를 잘라내기에 물어보니 병균을 미연에 방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렇지만 뭉툭한 모양새라니 왠지 예술의 나라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렁주렁 그의 그림들이 걸린 담장을 끼고 도니 연푸른 밀밭이었다. 후줄근한 공동묘지. 프랑스에서는 사후세계에 관한 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마저 범인으로 돌아가는 나라. 고흐는 공원 한쪽에 사랑하는 동생과 잠들어 있었다. 나란히 누운 친형제를 담쟁이덩굴이 촘촘히 옭아맨 형국. 물론 그의 영혼은 창조주에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 채. 기실 그의 부친은 목사였다. 그 역시 한때는 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에겐 복음이 없었다. 지구촌에서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취를 찾아올지언정 본인은 정작 안식할 고향을 잃었다는 게 서글펐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6호)에는 서유럽 기행 두번째 이야기, '파리한 파리 시내'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교육/문화/웰빙
    2015-01-14
  • [평택의 문화재] 충의각(忠義閣)
    - 문화재명: 충의각(忠義閣)- 시대: 조선시대- 지정번호: 평택시향토유적 제5호- 지정일자: 1991년 7월 11일- 소재지: 이충동 산 37-1- 소유자: 강종진 ■ 조광조와 오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閣) 충의각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삼학사의 한 사람이었던 추담 오달제(1609~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閣)으로, 각(閣) 안에는 유허비(遺墟碑: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유허비는 순조 1년(1800) 진위유림들이 이충마을과 동령마을에 있던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에 세운 비로써 오랫동안 ‘오학사 비’라고 불리었다. 유허비의 규모는 비신 55×16×123cm, 비대 67×49×15cm이다. 유허비의 상부에는 ‘송장(松莊)’이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지임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 입석 당시 진위 유림에서 조광조·오달제 선생의 자취가 있음을 길이 전하고자 나라에 청하여 허가를 얻었다고 전하며, 비의 위치는 오달제 선생의 옛 집터가 있는 산 윗부분에 해당한다. 이 비는 1950년대까지 길 옆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동령마을 주민들에 의해 보호·관리되었으며, 1990년에 기와를 보수하고 단청을 다시 하였다. ■ 조광조의 생애(趙光祖: 1482~1519) 조광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菴)이다. 서울에서 개국공신인 온(溫)의 5대손으로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강(元綱)의 둘째 아들로 성종 13년(1482)에 태어났다. 17세에 어천찰방(魚川察防)으로 부임하는 부친을 따라갔다가 희천에 유배되어있던 김굉필(金宏弼)에게서 수학하였다. 학문으로는 《소학》,《근사록》등을 토대로 경전을 연구하였으며, 이때부터 성리학에 힘써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중종 5년(1510) 29세 때 사마시인 진사회시(進士會試)에 장원으로 급제, 개성의 천마산(天魔山), 성거산(聖居山) 등지에서 공부하였으며, 그 후 중종 10년(1515) 성균관 유생들의 천거와 이조판서 안당의 추천으로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라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가을 알성시(謁聖試)인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典籍), 사헌부 감찰, 예조좌랑을 역임하고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는 유교의 이념으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중종 13년(1518) 부제학(副題學)이 되어서는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당시 상황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논쟁을 거듭한 끝에 중종의 허락을 얻어 폐지시켰다. 그의 도학정치에 대한 주창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의 주창으로 당시의 학풍은 변화되어 갔다. 그의 도학정치는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대에는 일반 서민들까지도 주자의 가례(家禮)를 지키게 되었다. 중종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조광조는 혁신정치를 실시코자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할 것을 간청하였다. 현량과는 당시의 과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으로 신진 관리의 발탁을 위해 중국 한(漢)나라의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를 본받아 제정하는 것으로 1519년에 실시되었다. 천거시취제(薦擧試取制)인 현량과에서 김식(金湜), 안처겸(安處謙), 박훈(朴薰)등 전국에서 28인이 선발되었으며 소장 학자들을 뽑아 조정 각 부문 요직에 배치하였다. 이로 인해 훈구세력들은 기성관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라 하여 반격의 음모를 시작하였다. 중종 14년(1519) 대사헌이 되고 세자부빈객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훈구세력들은 더욱 그를 질시하게 되었으나 신진세력들의 힘을 입어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게 되고 왕도정치의 표방아래 보수 세력인 훈구재상들과 그의 혁신적인 시책에 반대하던 기성관리들은 거의 모두가 탄핵되어 파직되거나 좌천되었다. 또한 조광조는 중종 반정시 공신으로 추대된 인물 중 부당하게 책정된 유자광(柳子光), 성희안(宬希顔)등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의 공을 삭제하자는 위훈삭제(爲勳削除)를 강력히 주청하였다. 처음에는 허락지 않던 중종도 거센 주청이 계속되자 11월 9일 103명의 공사 중 78명을 삭훈하였다. 이 사건의 피해지인 훈구파의 대신들은 중종 14년(1519) 12월 16일에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결국 정치경력이 짧은 신진세력들은 숙청된다. 조광조가 전라도 화순의 능주(陵州)로 유배되고 한 달쯤 뒤 홍경주 등의 강경한 주장으로 사약을 받고 세상을 하직하니 그때 나이 38세였다. 그 뒤 선조 초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조광조의 본래 살던 집은 한양이었지만 집안의 전장(田莊)이 이충동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이곳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 오달제의 생애(吳達濟: 1609~1637) 오달제의 집은 동령마을 성재 아래에 있었다. 오달제는 조선시대 3학사의 한 사람으로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이라 불렀으며 오윤혜(吳允諧)의 아들로 용인의 신갈이 고향이었지만 외가가 오좌동 수성 최씨여서 상속받은 전장과 집이 이충동 반지산 기슭에 있었다. 19세 되던 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바 있으며 인조 12년(1634) 26세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전적·병조좌랑·시강원사서·정언·지평수찬을 거쳐 1636년 부교리(副校理)가 되었다. 이 무렵 후금의 세력이 날로 강대해져 칭제건원하고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조선을 위협하였다. 명나라는 이미 그 세력이 약화하였으며, 후금은 조선이 은연중 명나라를 지원하면서도 사절의 내왕조차 없다는 구실로 1627년 침공을 감행해오니 이것이 곧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그 후 후금은 명나라를 공략하는 한편 조선에게는 식량과 병선 등 많은 물자를 요구하니 조선에서는 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화파(主和波)와 청은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척화파(斥和波)가 대두하였다. 오달제는 홍익한, 윤집과 함께 척화주전론을 주장하며 청과의 화해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1636년 청태종은 척화론자를 압송해서 보낼 것을 요구하였고, 조선이 이를 듣지 않자 10만 대군을 이끌어 재차 침공해왔다. 강화론과 주전론이 맞서 논쟁을 거듭하였으나 성내에 식량이 떨어지자 결국 강화를 청하기로 하였다. 청태종은 강화도에서 잡은 포로를 송환한 다음 그들의 진중에 억류하였던 세자, 세자빈과 봉림대군을 인질로 하고 척화론의 주모자 오달제와 윤집을 잡아 심양으로 돌아갔다. 적장 용골대(龍骨大)는 오달제의 기개와 뜻을 꺾기 위하여 처자를 거느리고 청나라에 와 살 것을 권유하며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였지만 그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불의(不義)라 주장하면서 저들의 말을 좇으면 오랑캐가 되고 마는 것이라 하여 끝내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심양성 서문 밖에서 윤집, 홍익한과 함께 처형을 당하니 세상에서 이들을 삼학사(三學士)라 부르며 그 절개와 충성심을 높이 기리게 되었다. 오달제가 심양에서 처형당하자 기이하게도 그가 태어난 원삼면 학일리(學日里) 마을에는 모든 풀들이 말랐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지금도 마을 이름을 고초골(枯草谷)이라 부른다. 삼학사의 절개와 충의는 효종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포상되었는데 좌승지·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렬(忠烈)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광주(廣州)의 절현사(節顯祠), 평택의 포의사우(褒義祠宇), 홍산(鴻山)의 창렬서원(彰書烈院), 영주의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서원(雲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자료출처: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정리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 교육/문화/웰빙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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