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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우 칼럼] 김장은 사랑과 헌신이다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김장으로 온 국민의 마음이 분주해진다. 모든 뉴스의 초점이 김장에 관한 그 해의 정보를 발표한다. 배추, 무, 고춧가루, 새우젓, 소금에 대한 가격 변동에 민감해진다. 김장에 대한 비용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관계없이 모두 뉴스감이다. 김장을 앞둔 주부들의 동향도 빼놓을 수 없는 뉴스거리다. 김장에 대한 추억은 중년층 이상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김장은 한 해 중 가문의 대사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김장을 치렀다. 그도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서로 김장을 도왔고, 이처럼 김장은 축제처럼 치러졌다. 필자가 추억하는 옛날 김장하던 풍경은 이랬다. 먼저 외할아버지가 밭에다 배추를 심었고, 김장철이 되면 먼저 밭에 가서 잘 자란 풍성한 배추를 뽑아 가지고 오는 일이었다. 손수레에 아마도 200포기 이상을 운반해 온 듯싶다. 무려 2km 정도의 거리를 우리 네 형제와 아버지가 실어 날랐다. 몇 차례를 왕복하면서. 가져온 배추는 그날 바로 반으로 쪼개어 큰 드럼통(초등학교 6학년 때 큰 드럼통은 내 키만 했다) 몇 개에 담긴 소금물에 나누어 절였고, 드럼통에 담겨 있던 소금물은 김장을 마쳐도 버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온 동네 이웃이 김장을 하면서 다시 배추 절임에 소금물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룻밤을 지난 절인 배추는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와 씻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7명이라 김장은 이 정도 해야 월동한다고 어머니가 말씀한 것 같다. 그땐 김치가 도시락의 유일한 반찬이기도 했다. 또 하루 세끼 식탁에 김치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고 겨울방학이 되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김치국밥을 먹어야 했다. 한쪽에서는 절인 배추를 씻어서 쌓아둔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다른 한쪽에서는 배추 포기 사이에 넣을 양념을 준비하느라 무, 생강, 미나리, 부추 등을 썰어 큰 고무 대야에 쏟아 버무렸다. 김장 준비가 되면 새참으로 간식인 고구마나 감자를 쪄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줌마들의 떠들썩한 수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 후 본격적으로 남자들은 물이 빠진 절인 배추를 날라주면 아줌마 부대는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김치 속을 넣기 시작한다. 얼마나 손이 빠른지 모른다. 가끔 포기김치를 날라주는 우리 입에 굴이 들어간 김장김치를 한입 가득 넣어주었다. 아,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김장이 마쳐지면 점심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특히 돼지 수육은 필수로 등장하고 동태찌개도 나왔다. 모처럼 흰쌀밥도 나왔다. 그날 김장한 김치 겉절이에 수육을 올려 한 입 크게 받아먹던 그 맛, 그 분위기, 그 축제. 우리 민족의 훈훈한 마을 공동체 전통이요 풍습이 아닌가. 그 시절 김장하는 날의 풍습은 이제 차츰 사라지고 있어 서운하고 안타깝다.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그런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해 발표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참 아쉬운 현상이다. 최근 세계 각 나라에서 K-푸드 열풍이 일어나면서 김치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적으로는 갈수록 김장이 위축되고 있다. 1인 가구가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김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굳이 김치가 당기면 가까운 마트에서 사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김치보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김치를 외면한다.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서민 생활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이요 헌신이 담긴 맛의 유산이다. 이렇게 귀한 자산이 사라지지 않게 보존하는 방식을 찾아보자. 김치맛의 유산을 제대로 지키려면 마을 공동체가 나서서 김장 경비는 각자 공동 부담하고 옛날처럼 한 자리에서 함께 김장을 하고 나누어 가는 방식은 어떨까? 김치의 세계화는 가족을 위한 사랑과 헌신이 만들어 낸 우리의 풍습과 전통을 잘 지켜 나갈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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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 [소태영의 세상보기] “평택자치신문, 깊고 넓은 새로운 길을 열어 가시길”
    어느덧 평택자치신문이 청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19년째 참된 지역 언론으로서의 몫을 묵묵히 감당해 오느라 애쓰셨습니다. 필자는 <평택자치신문>의 탄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동안 어려움을 견디며 걸어온 길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지역신문인 <평택자치신문>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깊게 느끼기에 필자가 <평택자치신문>의 19주년 창간기념일을 맞아 잡은 이 펜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느껴집니다. 지역 언론으로서의 사명은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허튼 길로 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겁고 막중함을 지역사회에서 감당하고 걸어온 큰길, 깊고 넓은 새로운 길을 열어 기대감 속에서 지역 언론으로 다시 출발하는 길을 뜨겁게 응원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언론을 흔히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지역신문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주요 사건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를 통하여 지역사회의 각 분야를 취재하고 보도하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반영하고 또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론은 우선 사실보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있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감추거나 왜곡시키면 그것은 언론에 대한 모독이자 시민과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이며,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 여건의 변화 속에서 지역신문은 지역공동체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체로의 역할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지역 집단과 집단 간의 커뮤니케이션, 지역과 지역 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정기관과 지역주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촉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지역 내에 존재하는 여러 집단 간의 다양한 의견교환과 정보교류 등의 계기를 마련하고, 지역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일, 지역주민의 여론 형성을 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지역주민에게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 강한 소속감을 심어주는 일, 지역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도 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이면 총선이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은 아주 긴밀한 관계입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 보면 정치와 언론은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언론의 공정한 비판이 사회적 정의와 지역 정치의 민주적 발전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푯대를 세워 흔들림 없는 언론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언론이 먼저 솔선수범한다면 충분히 정책과 의제로 승부하는 정책 선거, 정당이 아닌 인물로 승부하는 선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대중 정서와 관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언론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기들의 포퓰리즘 보도 관행을 ‘여론’, ‘민심’이라는 무책임한 단어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보고 큰 틀에서 해부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연마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시민의 삶과 질 향상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언론은 시민의 정신적인 스승임을 명심하고 글 하나 하나에 뼈를 깎는다는 굳은 각오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마주할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평택사람들이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창간 19주년을 축하하며, 시민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는 <평택자치신문>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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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 [기자수첩] 평택시 비전동·서정동 음주운전 사고를 바라보며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 연말이 다가오면서 음주운전이 증가하고 있다. 평택시에서도 지난 12일 서정동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30대 운전자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며, 다음 날인 13일 비전동에서도 음주운전을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시민을 들이받아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20일 새벽에도 음주 측정을 요구하는 경찰의 순찰차를 들이받은 뒤 달아나면서 연달아 아찔한 추돌사고를 낸 50대 여성 운전자가 음주 측정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음주운전은 판단력과 인지력이 현저히 떨어져 주변 상황 변화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교통사고보다 치사율이 높다. 경찰청 음주운전 교통사고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단속은 약 13만283건, 음주운전사고는 약 1만5,059건이 발생했으며,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8위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심야 음주운전은 물론이고 낮 시간대 출근길, 스쿨존 등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올해 7월부터 음주운전 사망사고, 상습 음주운전 등 중대 음주운전 사범의 차량을 압수 및 몰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특별수사를 통해 피의자 162명의 차량 162대(영장 압수 29대, 임의 제출 133대)를 압수했다. 압수된 차량은 법원에서 최종 몰수 판결을 받으면 공매 절차 등을 거쳐 매각 대금이 국고로 귀속된다. 또한 검찰과 경찰은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해 원칙적 구속수사를 하고 있으며, 특히 위험운전치사,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등은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까지 규정하고 있다. 연말인 만큼 음주와 관련된 자리가 많지만 한두 잔이라도 음주를 한 후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 지난 2019년 이전에는 음주단속 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이었지만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0.03~0.05%도 형사 처벌이 된다. 혈중알코올농도 0.03%는 평균적으로 소주 한두 잔 정도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수치인 만큼 나 자신의 안전은 물론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음주 후에는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불가피하게 음주 자리가 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적었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의의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다. 음주운전은 고의적 살인 행위이자 우리의 이웃과 이웃의 가정을 잔인하게 파괴하는 살인 행위라는 점을 시민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나와 가족, 시민 모두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교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시민 모두의 의무이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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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2
  • [유성이 바라보는 평택] 척박한 지역신문 환경에서 피우는 소중한 꽃
    ◆ <평택자치신문> 지령 700호를 축하하며 늦가을, 지령 700호라는 위업을 이룬 <평택자치신문>을 뜨거운 가슴으로 바라본다. 벌써 19년이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2004년 예비호를 발행하다가 2005년 창간한 이후 <평택자치신문>은 지방화 시대를 선도하는 평택의 대표 주간지로 우뚝 서 왔다. 한편으로 축하하면서 또 한편으로 대단하고 대견한 여정에 큰 힘이 못 되어준 미안함이 앞선다. 그간 <평택자치신문>은 ‘좋은평택만들기’ 특집기획을 통해 평택발전 정책을 제안했다. 평택항발전프로젝트, 평택항공 설립 제안 등 많은 콘텐츠가 지역사회에 큰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지면을 전면 컬러로 인쇄하는 혁신적 발행을 통해 지역시민들이 시원하고 생동감 넘치게 신문을 읽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 록밴드 축제의 상징인 우드스탁이 부럽지 않은 ‘평택록페스티벌’도 있다. <평택자치신문>이 주관하는 평택록페스티벌은 올해 13회를 맞이했다. 매년 200여 밴드의 참여와 평균 2만 명의 관중이 운집하는 이 행사는 단일 신문을 넘어서 이제 평택 문화의 한 상징이 되었다. 지난 16년 동안 신문을 이끌어 온 서민호 대표와 기자단, 임직원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16면의 지역신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발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잘 알고 있다. <평택자치신문> 초대대표를 지내면서 약 2년여간 매주 신문을 발행해 봤기 때문이다. 매주 지역주민들께 필요한 정보제공, 지역 와치독(watch dog)으로서의 감시와 정책 분석, 문화·교육·환경·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뉴스와 특집을 생산하는 격무와 긴장의 연속이다. ‘19년, 지령 700호’ 발행은 평택시민들의 격려와 사랑의 결실이며 임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의 이정표이기도 한 것이다. 신문을 발행하고 경영을 책임져 본 필자는 지역신문의 척박한 환경을 원망해 본 적도 있었다. 매달 1천5백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하는 경영 현실 때문에 지역신문 창간 때의 원대한 꿈과 비전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을 잘 헤쳐 온 것은 무엇보다도 <평택자치신문>을 사랑하고 후원해 준 시민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독하고 광고를 실어주고 주위에 추천하는 많은 시민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평택자치신문>은 앞으로도 이런 시민들의 격려와 사랑을 믿고, 지역 정보 제공, 비판과 감시,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과 공동체 형성에 더욱 정진해 주길 바란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척박한 지역신문 환경에서 피워낸 소중한 꽃, <평택자치신문>이 이제 19세 청년 언론으로서 아름답고 넓은 꽃밭을 정열적으로 가꾸는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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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1
  • [데스크칼럼] 지령 700호 “시민과 함께하는 지역언론이 되겠습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5년 창간한 지역주간신문 <평택자치신문>이 11월 15일자로 지령(紙齡) 700호를 발행했습니다. 시간은 참 빠릅니다. 2004년 1년간 예비호를 발행한 후 2005년부터 신문을 발행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령 700호를 발행했습니다. 평택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역 주간신문이 매주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녹록지 못한 현실입니다. 이는 뉴스 전달 매체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이유도 있고, 미디어 영향력이 많은 부분은 인터넷 매체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평택자치신문>은 종이신문과 함께 인터넷 뉴스 플랫폼을 확대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2022년 5월 <평택자치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협의회가 공동으로 영상 중심의 인터넷 종합언론인 <미디어평택>을 설립해 영상미디어 환경이 열악한 평택에서 보다 다양하고 신속한 영상 뉴스와 각종 정보들을 시청자들에게 빠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평택자치신문>이 부단한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지령 700호를 발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독자와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이었습니다. 또한 기자, 시민기자 및 객원기자, 전문 집필진인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유성 평택자치연대 대표, 권혁재 시인께도 감사드리고, 늦은 밤 <평택자치신문>을 평택 전 지역에 배송하시는 배송 관계자분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외에도 19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역의 발전은 물론 지역공동체와 구성원을 위한 소중한 글들을 기고해 주시고 기사를 제보해 주신 각계각층의 시민과 시민사회단체에도 감사드립니다. 700호를 발행하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지역언론이 갈 길은 지역성의 강화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구축과 중앙언론이 할 수 없는 지역 밀착형 뉴스 취재 및 개발을 통해 평택지역 구성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도 지면에 공유하는 지역 밀착형, 지역 맞춤형 언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온기와 희망의 끈을 이어주기 위한 취재 및 보도를 더욱 확대할 것이며, 지역신문답게 25개 읍·면·동(4읍, 5면, 16동)의 소식도 비중 있게 독자와 시민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늘 평택시민의 편에서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신문이 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를 부탁드리고, 그동안 평택이 어느 지역보다도 가파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듯이 지역사회 발전과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지역언론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필자를 비롯한 임직원 모두는 독자와 시민만을 바라보면서 평택의 참역사를 묵묵히 적어내는 사관의 위치를 굳게 지켜나갈 것이며, 이를 통해 <평택자치신문>이라는 지역언론이 독자, 시민 모두의 목소리는 물론 소소한 삶까지도 소중하게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지령 700호까지 힘을 보태주신 독자, 광고주, 드러나지 않게 물심양면 후원해 주신 독지가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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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유성이 바라보는 평택] 김포 서울 편입, ‘서울시 김포구’가 그리 좋은가
    김기현 국민의 힘 대표가 김포시를 서울특별시에 편입하자고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발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2주 동안 이 이슈는 ‘서울메가시티론’에서 ‘수도권통합론’으로 갔다가 지금은 그냥 ‘뉴시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여론 동향을 보는 중이다. 소란스럽지만 여론과 총선 결과에 따라 찻잔 속 태풍이 될 수도 있겠다. 하여간 서울이 좋긴 좋은가 보다. 애초 지하철 5호선의 연장은 김포시민의 오랜 숙원이었다. ‘지옥철’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김포골드라인의 교통수요를 하루빨리 분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경전철인 김포골드라인을 ‘골병라인’이라고 부르겠나. 여기에 서울에 편입하면 아파트값도 오르겠으니 서울 편입이 얼마나 좋겠냐는 계산이 더해졌다. 획기적인 묘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중 여론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단 김포시민의 이해득실이 팽팽하다. 먼저 지하철 5호선 연장 사업비 부담 문제로 건설이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도, 인천시와 함께 추진됐던 광역철도일 경우에 사업비는 국비 70% 지방비 30%였다. 그런데 서울시가 추진하게 되면 사업비가 50:50으로 바뀌게 된다. 서울시는 생각지도 않았었기에, 재정문제뿐만 아니라 계획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 그만큼 사업은 순연될 것이다. 김포시의 세수가 대폭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김포시가 서울시에 편입되면 교부세를 받지 못한다. 서울시가 불교부단체이기 때문이다. 각종 보조금도 줄어든다. 시에서 자치구가 되면 지방세인 주민세, 지방소득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를 걷지 못해 세입이 수천억 원 이상 줄게 된다. 대신 재산세(집값, 땅값)를 걷게 되는데, 2023년도 지방세수입으로만 보면 김포가 4천2백억 원, 관악은 1천3백억 원이다. 인구 48만 명으로 비슷한 규모인 관악구와 비교했는데, 김포 땅값이 아무리 오른들 관악구 정도일리는 없다. 한마디로 대폭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1조4,700억 원 예산 규모인 김포시가 재정 규모 8천억 원 정도의 서울시 김포구가 된다. 시민 삶의 질이 올라갈까 떨어질까? 1조5천억 가치의 회사를 8천억 짜리로 다운그레이드 하겠다는 것인데, 김포시민들의 향후 주장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지방자치권의 관점에서도 살펴봐야 한다. 자치시와 자치구는 동급이긴 하지만 통상 자치구가 자치시보다 자치권이 약하다. 서울 강서구가 강서구청을 마곡지구로 옮기기 싫다고 서울특별시에 반발했으나 서울특별시는 강서구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서구청을 마곡지구로 옮겨버린 사례가 있다. 김포시가 관내에 쓰레기 매립지 등의 혐오시설을 설치하기 싫어도 서울특별시가 강행하면 그만이다. 서울시에 편입되면 제2의 김포매립지, 건설페기물 처리장, 소각장 등 기피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실과 마주쳐야 한다. 김포 서울 편입에 대한 여론은 싸늘한 것 같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해 긍정 19%, 부정 68%(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사 전국지표조사, 2023.11.9.)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정하고 특위까지 구성한 바로 그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에서 국토균형발전과 지방자치를 향한 지방시대를 선언하였다. 상반된 주장과 정책, 철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 서울시 편입에 대한 김포시민의 편익이 분명해지고 있다. 일부 시민의 아파트값 상승과 기대심리인가, 대다수 시민의 손해인가? 지방분권이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가성장 담론까지 갈 것도 없다. 서울시 김포구민이 그렇게 좋은가.
    • 오피니언
    2023-11-14
  • [정재우 칼럼] 아름다운 유산 ‘다양성과 공존’
    얼마 전 전남 광주의 한 미술관에서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그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었는지 궁금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결국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주제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한국 정치를 한 마디로 당쟁과 분열의 나날이라고 평한다. 왜 우리 정치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타협의 정치를 잘 못할까? 세계는 한국의 K-컬처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아마 한국 문화가 세계화된 요인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그럴 것이다.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필자의 생각은 ‘다양성과 공존’이라고 본다. 한반도를 팔도로 나누어 생각해 봐도 우린 적어도 여덟 개 이상의 문화가 공존해 온 것이 아니겠는가? ‘아리랑’만 해도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방색이 강한 아리랑 종류는 아마 백 가지도 넘을 것 같다. 우리 문화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다양성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본다. 국제 관계도 그랬다고 보며 국내적으로 삼국시대는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존해 왔다고 본다. 나중에 비록 신라에 의해 국가는 통일이 되었으나 문화는 다양성 속에 지방별로 그 특색을 지켜왔다. 그 아름다운 유산 ‘다양성과 공존’이 지금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건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단일문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다문화 시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순혈주의나 단일 민족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3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바탕에 깔고 현실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착안해 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이민 정책을 대안으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저출산하려는 대상자들에게 돈으로 접근하려는 정책은 이미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젊은 맞벌이 부부가 바라보는 출산과 육아 환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치닫는 현실을 방관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 답은 자명하다. 유럽의 이민 정책으로 인구 감소를 극복한 나라들에서 배우고 정책을 실현해 보자. 문제는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성과 공존’하는 사회를 준비해 이민과 다문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의 저서 <대전환>을 보면 저자는 세계를 바꾼 다섯 가지 위대한 서사를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이라고 보고 있다. 이 중에 첫 번째로 거론한 ‘인구의 대전환’에서 세계 인구의 증가율은 1960년대 후반에 감소로 이어졌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주요 지역에서 인구통계학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심각한 불평등과 동시에 혁신과 번영의 중심이 되면서 이민을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특히 80년대 일본, 90년대 한국, 20세기 초반의 중국의 인구 증가가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가져왔으나 이후로는 삶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인구 감소로 돌아섰다고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구 감소를 위해 인구를 유입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이민 정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동의와 수용할 국민 의식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도 일찍 이런 ‘다양성과 공존’을 중시하여 옥한흠 목사가 주장한 것처럼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목표로 제자 훈련을 철저히 한 교회는 현재형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인재와 인력이 있는가. 이를 훈련하여 그 다양성대로 자기 능력에 맞게 사역하며 공존할 줄 아는 공동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이다. 교회는 경직된 수직 구조의 사회에 ‘다양성과 공존’이 실현된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문화 시대를 앞서 살아내고 있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직된 당회 구조나 끼리끼리 뭉치는 교회 풍토는 새 가족이 발붙이지 못한다. 그런 교회는 새 시대를 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외국인이주가정은 물론 앞으로 공존해 살아가야 할 외국인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을 품어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사회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서 살고 싶은 나라, 드림을 실현해 보고 싶은 나라’라는 새로운 한류가 일어나면 좋겠다.
    • 오피니언
    2023-11-14
  • [정재우 칼럼]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해.
    지난 목요일, 늦가을녘에 대학 입학 전후한 동문들의 정례 모임이 있었다. 필자는 아내와 동반해 참석했다. 다섯 쌍이 각각 인천과 일산, 서울에서 평택까지 내려왔다. 오성면 맛집인 샤부샤부 식당에 모였다. 식당 내 방이 협소해서 남녀로 나누어 자리를 잡았다. 기본적인 음식이 남녀 각 상에 차려지고 추가로 필요한 음식은 차려진 식단에서 자율로 가져다 먹었으며, 식사 중에 연신 웃음이 이어지며 수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가 나누는 수다의 주제는 주로 건강, 병원 진료, 식생활과 운동 이야기였다. 어떨 땐 죽음, 웰빙과 버킷리스트와 같은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펼쳐놓는다. 간혹 정치와 정치인 이야기도 나눈다. 대부분의 화제는 대학 생활 초기에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식사와 함께 나누던 수다는 자리를 옮겨 가까운 생태공원 벤치에 둘러앉아 커피를 나누며 계속됐다. 그 시절 기숙사에서 겪었던 이야기가 한참 뜨겁게 달구어졌다. 기숙사 사감님의 매서운 감시의 눈을 피해 다니다 낭패를 당한 일들, 엄격한 야간 통금 시간을 놓쳐 월담한 일, 주린 배를 채우려 교문 앞 유일한 라면집에서 먹던 라면 맛의 추억 등 수다는 시들 줄 몰랐다. 남편들의 수다를 지켜보던 아내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한다. “아하,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하군요.” 은퇴 후의 수다 모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아내들이 곁에서 지켜보며 웬 수다거리가 그렇게 많냐고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낸다. 교회 시무를 은퇴하고 만나는 또 다른 친구 모임도 있다. 예배 모임인 노을교회에서 매주 만나는 동료들이다. 주일예배 후 그 자리에서 식사 후 나누는 수다는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모른다. 한 주간 있었던 주변잡기를 나누거나 한국교회와 세계 정세에 대한 견해도 나눈다. 필자는 사실 오래전부터 고향 친구들과 정기적인 수다 모임을 가져왔다. 한 친구는 외과 의사요, 또 한 친구는 사회복지단체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우린 고향교회 출신이자 죽마고우인 만큼 평생을 형제처럼 함께 하고 있다. 부부가 동반해 모이는데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만난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친구 집에 모여서 자정이 되도록 정감 있는 수다를 나눈다. 공유한 추억이 많기에 수다는 멈출 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 얼마나 열띤 수다를 떠는지. 그런데 최근에 한 친구가 전원살이를 위해 남해로 거처를 옮겨 간 이후로 잘 모이지 못해 애석하다. 언젠가 지인이 보내온 글에서 이런 내용을 접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연구 한 바에 의하면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흡연, 음주, 경제문제, 사회적 지위, 일하는 스타일, 인간관계 등을 조사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마음고생이 심하고, 쉽게 병에 걸리고, 노화가 빨라지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유지했다.」 이런 조사 결과다. 친구를 가진 사람, 친구와 정기적인 만남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단명하지 않는다. 친구와 만남과 수다는 필연적 관계다. 건강한 수다는 권장할 만하다. 특히 남자들도 수다가 필요하다. 술자리 친구와는 다른 특색을 가진다. 커피 한 잔을 놓고도 건강한 수다를 이어갈 수 있다. 특히 은퇴자들은 이런 건강한 수다가 생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창의력이 고갈되지 않게 돕는다. 또한 세계를 넓게 보는 식견과 나름으로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세계 도처에 우울한 소식들이 가득하지만 건강한 수다의 자리에선 편하고 허심탄회하게 날려 보낼 수 있다. 어떤 걱정, 염려 거리도 맥을 못 춘다. 누구도 이 일을 말릴 수 없기에.
    • 오피니언
    2023-11-07
  • [정재우 칼럼] 군중과 예수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요, 추억하는 동물이다. 특히 유교권 나라들은 조상에 대한 도리로써 추도일, 즉 제사를 지냄으로 조상을 추억하고 역사를 이어간다. 양반 문화가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심할 정도로 가문과 조상의 공적을 길이 전승·보존하고 싶어 했다. 우리 형제들은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조부님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아버지를 통해 듣고 지금까지 그 공적을 기억하며 추도식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조부님의 공적을 인정받아 유공자 자손이 되어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에 걸친 유랑생활과 차별과 박해를 받아 살아왔고, 조상들의 그 고난의 역사를 기념하고 추억하는 절기가 많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정권에 의해 6백만 명이 독가스실에서 집단 학살을 당했다.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기념관을 만들었다. 그 입구의 현판에 유명한 구절이 쓰여있다고 한다. “우리는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주년이 되었다. 우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추모할 것인가? 이런 시점에 그렇게 죽어간 군중들의 함성, 소리 없는 함성을 생각하며 의미 찾기를 위해 고민해 보자. 억울한 죽음, 청춘들의 좌절, 살아남은 가족들의 한, 즉 자살생존자라는 말이 있듯이 피해생존자의 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날의 비극은 군중이 모여든 가운데 일어난 참사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엉키고 밀치면서 쓰러졌고, 압박을 받아 질식을 하거나 쇼크로 심장이 멎어 청춘들의 생명을 앗아 갔다. 죽음의 순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리 없는 함성의 의미를 다시 챙겨보자. 군중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측은 했으나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는 공권력은 부재했다. 일차적으로 상기해 볼 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자유로운 시민 생활이 보장된 사회인가라는 점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은 이루었으나 시민사회를 위한 안전과 위기관리에 허점이 많았음이 사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알아도 대형 사고가 일어난 후에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왜 우리는 건망증 환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누군가는 깨어서 위험을 예고하고 나팔을 불고 경고해야 했었다. 이제라도 경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인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점은 군중심리에 매몰되어 가는 군중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 보는 일이다. 그날도 사람 구경을 위해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 게 아니었던가? 우리와 색다른 축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군중이라는 무리를 짓게 했다. 젊은이는 호기심이 강렬한 시기를 사는 자들이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문화 유입은 정체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그날의 참사처럼 밀려오는 문화에 압사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것으로 승화시킨 건강한 문화를 창출해 보자. 그리고 나아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예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는 언제나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무리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안전한 공간을 확보했다는 말이 아니란 것은 짐작했을 것이다. 가령 갈릴리호숫가에서 무리에 둘러싸여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예수는 홀연히 어부의 작은 배에 올라 육지 쪽을 향해 강론을 펼쳤다. 상상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이런 행동은 우리에게 군중으로부터 한 발 나와 먼저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이어서 무리를 바라보게 한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현대인은 군중 속에 묻혀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개체요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내가 그들을 대신할 수도 없다. 나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나만의 특화된 영혼이 있다. 그래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예수는 때때로 한적한 곳을 찾았다. 자신을 깊게 바라보며 고유한 창조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매우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원수를 사랑하라. 낮아져라. 죽어야 산다.”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십자가를 지나 부활을 실현했다.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우린 어디에 서 있는가? 여전히 심각한 위험불감증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군중심리에 매몰되어 정체성 상실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답게 창조적인 영역을 구사하며 군중으로부터 한 발 벗어나 고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 오피니언
    2023-10-31
  • [유성이 바라보는 평택] 결혼 못하는 사회에 대한 꼰대 생각
    상가에는 되도록 가지만 예식장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가는 게 필자의 평소 생각이다. 최근 어릴 적 친구 자제 결혼식에 갔더니 결혼 풍속도도 꽤 바뀌었다. 주례가 없는 양가 부모의 덕담이나, 화환을 사절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새 출발하는 자식들을 보며 감회가 새로운 듯 눈물짓는 친구를 보니 나도 뭉클해졌다. 이제 나이들은 게 맞나 보다. 결혼을 안 하려는 MZ세대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결혼 관련 자료는 그동안 어렴풋이 알던 대한민국 결혼 지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최근 10년 동안 청년들의 결혼 기피 현상은 드라마틱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56.5%이던 결혼 긍정 비율이 2022년 36.4%(2023.6, 통계청 사회조사)로 무려 20%나 하락했다. 2030 청년 3명 중 1명만 결혼에 긍정적이란다. 이 정도일 줄이야. 결혼 적령기 청년 3명 중 2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거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혼 기피 이유는 대략 짐작하는 바인데, 조사 결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남녀 차이가 있지만 합쳐보면 결혼자금 부족(33%), 결혼 필요성 못 느낌(17%), 출산 양육 부담(11%), 고용상태 불안정(10%) 등이다. “고학력, 고스펙, 좋은 외모나 직업에 집이랑 차도 있어야 결혼하고 애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으니, 솔직히 이런 완벽한 2030 청년들이 얼마나 있겠냐...” 인터넷 청년토론방에서 나온 한 참석자의 항변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젊은 세대의 결혼 포기 현상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되었다. 합계출산율 0.73이라는 무서운 현실도 젊은층의 결혼 포기와 연동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 지방정부를 포함해서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혼 장려, 출산 장려가 국가적 아젠다가 되었다. 그렇다고 명절 때마다 결혼하라는 꼰대는 되기 싫으니 참 거시기하다. 무엇보다 주거정책이 중요하다. 대선 때 각 당의 공약이었던 청년원가주택이나 기본주택 정책도 다시 한번 깊이 검토하고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보편복지로서 청년·신혼부부에게 제공하는 정부(지자체) 전세보증제도도 시급히 도입될 필요가 있다. 선도적인 지방정부들도 발 벗고 나서기 시작하는 중이다. 나주시는 2023년부터 아파트 30호(25년 100호)를 ‘청년·신혼부부 전세무상지원 정책’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충청남도의 ‘충남 꿈비채’는 주거 불안으로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600호로 시작한 이 정책은 25평 아파트의 경우 보증금 5천만 원, 월세 15만 원에 제공한다. 월 임대료도 한 아이를 출산하면 50%, 두 명 출산하면 전액을 10년까지 감면해 준다. 좋은 정책이 많이 확산되어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모든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적어도 집 걱정 없이 결혼하는 사회, 필자만의 희망일까? 정치권, 특히 정권도 피곤한 정쟁을 그만두고 ‘잘하기 정책 경쟁’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할 일이 태산이다.
    • 오피니언
    2023-10-31
  • [기고] 청렴문화를 선도하는 국민연금
    청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여 재물 따위를 참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청렴은 국민 모든 개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특히, 공직자들에게는 있어 가장 최우선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에게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된 기관인 만큼, 임직원 모두는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청렴한 업무처리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 이러한 청렴이라는 최우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단은 경영진의 강력한 청렴 의지 전파 및 솔선수범, 임직원 모두가 청렴을 실천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청렴한 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매년 ‘반부패·청렴도 향상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조직문화를 쇄신하고 있으며, 국민의 신뢰 제고와 청렴한 조직문화 조성 및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공단 임직원이 실천해야 할 행동 지침으로 ‘청렴한 생활, 10가지 약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성희롱·성추행·성차별 금지, 공정한 업무처리, 알선·청탁 금지, 정보의 유출 및 무단열람 금지, 상호 존중하기, 갑질 금지, 부당한 업무지시 금지, 금품 등 수수 금지, 품위손상 금지, 특혜 금지 등이다. 또한, 국민연금공단은 24시간 익명 제보 시스템인 ’국민연금 헬프라인‘ 운영, 부패행위를 비실명으로 대리 신고하는 안심변호사 제도, 신규 입사자에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 서약서와 행동강령 준수 서약서를, 부장 이상 보직 부여자에게는 반부패·청렴 서약서를, 부서장 이상 보직자에게는 청렴 서약서를 작성함으로써 청렴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연금공단의 청렴문화 확산 노력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27조의2에 따른 2022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우수 등급인 2등급을 달성하였다. 종합청렴도는 외부체감도 및 내부체감도를 평가하는 청렴체감도와 기관장의 반부패 의지, 기관별 차별성·효과성 있는 반부패 시책 마련·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청렴노력도로 구성되는데, 공단은 청렴노력도에서 동일 평가군인 준정부기관 57개 기관 중 1등급을 달성하였으며, 공단의 종합청렴도 추세를 보면, 최근 6년간 지속 상승 중으로 2등급 중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 공공기관 중 청렴문화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국민연금공단은 앞으로도 청렴한 업무처리를 통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불합리한 제도 개선 및 관행을 근절하여 국민으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공단이 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한다.
    • 오피니언
    2023-10-31
  • [정재우 칼럼] 생명, 그 이상을 위하여
    지난 주간 중 순환기 내과 정기진료를 받기 위해 종합병원을 찾았다. 갈 때마다 느낀 바가 있다면 대학병원은 환자가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넘게 이 병원을 다니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갈수록 노인 환자가 늘어난다는 사실과 예약을 하고 와도 대기시간이 기본적으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병원에 올 때마다 사람의 인생 마무리는 병원에서 하게 되리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번 내원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전에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하면서 흐뭇하고 훈훈함까지 느꼈다. 그 자리에서 한참 서서 시간을 보냈다. 그건 이런 일이었다. 올림푸스한국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주관하고 주최한 ‘고잉 온 다이어리 전시회(Going on diary Exhibitoon)’였다. ‘암경험자의 심리사회적 지지를 위한’이란 전제가 붙어 있는 생소하고 참신한 기획전시였다. 전시 공간은 병원 내부의 조금 넓은 통로 한 벽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잉 온 다이어리’라는 말은 암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가진 환자들이 ‘세줄 일기’를 사진과 함께 일정한 앱에 올리는 일이다. 이로써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공유함으로써 서로 격려할 수 있는 심리사회적 지지 프로그램이다. 17명의 환우들이 모바일 일기 앱을 이용해 4주 동안 정해진 주제인 ‘약속일기, 행복일기, 칭찬일기, 감사일기’를 쓴다.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Going on’이란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복귀를 지지하려고 기획한 캠페인이라고 한다. 암 발병 후에도 암 경험자들의 아름다운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극히 작지만 이런 배려와 사랑의 자리를 펼치고 있음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컸다. 여기에 그들이 투병과 고뇌 사이에서 건져 올린 몇 편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들은 병원 측이 의도한 계획처럼 ‘생명, 그 이상을 위하여’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세상을 희망하게 한다. “재발했다고 전화로 말하니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준 고등학교 때 친구... 그때 진심으로 감사했다. 난 해준 게 없는데 넌 그게 너무 미안하다고. 맘이 아팠다.”, “수술 몇 달이 지나고 동생네와 엄마랑 제주에 갔다. 동백꽃 숲에 들어가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기뻤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행복은 순간 순간 찾아온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맛있는 차 한 잔, 좋은 사람과의 만남. 무더위 속 시원한 바람. 행복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준다.”, “항상 나 자신을 가장 최우선에 놓자. 내가 나를 잘 돌볼 때, 내 자존감을 키울 때, 내가 내 자신에게 제일 절실할 때 세상도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밤새 불면증과 통증으로 힘들었지만 오늘도 또 다른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 하루도 숨 쉴 수 있는 나에게 감사하면서 살아가 보련다.”, “지인 중 나의 아픔을 가장 먼저 알렸었지. 그날, 전화 통화 넘어 같이 훌쩍이던 너. 지금 넌 나에게 많은 위로가 돼^^ 정말 고마워”,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힘내자! 파이팅! 감사합니다!”
    • 오피니언
    2023-10-24
  • [정재우 칼럼] 전쟁의 정당성은 없다
    어릴 적에 동생과 싸운 일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싸운 이유가 있었다. 동생이 내가 없는 틈에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준 호두 알 두 개를 깨어 먹어버린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동생은 별거 아닌 걸로 끝까지 우기며 나를 화나게 했다. 결국 형의 권위로 폭력을 가했다. 매우 심하게. 인류 최초의 싸움은 아담의 자녀인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 질투해 살인을 행한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제하지 못한 불행이었다.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을 시기 질투한 이복형 이스마엘은 이삭을 괴롭혔다. 결국 이 일로 이스마엘과 그의 생모 하갈은 아브라함 집에서 쫓겨난다. 이 일이 오늘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기원이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과 같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의 조상 때부터 싸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형제간의 싸움이자 종교적인 전쟁이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초막절 절기 마지막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기습 공격을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마스는 수년 전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을 불법 침입해 파괴를 일삼은 일에 대한 보복이라고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인질로 끌고 갔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무차별 폭격을 팔레스타인에 가해 또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보복성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괴멸시킬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세계 역사는 한 마디로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그때마다 전쟁의 정당성이나 구실이 꼭 있다. 그것으로 전쟁을 유발하고 살상을 자행한다.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전쟁의 정당성(때로는 정당성을 가장하기도 함)만 있으면 전쟁은 언제든지 가능한가?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북한이 남침할 때 ‘남조선 해방’이라는 정당성이 합당한가? 일본이 전쟁에 내세운 ‘대동아 통합’이라는 정당성이 합당한가? 그 외에도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 십자군, 히틀러 등의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의 정당성은 합당한가? 전쟁은 인간 최악의 범죄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살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윤리나 아량이나 선처가 없다. 피는 피를 부른다. 어린이와 여성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도 같은 양상이 재현되고 있다. 생명을 대량으로 살해한다. 갈수록 참혹한 상황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은 생명의 주권자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신적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아메바의 출현과 성장이나 진화가 아니다. 생명의 탄생을 가져오는 잉태 과정부터 신비로운 영역이다. 영혼이 깃든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존귀한 존재를 말살하려는 그 어떤 정당성도 용납할 수 없다. 예수는 폭도들에게 붙잡혀 갈 때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어 한 사람의 귀를 쳐서 떨어뜨리자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라고 경고했다. 그 어떤 전쟁의 정당성도 정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엄히 명하셨다. “네 칼을 도로 네 칼집에 꽂으라(마26:52)”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새기고 따라야 할 교훈이 아닌가? 모든 인간은 한 형제다. 하마스도, 이스라엘도, 헤즈볼라도, 레바논도, 팔레스타인도, 이란도,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도,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칼을 칼집에 꽂으라! 이것이 인류가 사는 길이다.
    • 오피니언
    2023-10-17
  • [정재우 칼럼] 샘터와 쉼터
    깊은 숲속 조그마한 샘터는 작은 동물들의 쉼터다. 가끔 큰 동물들이 샘터를 흩트려 놓고 간 후 한참을 숨어 기다리다 눈치껏 뛰어나와 목을 적신다. 숨이 턱턱 막혀 오다가도 샘터에서 쉼을 얻는다. 마침 샘터에는 마르지 않는 샘구멍으로 맑은 샘물이 퐁퐁 솟는다. 이윽고 샘터는 맑은 물로 채워지고 작은놈들은 쉼을 누린다. 그래서 생태계는 조물주 계획대로 지속되어 왔다. 어느 동네 작은 마트에 허름한 차림의 중년이 들어왔다. 몰골이 초췌하고 얼굴은 어두웠다. 금세 울음이 터질 듯한 기세다.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계산대로 다가왔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섬뜩해졌다. 혹시나? 그런데 첫 마디가 내 얘길 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아무도 자기 얘길 들으려고 하지 않아 답답해 죽겠다고 했다. 직원은 차분하게 내가 들어주겠다고 했다. 중년은 문밖으로 나가 쓰러지듯 바닥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청년인 직원이 문밖 중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폭풍같이 사연을 쏟아내었다. 가족과 헤어진 사연, 사업에 실패한 사연, 동료와 친구가 다 떠나고 너무 외로워 죽고 싶다는 사연을 이어가며 연신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인계되어 가면서 청년 직원을 안아주었다. 내 얘길 들어주어 고마웠다며. 비로소 샘터를 만나 쉼을 얻었나 보다. 사흘을 굶었던 중년은 굶주림보다 사람이 무척 고팠나보다. 내 얘길 들어 줄 사람, 들어만 주어도 위로가 되겠기에. 결국 위로에 목말라 방황했다. 위로의 샘터는 어디에 숨었을까? 도시 정글에는 여전히 위로의 샘터를 찾아 헤매는 영혼이 있다. 제도적 장치로 샘터 같은 쉼터가 마련되길 바란다. 도시 정글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을 위해서. 하지만 아르바이트 직원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들이 많아지면 좋겠고, 갈수록 각박해지는 도시 정글에 샘터가 절실하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는 도시마다 있어서 위기청소년을 위해 안전망을 펼치고 있다. 상담 신청을 본인이나 동반인이 하면 즉각 개입한다. 진로, 성격, 대인관계, 학교 부적응 등 다양한 고민을 전문상담사와 함께 해결 방안을 찾는다. 자신을 이해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리검사를 통해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자기 이해를 돕는다. 집단상담도 받을 수 있다.(평택YMCA 부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사업 참고) 중장년을 위한 정신건강센터도 있다. 자살예방센터를 갖춘 지자체도 있다.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노인 우울증, 자살 예방 기관과 탈북자, 다문화가정을 위한 복지단체도 있다. 이런 제도를 널리 홍보하고 시민이 활용하면 좋겠다. 사람의 생태계가 존속하려면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샘터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다섯 살에 보육원을 탈출해 혼자서 십 년여를 껌과 음료수를 팔면서 목숨을 이어온 소년이 어느 날 자기의 재능을 알고 도움을 준 한 샘터에 의해 성악을 배워 스타킹 프로에 나와 영감 깊은 노래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를 품어준 무명의 샘터가 얼마나 고마운지. 어떤 형태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생기를 되찾게 해주는 샘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샘터가 되어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어주면 좋겠다.
    • 오피니언
    2023-10-09
  • [기자수첩] 전동킥보드, 관리번호 부착해 교통사고 줄여야
    최근 들어 횡단보도와 인도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전동킥보드가 사회적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평택지역에서도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단속이 시급해 보인다. 필자는 지난 9월 중순 취재차 늦은 저녁 평택 서부역 인근을 찾았다가 횡단보도를 불법 주행하는 전동킥보드와 부딪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시민을 목격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당시 도로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구급차에 후송되던 시민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동안 필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도로와 인도에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운행하고, 아찔한 속도로 달리면서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교통을 방해하는 전동킥보드를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인 전동킥보드로 인한 교통사고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225건이었던 국내 전동킥보드 사고 건수는 2019년 447건에서 2020년 897건, 2021년 1,735건으로 증가했으며, 2022년에는 2,38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 전동킥보드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도 2018년 4명에서 2022년 26명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전국적으로 20만대 이상 보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유 전동킥보드는 번호판이 없어 식별하기 어렵고, 단속과 처벌을 위한 법규가 따로 제정되어 있지 않아 앞으로도 전동킥보드로 인한 교통사고는 증가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21년 5월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운전자의 안전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된 시행안을 보면 원동기면허 이상 소지한 운전자에 대해서만 개인형 이동장치를 운전할 수 있도록 하고, 무면허 운전 시 10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아울러 인명 보호장구 미착용, 승차정원 초과 탑승 및 어린이 운전 시 보호자 범칙금·과태료 부과 등 처벌 규정을 신설했으나 현실에서는 보호장구 미착용은 물론 승차정원을 초과 탑승한 전동킥보드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실정이다. 전동킥보드로 인한 교통사고는 전국적으로도 증가하는 동시에 평택지역에서도 증가하고 있는 만큼 사고 발생 시 추적 및 사고 경위 파악을 위해서도 기기관리번호가 반드시 부착되어 시민들이 번호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 및 횡단보도 주행 등 불법 주행 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평택시와 평택경찰서도 개인형 이동장치의 안전한 이용 문화 정착을 위해 안전 단속과 계도 및 홍보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더 중요한 점은 개인형 이동장치를 운행하는 운행자들 스스로 시민의 안전은 물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안전보호구 착용 및 횡단보도와 인도 운행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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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9
  • [정재우 칼럼] 교권과 부권
    선생님들이 뿔났다.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결국 거리로 나섰다. 집단 시위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교육 멈춤의 날’을 실행에 옮겼다. 오죽했으면 그리했을까? 이태원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시퍼런 상처를 안고 거리로 나섰다. 아무리 외쳐도 책임져야 할 최고위 행정 정치인은 멀쩡히 건재할 뿐. 자식도 잃고 부모의 권위도 잃었다. 목숨을 던져 의사를 표시하려는 최후의 선택이 아니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그 길을 간 교사의 고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어린 제자들 앞에서 천 번도 망설였을 막다른 길. 내 자식을 과하게 보호하려고 교권의 영역을 진입한 부모. 경쟁하는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자식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행태. 극단을 치닫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순 없을까? 밥상머리에서 예의범절 행동을 교육받았던 부모 세대가 사라졌기에 오늘의 혼선이 온 게 아닐까?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존경심이 증발한 시대여서 오늘의 폐해가 찾아온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잃어버린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을 먼저 회복해 보자. 다시 밥상머리에서 부모의 권위를 회복해보자. 필자는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수저 들기 전에 “먼저 수저 들지 마라”, “소리 내며 먹지 마라”, “먹을 때 발을 떨지 마라”, “잘 먹었다고 꼭 인사해라”, “친구들과 싸우지 마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윗사람에게 인사 잘해라” 등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 중학교 땐 음악을, 고등학교 땐 문학과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로 태어나게 해주셨다. 자상하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을 만났기에. 아이들도 생각이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걸어가는 길의 고통과 고단함을 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금쪽같이 여기는 오직 내 새끼 사랑을 안다. 그리고 교권도 부권도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교육을 멈추고 거리로 나간 선생님 뒤편에 서서 눈치만 살핀다. 또 교실로 난입한 과잉 자식 사랑 부권 행동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부끄러운 현실을 보면서. 자식을 가진 부모는 훌륭하다. 결혼도 자식도 기피하는 시대에 자식을 낳고 남다르게 잘 키워보리라는 욕심은 자연스럽다. 자식이라면 내 목숨도 내놓을 부모들이다. 그래서 자식을 군대 보내는 부모는 위대하다. 그들이 애국자다. 그 자식이 돌아오기까지 밤잠을 설친다. 군대에서 사고가 나면 먼저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귀신 잡는 ○○이라고 안심했는데 불시에 떠난 자식을 어찌하랴. 부모에게 돌려보내기까지 왜 부모 역할 다하지 않았느냐는 비명이 하늘을 찌른다. “이렇게 소중한 내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셔요. 때로는 타이르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잠시 일탈을 하면 따끔하게 훈계해 주셔요. 여전히 믿고 맡길게요. 지식보다 먼저 사람이 되게 해주셔요.” “자식 사랑 극진하신 부모님, 그렇게 믿어주시고 맡겨주시니 고맙습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내 자식이라 생각할게요. 아무리 아이들 수업과 상담과 사무 처리에 야근을 하더라도 그 마음은 잊지 않을게요. 내 목숨만큼 아이들 사랑하고 진심으로 가르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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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8
  • [소태영의 세상보기] 망배단 찾는 사람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북한 분단과 갈등의 희생자이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은 남북한 통일사회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며, 북한이탈주민들은 우리 모두와 함께 따뜻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더욱 힘든 것은 명절이 되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가슴속에 맺힌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혀야만 하는 그들의 아픔은 늘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 매년 한가위가 되면 그들과 함께 파주 임진각 망배단을 찾게 된다. 망배단을 찾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네”, “헤엄쳐 바로 갈 수 있겠어요” 등 저마다 북한을 보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고는 한다. 또한 망원경을 통해 고향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지나가는 것을 혹시 볼 수는 없는지, 누이동생을 혹시 볼 수는 없는지 바라는 간절한 그들의 눈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기만 하다. 전망대에서 지척에 있는 고향 땅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인 그들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필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평택에는 1,200명이라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낯선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북한이탈주민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새로운 지역사회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지역의 정서와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인맥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타향에서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주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탈주민은 목숨을 걸고 부모, 형제, 고향을 뒤로하고 북한을 탈출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내려왔지만 이들의 삶은 편안하지 못하다. 물론 한국사회에 잘 적응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은 다른 체제와 사회적 분위기, 경제적 곤란, 문화적 이질감, 취업 곤란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겪는 심리적 건강 악화, 그리고 차별에 시달리면서 현재도 이방인으로 고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이 미사일을 수시로 발사하고, 한미 군사훈련과 한미일 안보방위협력 강화, 남중국해 진영대결로 인한 긴장 등 신냉전주의 구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남북한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면서 한반도 위기감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심정은 더 복잡하고 착잡할 것이다. 최근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념에 따라 북한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남한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고, 우리 삶 속에서 지역사회 구성원이자 우리의 이웃인 북한이탈주민들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물론 분위기 조성이 지역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단지 복지지원의 수혜 대상, 취약계층일 뿐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이들이 우리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며, ‘통일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은 더 이상 지역사회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정겨운 이웃이다. 올해에도 임진각 망배단을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찾을 것이며, 또 그들의 깊은 한숨과 눈물을 접하게 될 것이다. 분단국가라는 비극이 새삼 더 깊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는 통일은 언제일까.
    • 오피니언
    2023-09-18
  • [정재우 칼럼] 가족 추억 만들기
    언젠가 식당에서 본 광경이다. 한 가족 네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교회를 다니는 가족이라 기도하는 줄 알았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서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그 가족은 기도를 드리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구도 어떤 소리도 없이 휴대폰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며, 식탁을 중심으로 대화의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각자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가족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가족은 공유한 추억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가족과 함께하며 삶을 나눈 시간만큼 가족 관계는 든든해진다. 가족과 공유하는 추억이 많을수록 가족은 끈끈한 정으로 하나가 된다. 때론 기쁨과 슬픔도, 보람과 상처도, 용서와 미움까지 약이 된다. 사랑의 묘약이 된다. 어릴 적 할머니가 멀리에서 오셨을 때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 이야기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바보 삼형제가 협력해 떡을 상으로 받아먹은 이야기, 일본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명기 논개 이야기, 할아버지의 진주 3.1만세운동 주동 역할과 옥고를 치르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근히 지혜와 용기와 애국심을 배우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가족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리라 결심했다. 훗날 할머니 말씀을 기억하며 할아버지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 국립 묘원 유공자 묘역에 모시며 가족으로서 자긍심을 가졌다. 가족은 이야기 속에 가족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한다. 대화 속에 친밀감이 깊어 간다. 상상 속에서 선조의 흔적을 이어받는다. 그래서 지금도 잠자리에서 가족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다. 필자의 부모님은 우리가 어릴 적에 진해 군항제 축제장으로 온 가족 나들이를 매년 하셨다. 회전목마 타기, 빙고 게임, 스피커가 있는 마이크로 노래 부르기, 부푼 풍선을 화살로 터트리기 등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오래도록 기억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꼭 가족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희미한 흑백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린다. 여름방학에는 온 가족이 해수욕장을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진해 앞바다가 청정해역이라 헤엄치며 해삼도 잡고 조개도 캐고 낚시도 했었다. 아버지는 헤엄을 얼마나 잘 치시는지 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다. 필자도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정서가 있어서 결혼 후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며 추억 쌓기를 많이 했다. 뒷동산에 올라가서 자리를 펴고 그림 그리기와 동시 쓰기를 자주 했다. 사방치기와 미니 축구, 마당에 구멍을 파고 미니 골프 놀이도 했다. 여름방학에는 친척 세 가정이 함께 서해안 해수욕장으로 해마다 가족 캠핑을 갔다. 섬에서 태풍을 만난 적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다. 지금은 딸과 아들이 결혼해 손주들이 초등학생 1년~고등학생 1년까지 5명이나 있다. 그들도 틈만 나면 가족 나들이와 가족여행을 잘 다니고 있다. 보기에 흐뭇하다. 가족 추억 만들기를 참 많이 하고 있어 고맙다. 올해도 평택시의 요청으로 가족행복학교 우리 가족행복캠프(1박 2일, 신청은 시청 누리집 게시판 참고)를 세 차례(9/23-24, 10/28-29, 11/18-19) 계획하고 있다. 이번 캠프에도 가족 리빌딩, 행복 콘서트, 우리 가족 소통 디자인, 가족 미션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기회에 가족의 행복을 더 깊게 새기는 추억 만들기를 해보기를 강추한다.
    • 오피니언
    2023-09-12
  • [칼럼] KG 모빌리티(구 쌍용차) 평택시 관내 이전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쌍용자동차로 더 친숙한 KG 모빌리티 자동차는 1954년 하동환 자동차로 시작하여 현재 6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 회사이다. 90년대의 무쏘 신화를 이어 코란도와 렉스턴, 그리고 최근에는 토레스 자동차의 히트까지 그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쌍용자동차 당시 한때 1만3천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면서 직원들 월급날에는 평택 시내가 잔치 분위기와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지역경제 활성화의 주역이었다. 구성원 중 대부분이 평택 지역 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이었고, 정직원뿐 아니라 사내 청소, 경비, 식당 직원을 비롯해 협력업체 직원까지 모두가 함께 근무하는 형태였으며 주·야간을 교대로 근무하였다. 작년 쌍용자동차는 KG 모빌리티로 인수되면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노력한 결과, 2023년 상반기 28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KG 모빌리티는 시장의 수요에 부합하는 자동차를 적시적기에 공급해야만 치열한 동종업계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토레스 자동차를 기반으로 전기차 생산라인 공장을 조기에 착공하기 위해서는 이전 용지가 평택시 관내에 확정되어 안정적인 생산 기반 시설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차일피일 이전 부지 확정이 미루어지는 상황에 KG 모빌리티 경영진, 노동조합 등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평택시를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인근의 아산·당진시를 비롯해 부안 새만금, 군산시, 경상도까지 KG 모빌리티를 유치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평택시민들은 이러다 타지역으로 전기차 공장이 이전하여 평택시 인구의 10% 이상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할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KG 모빌리티의 정직원은 5천여 명이지만 424개 협력업체까지 함께 이전한다고 추정한다면 10만 명의 인구가 타 시·도로 유출되는 상황이 예견된다. 평택시는 구 쌍용자동차 이전 용지 후보에 대해 정확하게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서탄면, 진위면, 현덕면, 팽성읍 등 총 4곳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상대적으로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곳이 팽성읍이다. 팽성읍은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이유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희생하고 양보해온 지역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미8군, 한미연합사, UN사 등을 평택시 험프리스 기지(K-6)로 이전하는 것을 합의하여 지난 2018년 이전 완료하였다. 지금까지 정부가 18조8천억 원 예산을 집행했다는데, 팽성읍은 여전히 개인재산권이 제한되는 지역인 동시에 거주민들은 고도 제한 및 건축 제한, 비행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시가지화 예정 지역을 여러 군데 지정해놓고도 도시계획 및 발전을 위한 예산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팽성읍의 인구는 2만8천여 명으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인근 아산시는 테크노 빌리지 공단을 조성했고, 대규모 주한미군 임대주택 단지까지 형성해 주한미군 가족이 1만 명 이상 거주하는 등 낙수효과를 입고 있다. 실제로 아산시 둔포읍은 인구가 1만 명 이상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아산시는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소외되어온 지역으로써 KG 모빌리티와 같은 대규모 산업시설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KG 모빌리티가 팽성으로 이전할 경우 장점을 보면 현재 KG 모빌리티 직원과 1차 벤더업체의 직원 중 상당수가 평택 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 예정지로 입에 오르고 있는 현덕면으로 이전할 시 약 1시간이 소요되지만 팽성읍은 15분대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현재 성환 종축장에 미래 모빌리티 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되어 팽성읍의 토지가 약 5만 평이 포함되고, 127만 평 미래 모빌리티 국가산단은 미래형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스타트업 기업이 대단위로 유치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KG 모빌리티 자동차 회사가 인근으로 이전한다면 평택시와 천안시의 상호 시너지 효과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KG 모빌리티 공장 이전은 현재 평택 시내와 단절된 팽성의 교통망 확충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이유는 국가산단의 경우 정부가 도로와 전기, 용수 문제 등 다양한 부분을 재정투자 사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도로 사업의 경우 현재 동부화고속도로, 45번 국도, 38번 국도가 평택항만으로 연결되기 위한 광역사업으로 정부의 투자를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평택시와 경기도의 예산으로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려면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진행할 경우 빠른 예산 집행으로 신속한 진척이 가능하다. 이처럼 KG 모빌리티 평택시 관내 이전을 조기 확정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평택시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관내 이전에 대한 시민 합의를 이루고, KG 모빌리티 경영진과 노동조합 및 평택시가 머리를 맞대고 적합성을 타진하여 부지 이전 지역을 합리적으로 확정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평택시는 ‘KG 모빌리티 평택시 관내 이전 조기 확정’을 위한 법률검토 및 가능한 모든 행정업무 지원을 통해 관련 부서·경기도·중앙부처 협의체를 조성하여 원활한 공장 이전사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KG 모빌리티가 제2의 쌍용자동차로 우뚝 서 59만 평택시민의 염원에 힘입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
    • 오피니언
    2023-09-12
  • [정재우 칼럼] 완충지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를 가지고 있다. 완충지대란 이해가 상반되는 지역이나 국가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두 지역 사이에 설치되는 중립지대를 말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생태구조를 바라보며 완충지대가 절실함을 느낀다. 매일 같이 들려오는 ‘묻지 마 테러’ 소식에 국민들은 불안하다. 가해자들의 신상이 밝혀짐에 따라 우려의 소리가 높다. 그들 중에는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있다. 은근히 사회에 대한 일종의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 공동체를 해칠 시한폭탄과 같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은둔 외톨이들이 죄다 범죄자가 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층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인구 177만6,000명 중 고립·은둔 청년이 2019년 3.1%에서 불과 3년 만에 5.0%(53만8,000명)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들이 이런 상태에 처한 요인은 학업 중단, 대인관계 외상, 정신질환 병력, 우울감이나 외로움 심화, 새로운 경험을 회피하려는 성격 등이 있다고 한다. 이 요인들이 개인적으로는 자살을 불러오며, 평생 자살 시도는 4~17배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국내 최초로 우리 사회 고립·은둔 청년들의 심리를 연구·분석한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 교수는 “청년들의 비혼주의나 결혼해도 자녀를 출산하지 않겠다는 현실도 심각하지만 일단 생존해 있는 청년들의 삶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손상되고 부서져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을 먼저 건강한 쪽으로 이끌어야 다음 세대를 낳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고립·은둔 청년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시킬 대책이 국가적으로나 온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급선무이다. 먼저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는 일이다.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려선 늦어진다. 다음은 그들과 상담할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비대면 온라인에 갇혀있는 그들을 오프라인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공동 치유하는 공간인 완충지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들이 개입하지 않는 그들만의 공유하는 공간, 상담이나 심리치료 전문가를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안락한 쉼터, 여기를 거쳐 정상적인 관계망으로 복귀하는 그런 완충지대 말이다. 성숙한 사회는 이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이다. 마치 버려질 위기에 놓인 아이들을 품어주는 베이비 박스 같은 역할을 할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미혼모를 위한 복지시설이나 가출한 청소년이 찾는 쉼터 같은 공간이다.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는 쉼터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시설 같아도 좋겠다. 우리의 현실은 정치권이나 노사관계나 의료계나 교육계에 이르기까지 편가르기와 진영논리가 팽배하다. 완충지대를 보기 어렵다. 원만한 대화와 설득과 타협이 있는 완충지대를 보고 싶다. 당장 고립·은둔 청년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시키는 일에 온 사회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보자. 그들이 마음을 열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공간, 완충지대를 위해 구호 단체나 종교기관이 먼저 나서면 좋겠다.
    • 오피니언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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