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국내 걷기 ‘박물관에 딸린 용산공원’ (1회)

입력 : 2025.09.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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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오랜만에 찾은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다. 단박에 눈에 띈 건 역시나 경천사 10층 석탑. 그 의연한 자태에 오면서 보았던 산만한 거리 경관이 다소나마 정리된 느낌이다. 방문한 주목적은 나석주 의사 편지를 살펴보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것. 물론 내친김에 바로 옆 한글박물관도 보고 반경을 넓혀 용산가족공원까지 두루 걸어보기로 했다. 소개란에 나온 내용처럼 4만여 평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공간을 죄다 돌아볼 수는 없으니 몇 군데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했는데, 나의 경우 매번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는 고문서나 볼만한 서화 쪽으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아내(가정학 전공)는 늘 전통복식이나 시대별 자기류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전과 달라진 그림은 로봇 안내자가 관람객을 맞더니 버튼에 따라 해설을 제공하는 서비스. 마치 전문가의 육성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다음 새롭게 선보인 사유의 방에 들렀다 밖으로 나왔다. 아쉬운 지점은 소장한 42만여 유물 가운데 전시물이 12,000점(3% 미만)에 불과한 점. 이젠 일정 부분 순환 전시를 고려할 때라고 본다.


때 이른 더위에 솔바람이 부는 벤치에 앉아 시장기를 달랜 뒤 거울못에 비치는 청자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린이박물관이나 전통염료식물원을 지나친 채 박물관 나들길로 접어든 까닭은 화려한 배롱나무 군락에 끌려서였다. 바로 앞에서 그 고운 빛깔에 잠시 서성거리다가 석조물정원으로 가는 오솔길. 하지만 바닥이 고르지 못해 걷기에 불편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온 직원이 있어 실태를 알리니 공감했다. 눈요깃거리는 미르폭포가 아닌 석조물정원. 보신각종을 비롯해 장명등, 문인석, 석양등, 온녕군 석곽 등 석물들이 줄지어 섰다. 그런데 승탑을 포함해 남계원칠층석탑(국보 100호)을 이런 식으로 전시해도 무탈한지 의문스러웠다. 요즘 한창 해외에서 불어닥친 '케이팝 데몬 헌터스(약칭 케데헌)' 열풍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뮷즈샵 기념품이 동나는 등 K컬처 전파중심지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2025년 상반기 관람객이 270만 명(외국인 10만 육박)을 상회해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면 주위 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마땅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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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못에 비친 국립중앙박물관

 

그에 비해 국립한글박물관은 썰렁했다. 게다가 입구에 안내문을 비치한 건 요식행위일 뿐 방문객을 대하는 직원 태도 또한 무성의했다. 이때 언뜻 한글박물관의 역할이 국립박물관과 국립도서관 사이서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부 규정을 보면, “한글 및 한글문화 관련 유물과 자료의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 및 교류 등 한글문화의 보존, 확산 및 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라고 되어있다. 개관 일자는 2014년 한글날. 최근 화재사고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막상 진중하게 돌아보니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한데 모아 다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쓴 흔적이 뚜렷했다. 가장 돋보인 목록은 ‘한글 100대 문화유산’. 연대별로 그 일부를 적시하면,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위시하여 한글금속활자, 내훈, 설공찬전, 한글영비, 논어언해, 병자일기, 춘향전, 일동장유가, 농가월령가, 예수셩교젼셔, 서유견문, 독립신문, 홍길동전, 훈맹정음, 조선말큰사전, 한글맞춤법통일안 등을 들 수 있겠다. 차제에 광복 80주년을 맞아 한글 교육이야말로 전략적 외교 행위라는 화두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동아시아 지정학적 안보상의 이유로 주한미군사령부 총 지휘부가 아직 남아있는 가운데 그들이 떠난 부지에 서둘러 조성한 용산가족공원은 넓은 잔디밭에 둘러싸인 인공연못을 중심으로 기존 개념을 뛰어넘은 친환경 추구형의 쉼터로 알려져 있다. 그 역사를 짚어보면 임진왜란, 임오군란, 갑신정변, 러일전쟁을 거쳐 1906년부터 1945년까지 왜군과 청군의 군사시설 및 일본인들의 주거지였던 땅을 서울시에서 가족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위치를 봐도 서울시 남북을 잇는 녹지 축의 연결고리로 중앙공원 성격을 띠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경 삼아 차분히 둘러보니 산책로를 따라 야외조각품을 배치해 격을 높였고, 각종 운동 시설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갖췄다. 다만 녹색공간이 넉넉한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하되, 정교하지 못한 노면은 편안한 발길을 방해했다. 철 따라 심고 가꾸는 화초 종류도 다채로워야 하거니와 빛바랜 정자나 나무다리 보완에도 정성을 쏟아야 장미원을 보고 맨발로 황톳길을 밟는 맛도 개운할 것이다. 앞으로 기대할 곳은 수련꽃이 피어날 생태습지. 인근 온누리교회는 요다음 들르기로 했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86호)에는 ‘국내 걷기 - 물향기수목원의 동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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